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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점 만점에 10점이 모자랐다. 그래도 충분히 박수를 받고도 남을 만한 경기력이었다.
박지성의 기용에 끝까지 신중했던 필립 코쿠 감독이 선택한 자리는 오른쪽 측면이었다. 당초 왼쪽 측면이나 중앙을 택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랐다. 2003~2005년 에인트호벤 시절과 A대표팀에서 오른쪽을 맡아본 경험이 있는 박지성에게 어려운 요구는 아니었다. 박지성의 멀티 플레이 능력을 익히 알고 있었던 코쿠 감독이었기에 가능한 조합이었다. AC밀란의 왼쪽 측면은 아약스에서 활약하다 이적한 어비 에마누엘손이 지켰다. 기존 에인트호벤 선수들을 잘 알고 있는 에마누엘손을 상대하기엔 베일에 쌓인 박지성이 안성맞춤의 공략카드였다.
박지성은 폭넓은 활동량으로 코쿠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오른족 측면 뿐만 아니라 중앙으로 수시로 자리를 바꾸면서 원톱 팀 마타브즈와 왼쪽 측면의 맴피스 데페이에게 찬스를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수비 전환 과정에서도 오른쪽 풀백 자리까지 내려가면서 AC밀란 공격수들을 막는 역할을 했다. 맨유 시절 명성을 떨쳤던 활발한 움직임이 그대로 재현됐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공간침투 역시 그대로 발휘가 됐다. 이날 경기서 박지성이 68분 간 뛰며 소화한 거리는 8.8㎞, 95분 풀타임으로 환산하면 11㎞를 넘는 거리를 뛰었다. 이날 풀타임을 소화한 선수들의 평균치를 웃돈다. 활동 반경은 오른쪽이 주를 이뤘으나, 중앙과 공격 뿐만 아니라 오른쪽 풀백 자리까지 부지런히 오가면서 '산소탱크'의 명성을 재입증 했다. 코쿠 감독의 의도 이상으로 제 몫을 소화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박지성 스스로도 "첫 경기 치고는 괜찮았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사실 박지성이 이날 90분을 소화할 것으로 보긴 힘들었다. 박지성은 8일 팀에 합류했으나, 제대로 훈련을 소화할 만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다리 근육 부상으로 1주일 정도를 쉬었다. AC밀란전을 하루 앞두고 열린 팀 훈련을 풀타임 소화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 대비였다. 프리시즌 연습량이 많지 않았던 만큼, 떨어지는 경기 감각과 체력을 어떻게 커버할 지가 우려가 됐다. 예상대로 박지성은 패스를 주고 받는 팀 플레이나 체력적인 면에선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활발하게 움직였던 전반전과 달리, 후반전에는 발이 다소 무뎌졌다. 부상에 발목 잡힌 시간이 아쉬웠다.
코쿠 감독은 박지성을 올 시즌 에인트호벤의 중요한 키로 보고 있다.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인 팀에 박지성의 경험을 더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박지성이 풀타임을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에인트호벤은 29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시로 스타디움에서 갖는 AC밀란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 뿐만 아니라 리그에서 험난한 일정을 치러야 한다. 박지성이 얼마나 빨리 제 컨디션을 찾고 팀에 녹아드느냐가 향후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박지성은 "아무래도 90분을 뛸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60~70분 정도를 (뛸 것을) 생각했다"며 "선수들과 좀 더 훈련하면서 알아간다면 좋은 모습이 나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에인트호벤(네덜란드)=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