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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강'의 타이틀은 일본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알베르토 자케로니 일본 대표팀 감독(60)은 이번 동아시안컵 멤버 23명을 전원 국내파로 짰다. 그런데 이게 말이 많다. 엔도 야스히토(34·감바 오사카)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32·나고야) 사토 히사토(31·히로시마) 등 J-리그 정상급 베테랑을 외면한 것을 두고 일본 축구계가 술렁이고 있다. 자케로니 감독은 이번 동아시안컵을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 대비 무대로 규정했다. 신예 발굴 의도는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축구계와 언론은 그동안 J-리그 경기 점검조차 나서지 않을 정도로 국내파에 무관심했던 자케로니 감독의 성향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가가와 신지(24·맨유) 혼다 게이스케(27·CSKA모스크바) 등 베스트전력을 모두 기용한 지난달 브라질에서 막을 내린 FIFA컨페더레이션스컵 조별리그에서 3전 전패로 물러난 여파가 꽤 컸다. 앞선 3차예선 북한전, 최종예선 요르단전, 5월 불가리아와의 친선전 패배에도 숨을 죽였으나 중국과의 동아시안컵 첫 경기서 3대3 무승부에 그치며 불만이 폭발하는 양상이다.
자케로니 감독은 취임 후 한국전 무패를 발판으로 일본 대표팀에서 입지를 굳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상황서 갖는 이번 한-일전은 반전의 계기다. 자케로니 감독이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본 언론과 축구계가 주장하는 '무게론'은 엄살일 뿐이다. 면면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골문을 지키는 니시카와 슈사쿠(27·히로시마)부터 최전방의 가키타니 요이치로(23·세레소 오사카)까지 젊지만 J-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로 채워졌다. 특히, 가키타니 등 일부 선수들은 올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 이적설이 나올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자케로니 감독은 기존 4-2-3-1 포메이션을 이번 대회까지 유지하고 있다. 최전방에는 가키타니, 2선에는 하라구치 겐키(22·우라와) 다카하기 요지로(27·히로시마) 구도 마사토(23·가시와)가 자리를 잡았다. 더블 볼란치 자리엔 아오야마 도시히로(27·히로시마) 야마구치 호타루(23·세레소 오사카)를, 포백 라인엔 마키노 도모아키(26·우라와) 모리시게 마사토(26·도쿄) 구리하라 유조(30·요코하마 F.마리노스) 고마노 유이치(32·이와타)를 내세우고 있다. 전방은 개인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내세운 반면, 수비라인엔 경험 많은 선수들로 채웠다. 모험과 안정을 배분했다. 구도에서 가키타니로 이어지는 오른쪽 공격은 스피드와 개인기, 결정력를 겸비해 특히 위협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마키노와 고마노가 지키는 좌우 측면의 공격 가담 후 수비 전환이 느리고, 수비라인 전체적으로 파워와 제공권이 떨어지는게 약점이다. 개인기는 이번 대회에 참가한 4팀 중 최고지만, 체력은 가장 떨어지는 수준이다. 공략점은 명확해진다.
런던올림픽, 추억과 악몽 사이
이번 대회에서 한국과 일본은 런던올림픽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에는 환희, 일본엔 악몽이었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동메달 재현을 노리던 일본은 홍명보호에 완패해 눈물을 흘렸다. 적장 홍명보 감독을 다시 상대로 만난 일본에겐 이번 승부가 껄끄러울 만하다. 공교롭게도 자케로니 재팬(일본 대표팀 애칭) 멤버 23명 중 7명이 런던 악몽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에겐 이번 한-일전은 1년 전의 아픔을 설욕해야하는 무대다. 한국은 미소를 지을 만하다. 올림픽 예선과 본선을 거치며 이미 파악된 선수들과의 만남이 한결 수월할 수밖에 없다. J-리그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홍명보호 1기의 특성도 일본전의 강점으로 꼽을 만하다.
일본 올림픽 멤버들의 '타도 한국'의 외침은 제법 당차다. 런던올림픽 3, 4위 결정전에 출전했던 사이토 마나부(23·요코하마 F.마리노스)는 "런던올림픽 한국전에 대한 억울함은 당연히 남아 있다"면서 필승을 다짐했다.
한-일전은 양국 지도자에게 단두대에 서는 것과 같은 중압감을 안긴다. 자케로니 감독도 이런 여건에선 자유로울 수 없는 눈치다. 한-일전을 향한 신중한 자세가 묻어난다. "한국 축구를 높이 평가한다. 적극적이고 기술과 체력이 우수하다. 2년 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한국과 3차례 경기를 했는데 모두 어려운 경기였다." 선수들의 자신감과 자케로니 감독의 신중함 중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는 28일 오후 잠실벌에서 밝혀질 것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