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은 왜?]인천 '독기'에 힘 잃은 포항 '패싱 축구'

하성룡 기자

기사입력 2013-07-01 08:06


남준재가 결승골을 터뜨린 후 김봉길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제공=인천 유나이티드

29일 인천과 포항의 K-리그 15라운드가 열린 인천축구전용경기장. 두 팀은 '동상이몽'을 꿨다. 전반기를 3위로 마치며 시민구단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천은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위기를 맞았다. 26일 열린 성남전 패배로 순위가 한 계단 떨어졌다.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는 포항전이 고비였다. 시즌 처음으로 연패에 빠진다면 선두권에서 밀려난다. 반면 포항은 인천전 승리로 선두 체제를 공고히 할 계획을 세웠다. 천적 관계도 존재했다. 포항은 2010년 6월 6일 이후 8경기 동안 인천전 무패행진(4승4무)를 달리고 있다. 포항은 기분 좋은 징크스의 연속성을, 인천은 올시즌 팀에 찾아온 첫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서로를 제물로 삼아야 했다.

변수와의 싸움

경기 전 두 팀 라커룸의 분위기는 상반됐다. 성남과의 후반기 첫 경기에서 1대4로 대패한 인천의 라커룸에는 비장함이 흘렀다. 경기전 만난 김봉길 인천 감독은 "언제든 위기가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위기가 온 것 같다. 이번 경기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3일전 경기를 치러 체력에서 포항에 밀렸다. 주전 공격수인 설기현은 경기 하루전 사후 징계를 통해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팀 전술을 다시 짜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천수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포항의 라커룸은 들뜬 분위기였다. A매치 휴식기로 재충전을 완료했다. 28일만에 나서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은 워밍업을 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황선홍 포항 감독은 "하던대로 하는게 중요하다. 날씨가 더운게 변수지만 휴식기동안 훈련한 것을 점검하는 경기가 될 것이다"며 여유를 보였다. 한 가지 걱정은 있었다. "14라운드를 보니 휴식기를 마치고 치른 첫 경기라 그런지 골이 많이 나왔다. 우리도 빨리 안정감을 찾는게 중요할 것 같다. 공수 전환 속도에 신경쓰겠다." 황 감독은 경기 감각에 대한 우려속에서 경기에 나섰다.


인천-포항전에서 선수들이 치열한 몸싸움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인천 유나이티드
중원 싸움, 노병준의 부상 이후 무너진 밸런스

인천과 포항의 공통분모는 조직력이다. 포항은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아기자기한 축구를 구사한다. 인천은 선수들간 유기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중앙과 좌우 측면을 넓게 활용한다. 결국 두 팀 승패의 열쇠는 '누가 중원을 지배하는가'에 달려 있다. 인천과 포항은 각각 A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남일(인천)과 이명주(포항)를 선발로 투입했다. 김 감독은 "남일이가 중원에서 리드를 해주고 강한 압박으로 포항의 패스를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황 감독은 "명주는 평소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다. 경기 초반, 체력에서 앞선 포항이 경기를 지배했다. 수비진영부터 짧은 패스로 공격진영까지 올라오는 과정에 흠이 없었다. 기선도 포항이 제압했다. 전반 18분, 박성호가 왼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자 황진성이 왼발로 화답했다. 그러나 선제 실점이 인천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연패는 곧 추락이었다. 주장 김남일이 나섰다. 중원에서부터 더 강한 압박을 전개했다. 압박의 강도가 높아지자 포항의 패스 줄기도 갈길을 잃었다. 포항은 오랜 휴식으로 공수 전환의 속도마저 느렸다. 인천은 포항의 공수 간격이 넓어진 틈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그 틈에 답이 있었다. 전반 27분, 인천의 공격형 미드필더 이석현이 포항의 뒷공간을 파고들어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디오고의 슈팅이 빗맞고 흐르자 문전에서 오른발로 가볍게 밀어 넣었다.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간 뒤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고무열과 황지수의 부상으로 대신 출전한 노병준이 전반 31분 교체로 아웃됐고, 측면 밸런스는 급격하게 무너졌다. 김 감독은 남준재 한교원 등 발이 빠른 측면 공격수들에게 줄기차게 돌파를 지시했다. 그 사이 포항의 중앙 수비가 헐거워지자 이석현이 중거리 슈팅으로 전세를 뒤집었다. 후반 13분, 포항 골키퍼 신화용이 몸을 날렸지만 이석현의 슈팅이 골문을 통과한 뒤였다.


선수들을 지휘하는 황선홍 감독. 사진제공=인천 유나이티드
인천 '독기'를 품지 못한 포항의 패싱축구

인천이 3년 만에 포항 징크스에서 벗어났다. 안방에서 2대1로 승리를 거두며 포항에 올시즌 두 번째 패배와, 첫 원정 패배를 안겼다. 동시에 인천(승점 26·7승5무3패)은 리그 선두인 포항(승점 29·8승5무2패)과의 격차를 3점으로 좁히며 선두 경쟁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위기를 넘긴 김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한 가지 얘기를 털어놨다. "원래 선수단에 화를 거의 안내는 편인데 성남전이 끝난 이후 단단히 혼을 냈다. 0대6이든 0대7로 지든 선수들이 포기하지만 않으면 괜찮다. 하지만 성남전에서는 선수들이 포기한 모습을 보였다. 대패를 잊기 위해 선수들이 독기가 바짝 올랐을 것이다."


경기전 황 감독도 인천의 이런 상황을 미리 예견했다. "인천 선수들이 정신무장을 단단히 했을 것이다. 포항 선수들이 상대의 정신상태를 역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인천의 바짝 오른 독기에 포항은 무너졌다. 황 감독은 "노병준을 교체하는 바람에 공격에 공백이 생겼다. 볼을 쉽게 잃으면서 경기를 안정적으로 가져가지 못했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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