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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어은실 박사 "최고의 재활트레이너는 선수 출신"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3-06-27 08:31


국내 최고의 재활의학 전문가 어은실 박사 인터뷰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3.06.13.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26)의 LA다저스는 지난해 10월 '수 팔소니를 수석 트레이너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여성이 수석트레이너 자리에 오른 건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초였다. 미국 안팎에서 뜨거운 이슈가 됐다. 국내 최고, 최초의 여성 재활전문가 어은실 박사를 만났다. 여성 수석 트레이너만큼은 한국이 미국보다 20년 앞선 것 아니냐는 말에 "그럼요"라며 활짝 웃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LG스포츠단 총괄 수석 트레이너를 역임한 '파워우먼'이다. 연세대 간호학과, 연세대, 고려대 체육학과에서 석박사를 받았다. 미국 웨스트체스터대에서 스포츠의학 인턴과정을 수료했고, 1997년 국내 최초로 미국선수 트레이너 국가자격증 (ATC, Athletic Trainer Certified)를 취득했다. 김병현, 김태술, 김연아, 손연재 등 종목 불문, 대한민국 대표 스타플레이어들이 그녀의 손을 거쳤다. 지금도 그렇지만, 1990년대 스포츠와 의학을 두루 섭렵한 여성 재활전문가는 그녀가 유일하다. 자신의 클리닉 '파워존'에서 선수들의 재활을 돕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프지 않은 선수는 없다?

거친 스포츠 세계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유쾌하고 열정적이다. 수십년 현장에서 '매의 눈'으로 관찰해온 야구, 농구, 피겨선수들의 폼을 말이 아닌 몸으로 척척 재연해보였다. "내가 재연할 때마다 선수들이 박사님이 불펜에 나서시라"고 농담한다며 웃었다.

유년기부터 수십년째 같은 동작을 반복해온 선수들은 아프다. '아프지 않은 선수는 없다'는 말은 진리로 통한다. 수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선수생활 위기의 순간 그녀를 찾는다. 톱클래스의 선수가 기량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이 그녀의 의무다. "기술은 없어지지 않는다. 내몸의 변화에 따라 흐트러질 뿐이다. 힘의 자리를 다시 찾는 순간부터 한계치는 더 높아진다. 더 강해진다"고 했다.

재활보다 중요한 건 부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부상을 예방하는 동작, 효율적으로 힘을 쓸 수 있게 하는 동작이 중요하다. 선수와 종목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경기장면,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연구한다.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어 박사의 '신통방통' 솔루션은 선수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 있다. 그러나 정작 어 박사는 스타선수들 얘기를 불편해 했다. 유명선수에 대해 상세히 물어보자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선수들이 가장 힘든 순간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그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으면 된다. 선수들이 언급해서 알려지긴 했지만 나를 내세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했다.

"은퇴선수가 가장 좋은 트레이너 자원"

대한육상연맹 의무이사인 어 박사는 요즘 은퇴선수 지원 프로그램에 꽂혀 있다. 어 박사는 자신이 평생 몸담고 사랑하는 일이 은퇴 선수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호언했다. "선수가 가장 좋은 트레이너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확고했다. 선수 출신 트레이너에 대한 선수 및 대한체육회 등 관련단체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종목마다 쓰는 근육과 각도가 다르다. 그 종목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없이 완벽한 재활은 불가능하다. 그 종목을 가장 잘하고, 가장 잘 아는 선수가 가장 좋은 트레이너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야구판은 야구하는 사람이, 농구판은 농구하는 사람이 전문 트레이너가 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운동에 대한 완벽한 이해 위에 스포츠의학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이 더해진다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은퇴선수는 일자리를 갖고, 체육계는 최고의 트레이너를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수 출신이라고 무시해선 안된다. 국내 1위, 세계 1위를 한 선수들은 보통사람보다 훨씬 영리하다. 운동과 관련된 공부를 한다면 효과가 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반화된 '트레이너'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트레이너의 위상이 정립돼 있지 않다.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도 모호하다. 트레이너는 마사지를 해주고, 테이핑을 해주고, 몸짱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다." 스포츠와 의학에 대한 확고부동한 지식과 이해없이는 '재활트레이너'라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외국의 경우 피지컬 트레이너, 메디컬 트레이너의 지위가 상당히 높다.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모교인 연세대에서 은퇴선수 대상 맞춤형 재활 프로그램 강의를 구상하고 있다. 재활 트레이너의 위상 강화를 위한 아카데미 개설도 준비하고 있다. 뜻 맞는 제자, 후배들이 곧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다. 현장과 실력을 겸비한 실력파 재활 전문가가 20명쯤 되면 선수트레이너를 위한 본격적인 아카데미를 여는 것이 꿈이다.

선수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함께 버텨왔다. 최고, 최초의 타이틀보다 '선수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희망했다. "내가 해온 재활의 목적은 선수생명 연장이었다. 안다치고 경기력을 유지하며 오래오래 일자리를 갖게 해주는 일이다. 이제 은퇴선수의 생명연장을 위해 일하고 싶다. 은퇴선수가 전문교육을 통해 업그레이드되면 현장에서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이 선수 출신 '선배'를 쓰지 않겠나." 선수의 과거, 현재뿐 아니라 새로운 삶까지 계획하는 어 박사는 말 그대로 '재활 전문가'였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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