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나타난 '공공의 적'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3-06-17 15:35 | 최종수정 2013-06-18 08:14


이란을 꺾어라.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을 앞두고 지난 13일 파주 축구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
파주=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우리가 한-일전에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단순한 승부 이상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라이벌 의식이 버무러져 '절대 져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공동의 적을 만들면 하나로 뭉치기 쉽다. 스포츠에서 '공공의 적'은 가장 확실한 마케팅 전략이다.

좋은 예가 있다. 2011년 11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 알 사드의 2011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다. 알 사드는 말그대로 '공공의 적'이었다. 알 사드는 수원 삼성과의 4강 1차전에서 부상 선수 때문에 걷어낸 볼을 다시 돌려주지 않고 득점까지 한 비상식적인 매너로 난투극을 유발하고, 관중까지 폭행했다. 2차전에서 침대축구로 수원을 탈락시키더니, 결국 아시아축구연맹(AFC)의 비호 아래 징계까지 피했다. 팬들은 분노했다. 알 사드는 일련의 사건으로 '악의 축'이 됐다. 이날 결승전에는 무려 4만1805명의 관중이 몰려들었다. 전주월드컵경기장 최다 관중 기록이었다. 전북은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팬들이 보여준 열기는 유럽의 축구장이 부럽지 않았다.

알 사드 이후 모두가 싫어할만한 '공공의 적'이 생겼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최종전 상대 이란이다. 이란의 행보는 '밉상' 그 자체다. 지난해 10월 원정경기에서 도를 넘는 행동으로 빈축을 샀다. 입국비자를 출국 당일에 내주는 비매너를 보이더니, 훈련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훈련장을 내줬다. 최강희 감독은 11일 우즈벡전(1대0 승) 후 "이란이 조금 더 밉다. 원정가서 푸대접 받은 것을 기억한다. 이란에 아픔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의 원맨쇼가 시작됐다. 독설로 최 감독을 비난했다. 그는 13일 이란 페르시안풋볼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이란에서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란은 최선을 다했다. 최강희 감독이 이란 축구를 모욕했다. 한국 축구의 수치다. 이란 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최 감독에게 우즈벡대표팀 유니폼을 선물하겠다. 우즈벡 유니폼을 입을 용기가 있기를 바란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한국에 들어온 후에도 신경전을 이어갔다. 울산 강동훈련장에 불만을 표시하더니, 매번 최 감독을 운운하며 도발에 나섰다. 말이 많기로는 케이로스 감독 못지 않은 네쿠남 등 선수들도 도발 릴레이에 가세했다.

한국은 이를 갈고 있다. 최 감독은 케이로스 감독에게 "내년 월드컵은 포르투갈 집에서 TV로 보게될 것"이라는 한차례 응수 이외에는 함구하고 있다. 결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비기기만 해도 되는 경기지만, 비공개 훈련 등 그 어느때보다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팬들도 화답하고 있다. 18일 이란전이 열리는 울산월드컵경기장은 매진이 유력하다. 최종전을 넘어 '공공의 적'이 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팬들의 열망이다. 이래저래 뜨거운 이란전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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