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류왕' 위건이 쓴 기적과 후폭풍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3-05-12 12:10 | 최종수정 2013-05-12 12:10


사진캡처=데일리미러

말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모든 이들이 맨시티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객관적 전력에서 비교를 불허한다. 위건 베스트11의 몸값은 세르히오 아게로와 야야 투레를 합친 것만도 못하다. 분위기나 체력적 부분에서도 맨시티가 앞섰다. 올시즌 무관 위기에 놓여있는 맨시티는 영국축구협회(FA)컵에 모든 것을 걸었다. 주전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줬다. 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잔류에 사활을 건 위건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축구의 신은 위건을 향해 웃었다. 위건은 12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2~2013시즌 FA컵 결승에서 맨시티를 1대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위건은 0-0으로 팽팽히 맞선 후반 추가 시간 코너킥 기회에서 벤 왓슨의 절묘한 헤딩슛으로 승부를 갈랐다. 위건이 FA컵 정상에 오른 것은 구단 81년 역사상 처음이다.

위건은 전형적인 EPL의 중하위권 클럽이다. 위건은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인 데이비드 윌런의 투자로 2005~2006시즌 처음으로 EPL 무대에 승격했다. 입성 첫 시즌에 10위를 차지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위건의 이 후 EPL 이야기는 강등과의 싸움으로 설명할 수 있다. 매년 힘겨운 사투를 벌이던 위건은 후반기만 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잔류에 성공했다. 팬들은 7시즌 연속 잔류에 성공한 위건에게 '잔류왕' '생존왕'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당연히 메이저 대회 우승 경력도 전무하다. 2005~2006시즌 리그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이번 FA컵 우승이 값질 수 밖에 없다.

결승골을 넣은 왓슨의 스토리에도 눈길이 간다.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위건 감독은 후반 36분 조르디 고메스를 빼고 투입한 왓슨을 투입했다. 위건의 주축 미드필더였던 왓슨은 올시즌 부상으로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왓슨은 지난해 11월 리버풀과의 경기 도중 오른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6개월 가까이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이달 초 웨스트브롬위치와의 경기를 통해 복귀를 신고한 왓슨은 결승전 결승골로 시즌을 통째 날린 아쉬움을 털어냈다.

위건은 이번 우승으로 유로파리그 티켓을 획득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다. 위건에게는 FA컵 이상의 중요한 경기가 남아있다. 위건은 두 경기를 남긴 지금, 승점 35점으로 20개 팀 가운데 18위에 머물고 있다. 강등을 피할 수 있는 17위 뉴캐슬과는 승점 3점 차이다. 지금까지 FA컵 우승팀이 같은 시즌 강등된 사례는 없다. 이번 FA컵 우승으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만큼 잔류에 대한 강한 확신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마르티네스 감독의 거취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이번 우승으로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맨유로 떠난 에버턴, 마누엘 페예그리니 감독이 팀을 떠날 가능성이 높은 말라가 등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자칫 팀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잔류왕에서 FA컵의 제왕으로 떠오른 위건이 과연 극적인 EPL 잔류까지 이어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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