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팀의 12-13 시즌이 통째로 달려있었던 마지막 10분, 격변했던 흐름 속 QPR이 던져준 메시지는 '안 될 팀은 안 된다'였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절실함을 담았던 그들은 한 명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선제골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4분이 주어진 추가시간이 다 지나가던 무렵 결국 동점 골을 얻어맞고야 말았다. 박지성이 벤치만 지켰던 위건전, QPR은 그렇게 강등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최근 "팀의 몸집을 줄이겠다."는 페르난데스 구단주의 인터뷰에 따라 고액 연봉자인 박지성의 이적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편인데, 이젠 정말 떠날 채비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득점이 절실했던 QPR이 믿을 건 절정의 몸 상태를 보이던 타운센트뿐이었다. 덕분에 오른쪽 측면이 살아난 QPR은 이 선수가 중앙으로 꺾어 들어와 플레이 메이킹이나 과감한 슈팅에 관여하던 부분에서도 꽤 큰 재미를 보았다. 다만 자모라가 빠진 뒤 레미가 가장 높은 지점으로 올라가 기회를 만들려고 할 때 처진 스트라이커 진영에서 볼을 연계해줄 선수가 없었는데, 여기에선 호일렛의 역할이 부족했다. 타운센트가 고군분투했어도, 수비 진영에서 이 선수의 전진만을 기다리던 위건의 플랫 4를 무너뜨리기에는 살짝 역부족이었던 것. 공격 옵션을 하나 빼놓고 상대한 것치고는 꽤 괜찮은 전반전 흐름이었으나 레미가 골포스트를 때린 뒤 이에 준하는 결정적인 슈팅이 나오지 못한 건 다소 아쉬웠다.
승부수 던진 타랍 카드, 그리고 레미의 기적 골.
후반 40분, 수비에 무게를 두고, 간간이 공격을 시도하던 QPR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크 정면에서 내준 프리킥에서 위건이 약속된 움직임으로 수비벽 반대쪽을 노려 슈팅을 시도했지만, 이것이 또 다른 수비를 맞고 튀어나온 것. 공격 진영으로 성큼성큼 내달릴 때마다 긴 볼 터치가 문제였던 음비아가 이번만큼은 본인의 능력을 적극 활용해 대지를 가르듯 위건 진영으로 향했고, 부지런히 오른쪽 터치라인을 따라 쇄도하던 레미의 발 안쪽에 제대로 맞은 슈팅은 골대 반대 구석으로 꽂혔다. 난파선 QPR호가 서서히 침몰하던 중 선원들이 각자 살 길을 찾아 구명보트와 조끼를 준비하던 때, 저 멀리 어렴풋이 구조선이 보이는 듯했던 그런 골이었다.
|
하지만 그로부터 10분 뒤, 정확히 93분 33초 위건의 프리킥은 야속하게도 골망을 갈랐다. 수비벽 타랍의 머리가 마지막 저항으로 통하지 않았을 때, 천하의 세자르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프리킥의 궤도, 낙차, 파워는 훌륭했다. 여기서 참으로 아쉬운 건 '선제골 득점 후 취했던 경기 운영 방식과 마지막 한 장 남은 교체 카드의 선택'. 레미의 선제골이 터진 후 10분도 채 남지 않았던 상황, 후반 44분 레드납 감독이 꺼내든 건 마키 카드였다. 물론 승리가 절실했던 위건이 앞으로 나오는 건 뻔했고, 비록 QPR이 숫자가 하나 적다 해도 노려볼 만한 뒷공간이 생길 수는 있었다. 게다가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수비인 것도 맞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양보한다 해도, 마키를 투입하면서까지 계속 전진하려는 기조를 보이고, 추가 골을 노렸다는 건 과욕이자 사치였다.
결과론적인 얘기겠지만, 그 상황에서 나와야 할 건 더욱 화끈한 승리보다는 가까스로 얻어낸 리드를 조금 더 지켜줄 수 있는 카드였다는 생각이다. 타랍을 꼭짓점에 두고 음비아-지너스 조합으로 꾸린 중원 조합의 밸런스가 붕괴됐던 풀럼전의 교훈. 그리고 레미의 선제골이 터진 이번에야말로 중원 밸런스에 초점을 맞춰 그 한 골을 지켜야 했던 상황. 적절한 위치 선정으로 상대 역습을 저지하고, 태클로써 상대 공격의 맥을 끊어버리는 플레이가 필요했던 QPR엔 승리의 확률을 높여주는 박지성이 절실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순간 승점 2점을 잃은 QPR호에 다가오던 건 구조선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던 선박일 뿐이었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