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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 사진=TOPIC/Splash 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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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 사진=TOPIC/Splash News |
축구사에는 수많은 라이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최고는 '황제' 펠레와 '천재' 마라도나다. '펠레와 마라도나 중 누가 더 선수인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해답없는 논쟁이다. 서로 다양한 논리를 들어 펠레와 마라도나를 옹호하지만 결론이 나질 않는다. 이유가 있다. 활약했던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직접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니 '꿈의 대결'을 상상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는 그 상상속의 대리전을 직접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1987년생과 1985년생으로서 정확히 동시대에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각각 최고 클럽들의 에이스로 앞으로 계속해서 맞대결을 펼쳐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이 시대 최고의 라이벌' 리오넬 메시(26·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8·레알 마드리드) 이야기다.
두 선수 모두 전문 골잡이 스타일은 아니다. 메시는 스리톱의 가운데에 포진해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중앙 공격수들과 다르다. 호날두는 측면에 위치해 있지만 좌,우, 중앙을 가리지 않는 폭넓은 움직임을 바탕으로 공격에 나선다. 그런데도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골'이다. 둘간의 득점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9~2010시즌부터는 경기당 한골 이상의 골을 넣고 있다. 역대 위대한 스트라이커들을 무색케 하는 놀라운 득점 기록을 세우며 '신계'의 선수들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먼저 메시의 기록을 살펴보자.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메시는 2012년 한해 동안만 91골을 넣으며 40년 동안 묵혀 있던 한해 최다골 신기록을 세웠다. 종전 기록은 1972년 독일의 게르트 뮐러가 세운 85골이었다. 그는 역대 프리메라리가 한시즌 최다골(50골), 역대 프리메라리가 최다 경기 연속골(17경기), 엘클라시코 최다골(18골), 한시즌 최다 해트트릭(8회), 바르셀로나 통산 역대 최다골(306골), 뮐러가 갖고 있던 한시즌 최다골(73골) 등을 차례로 경신하며 '기록브레이커'라는 별명을 얻었다. 유럽챔피언스리그 최초의 4연속 득점왕, 챔피언스리그 한경기 최다골(5골), FIFA클럽월드컵 최다 득점(4골) 등 기록들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다. 메시는 그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FIFA-발롱도르를 2009년 이래 4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마라도나가 다시 돌아왔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호날두도 만만치 않다. 호날두는 프리메라리가에서 한시즌 동안 리그에 참가 중인 모든 팀에게 골을 넣은 유일한 선수다. 엘클라시코에서 6경기 연속골을 넣은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유럽 최고의 득점기록을 올린 선수에게 주어지는 유럽 골든 슈를 각기 다른 리그에서 뛰며 수상한 첫 선수다. 레알 마드리드 최단기간 100골, 레알 마드리드 한시즌 최다골(60골), 레알 마드리드 한시즌 최다 해트트릭(7회) 등 스페인 입성 단 4시즌만에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사실 호날두는 그렇게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호날두는 맨유에서 뛰던 2006~2007시즌 최초로 리그 두자릿수 득점에 성공하며 득점에 눈을 떴다. 루니, 테베스와 삼각편대를 구축한 호날두는 2007~2008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31골)과 유럽 골든 슈(42골),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에 성공하며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메시는 1987년 아르헨티나 산타페주의 로사리오에서 태어나 5세때 아버지가 코치를 맡고 있는 지역클럽에서 공을 차기 시작한다. 그는 고국 아르헨티나에서 꽃을 피우지 못했다. 하지만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돋보였다. 재밌는 일화가 있다. 뉴웰 올드 보이스 유소년 팀 시절 메시는 결승전을 앞두고 문이 고장난 화장실에 갇혔다. 메시는 우승팀에 주어지는 자전거 선물을 꼭 받고 싶었다. 0-1로 전반을 끌려가던 팀은 화장실 유리를 깨고 탈출한 메시가 후반부터 합류하며 3대1 승리를 거뒀다.
어린 시절 메시의 별명은 벼룩(la pulga)이었다. 가벼운 몸놀림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장 호르몬 장애로 인해 유난히 작은 그의 키 때문이다. 10세때 1m27이었고, 13세때는 1m44였다. 그의 팀원들 중 벤치에 앉을때 유일하게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선수였다. 메시 영입에 관심을 보이던 아르헨티나의 명문 클럽 리베르 플라테는 900달러에 불과한 치료비 지불에 난색을 표하며 그를 포기했다. 아르헨티나는 병든 메시를 포기했다. 메시의 축구 인생은 바르셀로나에 의해 바뀌게 된다. 2000년 당시 바르셀로나의 단장으로 일하던 카를레스 렉사치는 메시의 경기를 보자마자 "맙소사, 우리는 저 애와 계약을 해야해!"라고 소리질렀다. 메시는 2000년 12월 냅킨에 바르셀로나와의 가계약서를 썼고, 바르셀로나는 모든 치료비를 부담하기로 했다. 천부적 기술에 체계적 지원을 받은 메시는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성장을 거듭했다. 메시는 17세 114일만에 경기에 나서며 바르셀로나 역사상 가장 최연소 출전경기를 세웠다. 그리고 17세 307일 만에 골을 넣으며 바르셀로나 선수 중 가장 어린 나이에 골을 넣은 선수가 됐다.
호날두는 1985년 포르투갈 서남쪽 해변에 위치한 메데이라에서 태어나 8세에 아마추어 팀인 안도리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그의 빠른 스피드에 관한 재밌는 일화가 있다. 가난한 동네에 살던 호날두는 거리에서 축구를 해야했다. 공이 이웃집으로 넘어갈때면 주인이 알기 전에 빨리 가서 공을 꺼내와야 했다. 호날두는 이후 자신의 스피드가 향상된 것은 이때 미친 듯이 뛰었던 덕분이라고 언급했다. 빠르게 성장하던 호날두는 1997년 포르투갈의 명문 스포르팅 리스본 유니폼을 입었다. 승승장구하던 호날두는 이때 첫 좌절을 맛봤다. 지역 사투리를 쓰던 호날두는 스포르팅 지역 유망주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5세때는 심각한 심장병에 시달려야 했다. 부정맥 문제로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빨리 뛰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간호를 위해 이사한 어머니 덕에 마음을 다잡은 호날두는 다시 성장을 거듭했다. 2001년 그는 스포르팅 역사상 16세 이하부터 17세 이하, 18세 이하, 2군, 1군팀까지 한시즌에 모두 거친 최초의 선수가 됐다. 청소년 대표팀에도 승선한 호날두는 다시 한번 인생의 전환기를 만났다. 맨유와의 연습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띈 호날두는 1220만파운드(약 205억원)의 이적료에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EPL 역사상 10대 선수 최고의 이적료였다. 호날두는 데이비드 베컴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으로 공석이 된 7번 유니폼의 주인공이 됐다.
엘클라시코, 그리고 끝나지 않을 전쟁
2009년 호날두는 어린시절 로망이었던 레알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그의 몸값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8000만파운드(약 1346억원)다. 레알 마드리드가 이같은 엄청난 이적료를 지불하고 호날두를 영입한 이유는 딱 하나다. 메시가 이끌고 있는 철천지 원수 바르셀로나를 잡기 위해서다. 바르셀로나는 2008~2009시즌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휘 아래 완벽한 축구로 트레블(리그, FA컵,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새 회장으로 당선된 플로렌티노 페레스는 바르셀로나에 밀려 맥을 추지 못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새로운 중흥을 위해 '제2기 갈락티코' 정책을 들고나왔다. 카카, 카림 벤제마 등을 영입한 레알 마드리드는 갈락티코의 정점을 찍을 호날두 영입에 성공했다. 그 전까지도 엘 클라시코는 세계 최고의 더비 중 하나였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 메시와 호날두의 맞대결로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메시와 호날두의 첫 맞대결이었던 2009~2010시즌은 2연승으로 메시의 우세 속에 끝이 났다. 2010~2011시즌부터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됐다.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 킬러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명장 조제 무리뉴 감독을 영입하며 전력을 더욱 강화했다.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는 프리메라리가, 코파 델레이(스페인국왕컵), 유럽챔피언스리그까지 우승의 길목마다 마주했다. 결과는 2승2무1패. 바르셀로나의 우세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바르셀로나에 1대0으로 단 한번 이겼을 뿐이었다. 호날두는 연장 전반 13분 결승골을 터뜨리며 모처럼 이름값을 했다.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도 호날두와 메시는 두번 만났는데, 메시의 바르셀로나가 1승1무로 레알 마드리드를 제압했다. 호날두는 40골로 득점왕에 올랐지만 세상은 메시에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2011~2012 시즌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5차례 대결에서 바르셀로나가 3승1무1패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바르셀로나의 4연패를 저지하고 마침내 4시즌 만에 정상을 탈환하게 된다. 호날두는 무려 46골을 터뜨리며 팀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득점왕은 50골을 기록한 메시의 몫이었다. 메시는 이 기간 동안 바르셀로나의 전성시대를 이끌며 연속으로 FIFA-발롱도르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2008년 FIFA 올해의 선수에 오르며 축구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던 호날두는 메시의 그늘에 가려 세계 축구의 2인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2012~2013시즌은 호날두에게 반전의 계기가 됐다. 레알 마드리드는 마침내 바르셀로나 공략법을 익혔다. 시즌 전 스페인 슈퍼컵에서 1승1패(4대4,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레알 마드리드 우승)를 한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2승2무를 거두며 처음으로 우위를 차지했다. 호날두는 6경기 연속으로 득점에 성공하며 메시에 한발 앞서는 모습을 보였다. 메시의 기세가 워낙 대단해 득점왕은 물건너 갔지만, 적어도 호날두는 메시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메시와 호날두의 엘 클라시코는 계속될 수 있을까. 일단 메시는 2018년까지 바르셀로나와 계약 연장에 성공했다. 메시는 자신의 성장호르몬을 고쳐준 바르셀로나에 대한 강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를 떠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시즌 초 '슬픔' 논란과 팀원들과의 불화, 무리뉴 감독의 이적설 등이 겹치며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충성심이 급격히 식은 상태다. 맨유, 파리생제르맹, 맨시티 등이 돈다발을 들고 그를 유혹할 채비를 마쳤다.
스페인에서의 전쟁이 끝나도 상관없다. 세계 축구사란 하늘을 밝히는 태양이 되기 위한 두 영웅의 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