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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2부 리그 소속 블랙번에 당한 FA컵 패배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분데스리가 최강자' 뮌헨과의 만남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 중 벵거 감독은 블랙번전의 쓰린 기억을 들춘 언론을 향해 불만을 토로했고, 다소 삐딱한 답변까지 내놨다는 후문이다. 아스널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것이 어느덧 8년.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 시간이 지날수록 거센 반대 세력과 부딪혀왔던 벵거 감독은 이번 완패로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됐다. 물론 2차전이 남아있지만, 이번 1차전 내용이라면 뒤집기가 마냥 쉬워 보이지도 않는다.
탄탄한 내용은 전반 20분 만에 두 골이나 몰아치는 결실로 이어졌다. 전반 7분, 슈바인슈타이거가 슬쩍 올라가면서 시선을 끌던 순간 메르테사커가 뒤에 위치한 크루스를 놓쳤고, 그 상황에 터진 발리 슈팅은 어찌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전반 20분 코너킥 상황에서는 반 부이텐의 헤딩 슈팅이 튀어나오자 뮐러가 재차 슈팅해 홈 팬들을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다. 심리적으로 말리기 시작한 아스널은 사냐와 아르테타가 연이은 경고를 받는 등 다소 거친 반응을 보였고, 깔끔하지 못한 볼 처리의 반복에 적잖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아가긴 했으나, 홈 팀 입장에서는 더없이 침울한 시간대였다.
실패로 돌아간 월콧 카드, 극심히 흔들린 수비진.
전반 초반 반짝했던 역습이 연이은 실점으로 사그라진 뒤, 아스널은 좀처럼 공격의 템포를 살려내질 못했다. 이들의 공격은 너무나도 촘촘했던 뮌헨의 라인 속에 갇혔고, 속공이 지공으로 변해버려 월콧의 스피드를 살리기도 어려웠다. 카솔라가 계속 위험 진영 바깥으로 밀려나 월콧과의 거리가 벌어지자 결정적인 패스가 제공될 확률도 확연히 줄어들었고, 포돌스키의 활약은 만회골 이후 흐름을 타던 짧은 순간에 그쳤다. 홀로 유유히 빛난 윌셔의 드리블 돌파를 받쳐줄 만한 자원이 없던 상황, 그렇다고 월콧이 상대 수비를 등지는 포스트 플레이를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선에서의 분투가 승산이 없을 때 상대 뒷공간을 찌르는 롱패스를 노려봄 직도 했지만, 이마저도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이 와중에 이들을 더욱 참담하게 했던 건 흔들릴 대로 흔들린 수비진. 아스널에도 분명 볕이 든 시간대는 있었다. '석연찮은 판정으로 얻어낸 코너킥 상황에서 터진 포돌스키의 헤딩골' 이후 지속된 몇 분 동안 이들은 확실히 좋은 흐름을 보였다. 다만 알라바-단테-반 부이텐-람으로 이어진 상대 수비와 비교해 부실함을 드러낸 베르마엘렌-코시엘니-메르테사커-사냐 라인이 결국 만주키치에게 세 번째 골까지 헌납하며 무너진 것이 문제였다. 측면은 측면대로 크로스를 쉽게 내주었고, 중앙은 중앙대로 마킹에 실패하며 내준 3골, 실점 이후 울상이 된 카솔라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준 경기가 아니었나 싶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