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영 인터뷰 "(박)지성이 형이 통역"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3-02-08 08:41 | 최종수정 2013-02-08 10:24


윤석영이 영국 런던에서 7일 인터뷰를 가졌다. 런던=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언제나 처음은 설레다. 첫 만남, 첫 사랑, 첫 직장. 처음이라는 것의 설레임은 평생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다.

윤석영도 그랬다. 첫 만남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한껏 상기된 어린 아이 같았다. 생애 첫 이적. 그것도 해외진출. 모든 계약이 마무리된 뒤 맞이하는 첫 훈련의 설레임과 기쁨에 흠뻑 젖어 있었다.

윤석영은 7일 밤(한국시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퀸즈파크레인저스(QPR)와 첫 훈련을 가졌다. 1시간 10분여의 첫 훈련을 마치고 온 윤석영을 런던 외곽 자이온 레인에서 만났다. 활짝 웃는 그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강등

사실 윤석영은 걱정이 많았다. 첫 이적이자 해외진출이 2부리그 강등이 유력한 QPR이었다. 현재 QPR은 EPL 최하위다. 분위기가 처질 수 있었다. 시즌 중반 이적생의 역할은 하나다. 팀을 강등에서 구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분위기 파악이 최우선이다.

다행스러웠다. QPR의 팀분위기는 괜찮았다. 윤석영은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 선수들이 모두 자율적으로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밝게 웃고 있는 윤석영을 보고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내린 결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물어보기로 했다. 많은 팬들은 윤석영이 QPR로 이적한다고 했을 때 걱정부터 했다. QPR의 2부리그 강등 가능성 때문이었다.

윤석영도 알고 있었다. 2부로 가면 여러가지로 손해를 본다. EPL보다 거칠고 스포트라이트도 줄어든다. 하지만 문제될 것이 없었다. 가기로 했다. 윤석영은 "3부리그에 있는 MK돈스와의 FA컵 경기를 봤다. QPR은 2대4로 졌다. 하부리그도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래도 하부리그로 가면 스포트라이트는 줄어든다. 하지만 경험 축적이나 개인의 발전에 있어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강등은 더 이상 윤석영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박지성

윤석영이 QPR을 선택하는데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한 이는 박지성이다. 6개월 먼저 QPR에 와서 터를 잡고 있었다. 첫 해외 진출인 윤석영으로서는 박지성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든든했다.

사실 QPR과 계약하고 난 뒤 박지성에게 처음 들은 말은 걱정이었다. 윤석영은 "(박)지성이 형을 4일 A대표팀 숙소(영국 말로우)에서 처음 만났다. 대표팀에 인사하러 갔는데 있더라"면서 "'팀이 어려운 상황인데 더 힘들수도 있다'라며 걱정부터 하더라. 그래도 많이 도와주어서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윤석영에게 박지성은 쉽지 않은 존재다. 8살 차이가 난다. 박지성이 2002년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 골을 넣었을 때 윤석영은 중학생이었다. 꿈에서만 그리던 존재다. 함께 발을 맞추어본 적도 없다. 2011년 아시안컵이 유일한 기회였다. 하지만 윤석영은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윤석영이 떠난 대표팀에 박지성이 들어왔다. 아시안컵이 끝나고 박지성은 A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서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윤석영은 마음을 크게 먹었다. 서먹한 것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박지성은 친절했다. 먼저 다가왔다. QPR의 큰 형인 박지성은 윤석영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실질적인 도움은 언어다. 박지성이 통역관을 자처하고 나섰다. 해리 레드냅 QPR 감독과의 미팅에도 박지성이 함께 들어갔다. 레드냅 감독의 말을 옆에서 다 통역해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윤석영은 박지성에게 언제부터 영어를 잘했냐고 물었다. 박지성의 대답은 "처음에는 못했는데 영국와서 있다보니 늘었다"였다. 자신감이 생겼다.

윤석영에게 자그마한 목표가 생겼다. 지금은 박지성의 도움을 많이 받지만 작은 일부터 자기 혼자 힘으로 해결해나갈 참이다. 박지성은 "지금은 모르는 것을 다 (박)지성이 형에게 물어보지만 며칠 후부터는 달라질 거다. 내 힘으로 할려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래도 힘든 일이 있다면 '지성이 형을 찾을' 눈을 하고서.

구자철 기성용 그리고 1년 후배 동원이

윤석영의 QPR행 소식에 올림픽대표팀 동료들은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축하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담담히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윤석영보다 먼저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었다.

QPR과의 계약을 확정짓고 윤석영은 잠시 한국에 왔다. 취업비자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 때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핵심은 'K-리그에서 하던대로 해라'였다. "(구)자철이 형이 공항 입국 기사를 봤나보다. 당시 나는 '유럽가서 고생할 각오로 뛰겠다'고 했다. 그걸 본 자철이 형이 '문화와 언어의 차이는 인정해라. 대신 K-리그에서 하던 식으로 하면 된다. 어짜피 경쟁은 있는 것이다.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면 된다'는 문자를 보냈다.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기성용(스완지)은 터프했다. 격려보다는 괜히 타박을 주었다. 윤석영은 "(기)성용이 형은 '야. 그래도 너는 런던에 있으니 행복한 줄 알아라. 내가 있는 스완지는 한국으로 치면 광양이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기성용의 말 속에는 '격려'와 '사랑'이 스며들어 있었다. 기성용은 크로아티아전이 끝나고 신광훈(포항)과 함께 윤석영을 런던 시내의 요리집으로 데려가 맛있는 것을 사주었다.

윤석영에게 조언을 한 선수는 하나 더 있었다. 윤석영의 광양제철고 1년 후배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이었다. 윤석영은 "그래도 내가 하늘같은 고등학교 1년 선배인데 (지)동원이는 자기가 선배처럼 말하더라"고 밝혔다. 그래도 따뜻한 조언이었다. 윤석영은 "(지)동원이가 '나온 것은 축하하는데 생활이나 언어는 고생을 많이 할 거 같다'고 하더라. 먼저 나왔기에 날 진심으로 걱정하더라"고 말했다.

새로운 동료들

QPR 훈련 첫 날이지만 벌써 동료들을 얻었다.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들어온 레미는 6일 크로아티아전을 함께 봤다. 축구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비우와 그라네로와도 친해졌다.

특히 파비우와는 이미 인연이 있다. 2006년 16세 대표팀 시절이었다. 4개국 대회에서 한국은 브라질과 마주했다. 당시 윤석영이 오른쪽 풀백, 파비우가 왼쪽 풀백이었다. 얼굴을 맞대고 경쟁했다. 파비우는 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가 나왔다. 윤석영은 "파비우도 그 경기를 기억하더라. 그러더니 '내가 골 넣었다'고 자랑하더라. 나는 '너 잘났다'고 응수했다. 그러면서 웃었다"고 했다.

파비우와 더욱 친해진 것은 포르투갈어 덕택이다. 윤석영은 전남 시절 슈바 등 브라질 선수들에게 포르투갈어 몇 마디를 배웠다. 두두뱅(괜찮아?)같은 단어가 대표적이다. 물론 실전에서는 욕설이 더욱 잘 먹힌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도 검증됐다.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에게 0대3으로 졌다. 윤석영은 도핑을 받게 됐다. 브라질 쪽에서는 마르셀로가 불려왔다. 대기실에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윤석영은 애교있게 웃으면서 욕설을 날렸다. 마르셀로가 방긋 웃었다. 그때부터 인사도 하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유니폼도 교환했다. 파비우도 똑같았다. 안면을 튼 뒤 애교 욕설 작전을 펼쳤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꿈을 향해 달린다

첫 훈련을 막 끝낸 윤석영은 "정말 '이제는 시작했구나'는 마음이 들었다. 유럽에 온 것은 축하받을 일이지만 살아남아야 한다. 주전 경쟁에서도 이기겠다. 좋은 선수로 QPR의 잔류도 이끌고더 좋은 팀으로도 가고싶다"고 말했다.

꿈은 컸다. 윤석영은 "올림픽보다 이곳(EPL)이 더 큰 무대다. 어려운 경기들이 많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이어 "정말 좋은 클럽으로 가고 싶다. 불가능은 없다. 꿈을 크게 가지고 맞부딪히겠다"고 다짐했다.
런던=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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