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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의 백미는 내로라하는 각 리그의 챔피언들이 한데 모인 D조였다. 조별 예선임에도 웬만한 토너먼트를 능가하는 '대박' 대진이 매 라운드 잡혀 있었고, 축구 팬들의 관심을 독식하는 건 당연해 보였다. 이른바 죽음의 조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나머지 조는 16강 무대 진출 팀을 쉽게 점칠 수 있는 대진이 형성됐고, D조의 휘황찬란한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에 가린 그들은 엄청난 관심까지 끌지는 못했던 게 사실이다.
샤흐타르와 같이 잘 나가는 팀들을 보면 일련의 공통점이 있다. 특정 자리에서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알짜 자원'들이 있고, 이들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할 '훌륭한 감독'이 있으며, 이들이 만들어낸 '조화'는 거대한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원동력이 된다. 여기에 리그 내에서의 탄탄한 입지로 얻은 '자신감'이라는 플러스 요소도 있다.
가장 최근에 치른 첼시전은 어떠했을까. 샤흐타르는 절대 무리하지 않았고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나가며 그들만의 페이스를 유지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페르난지뉴가 중원에서 볼 운반-중거리 슈팅-압박과 커팅에 재능을 보였고, 이를 바탕으로 오른쪽 측면 수비에서 치고 올라오는 스르나의 오버래핑을 백분 활용했다. 여기에 안정된 키핑과 넓은 시야로 횡패스를 크게 돌리면서도 어느샌가 박스 안으로 침투해 골을 뽑아낸 윌리안까지 가세해 스탬포드 브릿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비록 패하긴 했으나, 그들이 남긴 인상은 예사롭지 않았다.
1위 첼시 : 승점 7 / 2승 1무 1패 / 10득 6실
2위 샤흐 : 승점 7 / 2승 1무 1패 / 7득 5실
3위 유베 : 승점 6 / 1승 3무 0패 / 8득 4실
4위 노르 : 승점 1 / 0승 1무 3패 / 1득 11실
샤흐타르, 그들의 발자취는 4라운드까지 진행된 E조의 성적표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첼시가 종료 직전 터뜨린 극적 결승골로 샤흐타르를 침몰시키며 E조의 미로에서 출구를 찾기란 더욱 어려워졌지만,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확실한 점은 첼시나 유벤투스가 안심할 수준은커녕 마지막 순간까지 치열하게 피를 튀겨가며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승점 상으로는 노르셸란을 제외한 3개 팀이 모두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앞으로 남은 두 경기의 일정을 살펴봤을 땐 각 팀이 처한 상황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첼시와 유벤투스가 맞붙는 이번 5라운드 결과에 따라 수많은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는데, 샤흐타르가 노르셸란을 잡는다면 ?아무래도 '2강'으로 꼽혔던 두 팀 중 하나는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게다가 첼시와 샤흐타르가 최하위 노르셸란과의 경기에서 또 한 번 승리를 챙긴다면, 노르셸란전 1승 1무를 기록한 유벤투스는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축구란 게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지만 현 상황으로는 그렇다.?
점입가경 5라운드, 현재 이들의 최근 분위기는?
챔스 내에서의 성적과 일정도 중요하지만, 이번 5라운드 결과의 근간이 될 리그 내에서의 최근 폼도 따져봐야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세 팀 모두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우선 E조 1위 첼시는 매년 밟아 오던 전철을 또 한 번 되풀이하는 중이다. 10월 중순까지는 승승장구였으나 10월 말부터 시작된 만만치 않은 팀들과의 연전에서 조금씩 힘든 내색을 하곤 했다. EPL 최근 4경기에서의 성적이 2무 2패, 줄곧 지켜왔던 1위 자리에서 내려와 현재는 3위다.
2, 3위 샤흐타르와 유벤투스는 어떠할까. 두 팀 모두 리그 1위를 굳건히 지키고는 있으나 최근 들어 살짝 흔들리는 모습이다. 리그의 상대적인 클래스 차이가 있어 정확한 비교는 어렵겠지만, 올 시즌 우크라이나 리그 기준 15연승으로 파죽지세의 기세를 뽐낸 샤흐타르는 하필 챔스 일정을 앞둔 지난 주말 시즌 첫 패배를 기록했다. 20년 전 밀란의 58경기 연속 무패 기록에 도전하던 유벤투스는 인테르에게 패하며 무패 행진을 마감 지었고, 지난 주말 라치오와의 일전에서는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최근 폼에서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는 팀이 없다는 것도 E조의 안개를 더욱 짙게 하는 요소 중 하나. 16강을 확정 지은 팀도, 유력한 팀도 속속 나오고 있는 형국에 E조는 아직도 조 1위와 3위의 승점 차가 고작 1점이다.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쫄깃한 진행이 이어지고 있으며, '경쟁'을 뛰어넘어 점점 '전쟁'으로 흘러가는 추세다. 과연 이 외줄 타기에서 어느 팀이 유로파로 떨어지게 될까. 21일 새벽 4시 45분, 이들의 향방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할 5라운드에 주목해보자.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