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라운드의 로맨티시스트가 탄생했다. 최근 들어 K-리그를 강타하고 있는 특급 미드필더 황진성(포항)이 그 주인공이다.
당찬 각오를 밝힌 황진성의 옆에는 작은 비닐 봉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취재진들 모두 처음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취재진으로부터 '골세리머니'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황진성은 "준비했던 세리머니가 있었다"면서 비닐봉지에서 뭔가를 끄집어 냈다. 유니폼 아래 받쳐 입는 언더셔츠였다. 언더셔츠에는 '유리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라는 문구가 씌어져 있었다. 경기가 있기 이틀전인 13일이 자신의 동갑내기 아내 신유리씨의 생일이었다. 황진성은 경기에서 골을 넣게 되면 이 언더셔츠를 내보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정작 경기에서 황진성은 사랑이 가득 담긴 문구를 내보이지 못했다. 선수들은 대개 후반에 들어가기 전 유니폼을 갈아입는다. 황진성 역시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 언더셔츠 착용을 깜빡하고 말았다. 황진성은 골을 넣고 난 뒤 특유의 티보잉(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세리머니)을 하는데 그쳤다.
그래도 황진성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더셔츠를 기자회견장으로 들고 나왔다. 예상은 적중했다. 자신의 사랑을 아내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황진성은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면서도 싱글벙글이었다.
수원=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