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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월드컵이 4년 마다 '당연히'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어버렸는데, 그 어디에도 '당연할' 이유는 없다. 월드컵 4강 신화와 원정 16강을 이뤄냈을지라도, 아시아 축구의 레벨이 전체적으로 향상돼 본선으로 가는 길목엔 까다로운 팀 투성이다. 험난할 수밖에 없는 일정 속, 힘겨운 우즈벡 원정에서 승점 1점을 챙겨왔으니 실패라고 평할 수만은 없다. 다만 아직 최종 예선 5경기를 남겨두고 있고, 우리의 시선은 2년 뒤 브라질에 맞춰져 있으니, 내용 면에서 아쉬웠던 점을 되짚어볼 필요는 분명 있다.
이 중 '잔디'에 대해선 하고 싶은 말이 특히 많다. 상대도 똑같은 환경에서 경기를 치른 건 맞지만, 그 팀은 그동안 해당 잔디에서 경기를 치러왔고, 대한민국은 최근 전적 상 이번 한 경기가 전부였으니 적응 면에선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볼 바운드만 봐도 K리그나 EPL을 봤을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고, 이 탓에 볼을 잡아두는 키핑 하나하나도 굉장히 불안정했다. 또, 고요한이 측면 수비에서 고전했고, 기성용의 자책골 직전코너킥을 내주던 장면에서 박주호가 위기를 초래했던 데에서는 잔디의 미끄러움도 한몫했다.
떨어진 폼, 좀처럼 살아나지 못한 공격력.
앞 선으로 전진한 우즈벡의 밀집된 전형을 짧은 패스 흐름만으로는 뚫어내기 힘들었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나온 것이 공중으로 붙여주는 패턴이었다. 이정수의 롱킥은 상당히 정확한 편이었고, 더욱이 우즈벡 중앙 수비들의 공중볼 처리가 깔끔하지 못한 덕분에 수비 뒷공간으로 붙여주었을 때의 공격 주효도 높았다. 다만 공중 경합의 적임자로 꼽혔던 이동국이 잠잠했던 탓에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고, 후반 9분 김신욱이 되어서야 그나마 물꼬를 텄다는 생각이다.
답답했던 경기 중에 두 골을 뽑아냈다. 특히 곽태휘가 터뜨린 첫 골은 경기 흐름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전반전을 마쳤다는 점에서 정말 소중한 골이었다. 물론 후반 종료 직전에 잡은 박주영의 일대일 찬스를 비롯 역전의 기회를 놓친 게 아쉽기도 했지만, 떨어진 폼으로 좀처럼 살아나지 못했던 공격력을 감안하면 두 골도 감지덕지는 아니었을까.
내용도 결과도 실망스러웠던 수비력.
숨이 터지기도 전에, 경기 시작부터 맹공을 퍼부은 우즈벡의 기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어 보였다. 이른 시각 선제 실점 후 안정을 빨리 찾지 못한 것, 역전골 이후 금세 동점골을 내주었던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는데, 수비 숫자가 부족해서 생긴 일은 절대 아니었다. 숫자의 문제보다는 수비 진영에 머무는 선수들이 공간을 선점했음에도 라인 간 간격이 오밀조밀하지 못한 원인이 컸고, 상대 선수들이 빈공간으로 들어올 여지를 사전 봉쇄하지 못하는 달갑지 않은 상황만 반복됐다. 이런 맥락 속에서 고요한이 위치한 측면 공간은 상대 공격진의 집중 타겟이 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앞서 말했듯, 폼이 떨어진 공격수들의 문제는 수비 부분에서도 나타났다. 전방에서의 조직적인 압박 형태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여기서 순조롭게 시작된 우즈벡의 패스 흐름은 기성용-하대성 라인까지 유유히 전진했다. 플랫 4에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6명으로 꾸린 기본 수비 대형이 우즈벡의 속공을 지공으로 지연시켜 놓아도, 1.5선에 배치된 선수들의 수비 전환이 너무 느려 효과를 보지 못했다.
공격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 답답한 흐름 속에서 허용한 세트피스 실점은 맥을 확 꺾어놓았다. 우즈벡은 10개 넘는 코너킥을 지독할 정도로 골대에 근접하게 붙였고, 미리 약속된 움직임에 의해 이를 잘라먹는 헤딩을 시도했는데, 이러한 장면에서 두 골이 모두 나왔다. 실점 장면이 갖는 연관성은 앞으로 최강희호가 떠안아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됐음은 물론이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