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대왕' 최진한, 경남의 극적 8강행 이끈 원동력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2-08-26 21:24 | 최종수정 2012-08-27 06:50


사진제공=경남FC

최진한 경남 감독의 손에는 언제나 들려있는 것이 하나 있다.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구동할 수 있는 최신형 스마트폰도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태블릿PC도 아니다. 바로 볼펜과 수첩이다.

스마트 시대에 최진한 감독만은 철저한 아날로그파다.

시대에 뒤떨어지기는 하지만 여기에 최 감독의 무서움이 있다. 최 감독은 수첩에 많은 것을 계속 적어 넣는다. 훈련이나 경기를 보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적는다. 선수들의 몸상태부터 시작해 전술적인 움직임 등은 기본이다. 선수들에게 뭔가 해줄 말이 있다면 수첩에 적어놓았다가 따로 만나 얘기해준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나선 히딩크호의 트레이너 시절부터 이어온 버릇이다. 당시 최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말 한마디 한마디까지 죄다 적어놓았다. 때문에 팀 초기에는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스파이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후에 오해가 풀렸고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들었다.

최 감독의 메모 습관은 올 시즌 경남을 8강이 겨루는 그룹 A에 올린 원동력이기도 하다. 경남은 올 시즌 상당히 힘들었다. 6월말 전형두 대표이사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퇴했다. 경남 이사회는 권영민 경남체육회 상근부회장을 임시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이 때부터 정치 다툼이 시작됐다.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도지사직을 내놓았다. 일관된 지휘체계의 최상위 자리가 사라졌다. 아래에서 암투가 시작됐다. 경남도청에서는 전 직원과 코칭스태프에게 '일괄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재정위기에 따른 사무국 구조조정이 이유였다. 최대스폰서로 매년 40억원씩을 지원하던 STX가 후원금액을 20억원으로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조선·해양분야의 경기 부진으로 인한 경영 악화가 이유였다. 프런트들은 반발했다. 사무국 구조조정을 하면서 재정이사, 홍보이사, 기술이사를 선임하려 했다. 팀 전체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이럴 때 선수단을 다잡은 것이 최 감독이었다. 우선 자신의 마음부터 다스렸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때는 수첩에 글을 쓰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선수들에게는 흔들리지 말고 훈련에 매진할 것을 주문했다. 8월 들어 열린 4경기에서 2승2무를 거두면서 승점을 차곡차곡 챙겼다. 선수들에게는 하던대로만 하면 충분히 기회는 온다고 강조했다. 7월 8일 21라운드부터 8월 22일 29라운드까지 9경기에서 4승1무4패를 거두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26일, 운명의 30라운드 광주전을 앞두고 최 감독은 잠도 제대로 못잤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늘 끼고 있던 바로 그 수첩을 들고 섰다. 자신이 할 말을 적으면서 준비했다. 선수들 앞에 나섰다. "그룹 A와 그룹 B는 노는 물이 다르다. 우리의 가치를 높이려면 그룹 A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가치는 우리가 만든다. 후회없이 뛰자"고 말했다.

90분 후 창원축구센터의 전광판은 2대1이 표시돼 있었다. 경남의 승리였다. 승점 42점을 확보한 경남은 8위였던 인천과 동률을 이뤘다. 그러나 골득실차에서 +3으로 -2였던 인천을 따돌렸다. 10위에서 8위로 점프했다. 상위 8개팀이 겨루는 그룹 A로 올랐다. 선수들 모두 얼싸안았다. 최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승리를 믿어의심치 않았다. 이기는 것만 생각했다. 다른 구장 결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예의 그 수첩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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