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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한 경남 감독의 손에는 언제나 들려있는 것이 하나 있다.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구동할 수 있는 최신형 스마트폰도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태블릿PC도 아니다. 바로 볼펜과 수첩이다.
최 감독의 메모 습관은 올 시즌 경남을 8강이 겨루는 그룹 A에 올린 원동력이기도 하다. 경남은 올 시즌 상당히 힘들었다. 6월말 전형두 대표이사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퇴했다. 경남 이사회는 권영민 경남체육회 상근부회장을 임시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이 때부터 정치 다툼이 시작됐다.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도지사직을 내놓았다. 일관된 지휘체계의 최상위 자리가 사라졌다. 아래에서 암투가 시작됐다. 경남도청에서는 전 직원과 코칭스태프에게 '일괄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재정위기에 따른 사무국 구조조정이 이유였다. 최대스폰서로 매년 40억원씩을 지원하던 STX가 후원금액을 20억원으로 줄이겠다고 통보했다. 조선·해양분야의 경기 부진으로 인한 경영 악화가 이유였다. 프런트들은 반발했다. 사무국 구조조정을 하면서 재정이사, 홍보이사, 기술이사를 선임하려 했다. 팀 전체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이럴 때 선수단을 다잡은 것이 최 감독이었다. 우선 자신의 마음부터 다스렸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때는 수첩에 글을 쓰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선수들에게는 흔들리지 말고 훈련에 매진할 것을 주문했다. 8월 들어 열린 4경기에서 2승2무를 거두면서 승점을 차곡차곡 챙겼다. 선수들에게는 하던대로만 하면 충분히 기회는 온다고 강조했다. 7월 8일 21라운드부터 8월 22일 29라운드까지 9경기에서 4승1무4패를 거두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90분 후 창원축구센터의 전광판은 2대1이 표시돼 있었다. 경남의 승리였다. 승점 42점을 확보한 경남은 8위였던 인천과 동률을 이뤘다. 그러나 골득실차에서 +3으로 -2였던 인천을 따돌렸다. 10위에서 8위로 점프했다. 상위 8개팀이 겨루는 그룹 A로 올랐다. 선수들 모두 얼싸안았다. 최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승리를 믿어의심치 않았다. 이기는 것만 생각했다. 다른 구장 결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예의 그 수첩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