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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첫 메달'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런던 올림픽과는 성격이 다른 경기였다. K리거만으로 구성됐기에 여기에 해외파가 가세했을 때의 그림도 고려해야 한다. 또, 7월 중순부터 매주 3경기씩 치러온 선수들이라 체력적 부담이 엄청났을 경기다. '결과'라는 잣대로만 바라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 경험이 없는 K리거들을 상당수 불러들여 한 번씩 '시험'해봤다는 점에선 분명 의미 있는 경기였다.
마치 두 개의 거대한 탑을 세워놓은 듯한 공격 구성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공중볼 강세에 있었다. 4년 만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던 김형범의 오른발이 살아있었고, 김신욱은 그렇게 띄어준 공중볼을 완벽에 가깝게 따냈다. 그의 파트너 이동국은 측면과 후방으로 빠져 웬만한 미드필더를 뛰어넘는 양질의 패스를 제 타이밍에 배급할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궁합이 괜찮은 조합이었다.
다만 플랜 B의 발목을 잡은 문제는 첫째도, 둘째도 체력이었다. 두 선수 모두 각각 전북과 울산의 대표 공격수로서 7월 중순부터 3~4일 간격으로 연이어 경기를 치러왔다. 이동국은 7월 11일부터 FA컵 한 경기 포함 무려 8경기를 소화했고, 김신욱도 7월 12일부터 똑같이 8경기를 소화했다. 어느 정도 교체를 강행하며 풀타임을 뛰는 경우를 최대한 줄였다고는 하지만, 현기증 날 정도로 더웠던 지난 여름을 생각하면 체력 저하는 극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올림픽에서 구자철이 미친 듯 뛰며 원톱과 수비형 미드필더 사이의 공백을 최소화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이번 최강희호의 잠비아전에선 이 역할을 수행할 선수가 없었다. 이동국, 김신욱 또한 부지런하게 뛰며 그 몫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인데, 아무래도 체력 부담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는 생각이다. 이 탓에 플랜 B의 파괴력은 전반 초반에만 다소 국한된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K리그 30라운드 정규리그를 마친 후 약간의 휴식기 뒤 치러지는 월드컵 최종예선 3차전에서라면 한 번 활용해볼 만한 카드가 아닐까 싶다.
김정우-하대성. 황진성-송진형. 송진형-정인환. 허리는?
허리도 조합 찾기에 한창이었다. 그동안 큰 만족을 주지 못했던 미드필더 조합은 최강희호에 남겨진 숙제였다. 이번엔 출범 후 줄곧 고수해왔던 김두현 대신 K리거들을 상당수 불러 모아 태극마크를 달 자격이 되는지 테스트했다. 90분 동안 전북의 김정우, 서울의 하대성, 포항의 황진성, 제주의 송진형이 이 진영에 기용돼 최강희 감독의 평가를 받았다.
먼저 최강희 감독이 넘버원으로 내세워 후반 16분까지, 60분가량 시험 무대에 섰던 김정우-하대성 조합은 어떠했을까. 선수 개인적인 능력은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동료들에게 볼을 운반하는 능력도, 수비적인 길목을 차단하는 능력도 준수했다. 다만 두 선수의 호흡이 강조될 부분에선 다소 핀트가 안 맞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령 공-수 양면에서 두 선수가 역할을 분담하는 상호 보완적인 움직임이 기대에 못 미쳤는데, 특히 앞서 언급했듯 투톱과의 벌어진 공간을 제 때 좁히질 못했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올림픽 무대에서 기성용-박종우가 보여준 역할 수행을 떠올려봤을 때, 오늘 처음으로 발을 맞춰본 두 선수의 퍼포먼스는 완벽하지는 못했다.
후반 16분, 최강희 감독은 황진성과 송진형을 동시에 투입했다. 하지만 7분 뒤, 이근호를 빼고 수비수 심우연을 넣으며, 허리에는 이승기-송진형-정인환-황진성이, 수비에는 박원재-심우연-김진규-고요한이 배치됐다. 사실상 조합보다는 송진형 개인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측면이 컸다. 제주 방울뱀 축구의 시작, 패스 축구를 할 줄 아는 이 선수가 그 능력을 발휘해준다면 대표팀의 닥공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확신했는데, 아무래도 데뷔전이 주는 중압감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수비조합도 시험대에 오르긴 마찬가지.
최근 대표팀 중앙 수비라인은 이정수-곽태휘가 꽉 잡고 있었다. 지난해 10월, 폴란드, UAE전에서 홍정호가 붙박이로 기용된 상황에서 이정수, 곽태휘가 번갈아 중용된 경우, 지난 5월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ACL 일정 탓에 이정수-조용형이 가동된 경우 외엔 이정수-곽태휘 라인이 단골로 등장했다. 높이, 파워, 마킹, 패싱력을 고루 갖춘 선수들이었고 그 조합은 합격선 이상이었다. 이젠 또 다른 조합을 찾아 나설 때였다.
이번에 소집된 중앙 수비 자원은 곽태휘, 정인환, 김진규, 심우연, 4명. 두 명씩 묶어 조합을 테스트했는데 개인적인 능력치보다는 호흡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먼저 전반 28분, 동점골을 허용하는 장면을 보자. 잠비아 공격수를 막기 위해 앞으로 나간 정인환, 그 뒤에서 크로스를 확실히 끊지 못한 곽태휘, 순간 주춤했던 김영광, 쇄도하는 공격수를 확실히 잡지 못한 신광훈. 후반 31분, 골대를 얻어맞은 장면은 어떠했을까. 수비 뒷공간을 내준 플랫 4, 따라갔지만 이를 확실이 걷어내지 못한 김진규, 빈공간 커버를 재빠르게 못 했던 심우연. 두 경우 모두 호흡이 문제였다. 선수 테스트의 목적이 큰 경기 운영이었던 지라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왼쪽 측면 수비에선 박원재가 풀타임 소화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윤석영이 홍명보호에서 맹활약하며 치고 올라왔고, 여기에 지난 최종예선을 소화한 박주호도 있다. 오른쪽에서는 오범석과 최효진 대신 부른 신광훈과 고요한을 45분씩 시험했다. 신광훈은 김형범과 호흡을 맞춘 플레이가 준수했고, 고요한은 서울에서의 맹활약에 비하면 능력을 선보일 기회가 다소 적었다. 여기에 김창수와 오재석, 그리고 성남의 박진포까지 이 자리를 노리고 있다. 두 쪽 모두 알짜 자원들이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어 최강희 감독에 행복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지 않을까 싶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