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시작은 2012년 런던올림픽이었다. 하루에도 3군데 경기장을 쫓아다니면서 선수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어느새 올림픽은 2012년 런던월드컵이 되어 있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승승장구했다. 이들을 따라붙었다. 영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한국 축구 역사상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와 더불어 최고의 업적으로 길이 남을 홍명보호의 동메달 획득 뒷이야기다.
체력과의 싸움이었다. 지난달 20일 세네갈과의 친선경기를 시작으로 10일 일본과의 3-4위전까지 7경기를 소화했다. 올림픽이 시작되고 난 뒤에는 이틀 쉬고 한 경기씩 치르는 강행군이었다. 팀스태프들이 총력전에 나섰다. 김형채 조리장은 최고의 한식을 선수들에게 선사했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외국인이 꺼리는 청국장까지 만들었다. 선수단 숙소로 쓰던 각 지역 호텔에 냄새가 배었다. 하지만 영양공급이 우선이었다. 현지 호텔 관계자들의 뜨거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김 조리장을 꿋꿋하게 한식을 만들어냈다.
송준섭 박사와 황인우 의무팀장 임현택 트레이너 공윤덕 트레이너는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마사지룸에서 하루종일 살았다. 훈련을 끝낸 선수들은 모두 마사지룸을 찾았다. 송 박사는 선수들의 작은 부상을 보고 치료했다. 황 팀장을 비롯해 트레이너팀은 선수들의 뭉친 근육을 풀고 또 풀었다. 영국과의 8강전에서 왼쪽 어깨를 다친 정성룡은 다음날부터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마사지룸에 있었다. 송 박사와 트레이너팀의 정성 덕분에 정성룡은 한-일전에서 눈부신 선방을 보여주었다.
홍명보호는 외로웠다. 올림픽이 열리기전부터 외신들로부터 냉소가 쏟아졌다. 대부분 조별리그 탈락을 예견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8강전 영국, 4강전 브라질과의 대결에서는 대놓고 무시를 당했다. 한국 언론과 팬들만 빼고는 모두들 이들의 승리 혹은 선전을 원치 않았다.
해법은 '팀'이었다. 선수단은 똘똘 뭉쳤다. 하나가 됐다. 홍 감독은 올림픽이 시작되지전부터 '팀'을 강조했다.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했다. 선수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들의 뜻대로 움직이게 했다. 경기 전 라커룸에 선수들의 음악을 신나게 틀어놓는다든지 경기 다음날 회복 훈련을 최소화한다든지 모두 선수들을 위한 것이었다.
'말'도 선수들에게 맡겼다. 홍 감독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공식 기자회견이 유일한 대화창구였다. 공식적인 이야기는 공식 기자회견에서만 나왔다. 민감한 질문에는 원론적인 대답이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혼란을 막기 위해서였다. 미디어 담당관을 적극 활용했다. 팀 내 이야기는 차영일 미디어 담당관을 통해 공개했다.
대신 선수들의 이야기에는 관대했다. 마음껏 이야기하도록 했다. 경기 후나 훈련 후 선수들은 취재진과 이야기꽃을 피웠다. 특히 주장 구자철과 기성용은 '달변가'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홍 감독도 두 선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용인했다. 둘은 팀의 입이자 바깥 세상과의 연결통로였다.
'김기희'는 홍명보호 팀워크의 아이콘이었다. 김기희는 한-일전을 앞두고 단 1분도 뛰지 못했다. 선수단 모두 진심으로 걱정했다. 마음이 통해서일까. 한-일전에서 홍명보호는 2-0으로 앞섰고 김기희는 4분간 출전해 선수들과 기쁨을 함께 누렸다.
런던=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