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선수가 11m 앞에 섰다. 그 누구도 그가 실축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러시안 룰렛'이라 불리는 '운명의 장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1인자가 될 수 있는 기회도 날아가버렸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7·레알 마드리드)는 그렇게 고개를 떨궜다.
사실 호날두의 기록을 보면 2인자라는 호칭이 어색하다. 140경기에서 142골을 넣은 그의 기록은 오락에서나 볼 법 하다. 올시즌 프리메라리가에서 42골을 기록하며 스페인리그 득점사를 새로 쓰고 있다. 최단기간 프리메라리가 100호골 기록도 그의 몫이었다. 자존심 강한 호날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세상은 이미 그를 불운한 2인자로 부르고 있다. 호날두를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지도했던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호날두에게 유일한 불행은 메시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메시만 아니었다면 호날두는 지난 5년 간 독보적인 세계 최고의 선수였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아이러니하다. 호날두를 무너뜨린 페널티킥은 사실 그의 축구인생을 읽을 수 있는 매개체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다. 호날두는 8강에서 잉글랜드와 만났다. 맨유 동료였던 웨인 루니를 퇴장시킨 '윙크사건'으로 유명한 이 경기는 사실 호날두에게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한 경기였다. 120분간 혈투를 마친 호날두는 승부차기 키커로 나섰다. 쏟아지는 잉글랜드 관중들의 야유를 뒤로 하고 공에 키스를 한 호날두는 침착하게 승부차기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키스를 날렸다. 얼마 전 사망한 아버지를 위한 세리머니였다.
페널티킥을 통해 그의 완벽주의와 승부욕을 볼 수 있다. 맨유 소속이던 2008년 두차례 중요한 순간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바르셀로나와 준결승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넣지 못했고, 첼시와의 결승전에서도 승부차기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다행히 맨유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호날두에겐 심리적 타격이 큰 실축이었다. 이후 호날두는 페널티킥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며 성공률을 높였다. 비로소 완전 무결한 선수가 된 호날두는 8000만파운드(약 1472억원)의 몸값으로 2009년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다. 호날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이후 각종 스캔들로 가십거리를 제공하지만 훈련을 게을리 한적은 한번도 없다. 조제 무리뉴 감독은 "그가 휴일을 패리스 힐튼과 보냈든, 페라리를 사러 LA에 갔든 그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호날두 만큼 훈련하고, 연습하는 선수라면 그가 다른 행성에서 온 선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호날두는 이미 역사적인 축구선수다"고 옹호했다.
올시즌 내내 초인적인 활약을 펼친 호날두는 별들의 전쟁 마지막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 기술적으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호날두에게 이번 패배는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호날두는 실패와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더욱 큰 발전으로 이어나갔다. 그게 그의 방식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