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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차기와 함께 날아간 '1인자' 호날두의 꿈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2-04-26 14:03


세계 최고의 선수가 11m 앞에 섰다. 그 누구도 그가 실축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러시안 룰렛'이라 불리는 '운명의 장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1인자가 될 수 있는 기회도 날아가버렸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7·레알 마드리드)는 그렇게 고개를 떨궜다.

운명이란 얄궂다. 25일(이하 한국시각) 첼시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호날두의 라이벌' 리오넬 메시(25·바르셀로나)도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두 라이벌에게는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챔피언스리그 준결승에 진출할 때까지 호날두와 메시의 공은 절대적이었지만, 한순간 패배의 원흉으로 전락했다.

호날두는 전날 메시의 결승 진출 실패로 '1인자'로 거듭날 기회를 잡았다. 이미 반쯤 손아귀에 쥔 프리메라리가 트로피와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컵까지 손에 넣는다면 메시에 뒤진 득점 기록은 상쇄할 수 있었다. 적어도 올해만큼은 호날두의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호날두는 26일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과의 2011~2012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 펄펄 날았다. 22일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결승골에 이어 4강 2차전에서 다시 2골을 터뜨리며 '큰 경기에 약하다'는 오명을 날리나 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호날두에게 쏟아질 준비를 마쳤을때, 호날두는 자기 발끝으로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사실 호날두의 기록을 보면 2인자라는 호칭이 어색하다. 140경기에서 142골을 넣은 그의 기록은 오락에서나 볼 법 하다. 올시즌 프리메라리가에서 42골을 기록하며 스페인리그 득점사를 새로 쓰고 있다. 최단기간 프리메라리가 100호골 기록도 그의 몫이었다. 자존심 강한 호날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세상은 이미 그를 불운한 2인자로 부르고 있다. 호날두를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지도했던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호날두에게 유일한 불행은 메시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메시만 아니었다면 호날두는 지난 5년 간 독보적인 세계 최고의 선수였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아이러니하다. 호날두를 무너뜨린 페널티킥은 사실 그의 축구인생을 읽을 수 있는 매개체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다. 호날두는 8강에서 잉글랜드와 만났다. 맨유 동료였던 웨인 루니를 퇴장시킨 '윙크사건'으로 유명한 이 경기는 사실 호날두에게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한 경기였다. 120분간 혈투를 마친 호날두는 승부차기 키커로 나섰다. 쏟아지는 잉글랜드 관중들의 야유를 뒤로 하고 공에 키스를 한 호날두는 침착하게 승부차기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키스를 날렸다. 얼마 전 사망한 아버지를 위한 세리머니였다.

호날두는 가난하고 불우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심한 알콜 중독자였고 형은 마약 중독자였다. 어머니가 고된 청소와 식당일로 번 월 70만원 가량의 수입으로 겨우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던 호날두는 공을 살 돈이 없어 돌맹이를 차고 놀았다. 막내를 지극히 아낀 아버지는 호날두의 소원을 위해 그를 축구의 길로 안내했다. 1998년 13세에 '명문' 스포르팅 리스본에 입단한 호날두는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2003년 맨유와의 연습경기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결국 당시 10대 선수 최고 몸값인 1224만파운드(약 225억원)의 이적료에 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퍼거슨 감독은 데이비드 베컴이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며 공석이 된 7번 유니폼을 줄 정도로 호날두의 재능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개인 플레이를 구사하며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독일월드컵 승부차기 이후 잉글랜드로 돌아온 호날두는 달라졌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며 비로소 팀플레이에 눈을 떠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다.

페널티킥을 통해 그의 완벽주의와 승부욕을 볼 수 있다. 맨유 소속이던 2008년 두차례 중요한 순간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바르셀로나와 준결승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넣지 못했고, 첼시와의 결승전에서도 승부차기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다행히 맨유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호날두에겐 심리적 타격이 큰 실축이었다. 이후 호날두는 페널티킥을 집중적으로 연습하며 성공률을 높였다. 비로소 완전 무결한 선수가 된 호날두는 8000만파운드(약 1472억원)의 몸값으로 2009년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었다. 호날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이후 각종 스캔들로 가십거리를 제공하지만 훈련을 게을리 한적은 한번도 없다. 조제 무리뉴 감독은 "그가 휴일을 패리스 힐튼과 보냈든, 페라리를 사러 LA에 갔든 그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호날두 만큼 훈련하고, 연습하는 선수라면 그가 다른 행성에서 온 선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호날두는 이미 역사적인 축구선수다"고 옹호했다.

올시즌 내내 초인적인 활약을 펼친 호날두는 별들의 전쟁 마지막 무대에 설 수 없게 됐다. 기술적으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호날두에게 이번 패배는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호날두는 실패와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더욱 큰 발전으로 이어나갔다. 그게 그의 방식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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