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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을 울산 매직을 어떻게 만들었나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1-11-27 15:27


26일 플레이오프 포항전 후반 27분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설기현이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고 있디. 포항=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울산 현대에 설기현(32)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정규리그 6위로 6강 플레이오프(PO)에 진출해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울산의 돌풍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다.

'설기현의, 설기현에 의한, 설기현을 위한'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챔피언십이다.

울산은 정규리그 내내 베테랑이 많아 노련하지만, 대신 템포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기동력이 있고, 젊은 선수가 주축을 이룬 팀을 만나면 고전을 했다. 개막전에서 시민구단 대전 시티즌에 패했고, 2라운드에서는 경남FC에 무너졌다. 한때 K-리그 16개 팀 중 15위로 추락했다. 외국인 공격수 대신 지난 2월 포항 스틸러스에서 영입한 설기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팀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을 때 "설기현은 어디 있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정규리그 29경기에 출전해 3골 밖에 넣지 못했다. 포항 소속이던 지난 시즌 부상 속에서 16경기에 출전해 7골을 기록했는데, 오히려 뒷걸음질을 했다. 설기현과 울산 코칭스태프는 울산과 포항의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 시간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지만, 변명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김호곤 울산 감독은 "설기현이 골 욕심을 내지 않고 상대 수비수들을 달고 활발하게 움직여 주기에 공간이 생긴다. 나름대로 팀에 많은 기여를 한다"고 했지만 골에 대한 갈증을 감출 수는 없었다.


포항을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울산 선수들이 울산 서포터스를 향해 인사하고 있다. 포항=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하지만 큰 경기, 중요한 순간 베테랑 설기현의 진가가 빛을 발휘했다. 19일 6강 플레이오프 FC서울전에서 결승골 도움을 포함해 어시스트 2개를 기록하며 3대1 승리에 기여하더니, 23일 준 PO 수원 삼성전(1대1 무승부, 승부차기 울산 3-1 승) 때는 연장전까지 120분 풀타임을 뛰었다. 26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PO에서는 페널티킥을 얻어내 결승골로 연결했다. 페널티 지역에서 모따가 등을 지고 있던 설기현을 뒤에서 밀어 넘어트리면서 찬스가 왔다. 설기현을 의식하고 무리를 한 것이다. 설기현이 아니었다면 얻기 어려운 페널티킥이었다.

기록도 화려하지만 움직임이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주로 스리톱의 왼쪽에 선 설기현은 끊임없이 측면을 파고들었다. 측면에서 중앙으로 빠르게 치고들어가며 공간을 창출했다. 설기현이 상대 선수 1~2명을 끌고 다니면서 빈 공간이 생겼다.

비교적 말 수가 적은 설기현은 모범생이자 책임감이 강한 리더다. 설기현은 포항전에서 페널티킥 기회가 오면 직접 차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고 했다. 23일 수원전 승부차기 때 첫번째 키커로 나선 설기현을 실축을 했다. 팀이 승리해 실수가 묻혔지만 만회를 하고 싶었다. 또 포항 모따와 황진성이 페널티킥을 실축한 상황에서 페널티킥 기회가 오면 후배들이 크게 부담을 갖게 될 것 같았단다. 필드 플레이어 최고참으로서의 책임감과 마음 씀씀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유럽리그를 뒤로 하고 돌아온 설기현은 부산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울산 클럽하우스까지 자동차로 1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 한다. 김호곤 감독은 "설기현이 집중력이 필요할 때면 귀가하지 않고 클럽하우스에 머물곤 한다"고 귀띔한다.

광운대 재학중에 유럽으로 떠났던 설기현은 이제 K-리그 2년 차. 시즌 내내 활짝 웃지 못했던 설기현이 만들어가고 있는 '울산 매직'은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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