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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경쟁력 어필, '고진감래' 끝에 일군 '멀티플레이' 능력

김진회 기자

기사입력 2011-09-21 13:01


박지성. 스포츠조선 DB

박지성(30·맨유)은 '멀티 플레이어'의 표본으로 불린다. 어느 포지션에서 뛰든 제 몫을 다한다. 이런 박지성도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기까지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사실 박지성은 수원공고 시절부터 여러 포지션에서 뛰었다. 공격형, 수비형, 측면 등 모든 미드필드 자리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박지성은 근력이 부족했다. 이렇다 보니 어느 포지션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박지성의 옛 스승인 김희태 전 명지대 감독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박지성은 축구선수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근력과 지구력이 부족했다. 많이 뛰면서 영리하게 공을 차긴 했지만, 기본부터 다시 닦아야 했다"고 회상했다. 근력이 붙기 시작한 것은 2000년 1월부터다. 호주에서 아주대,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명지대, 올림픽대표팀과 함께 실시한 합동 전지훈련이 약이 됐다.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2월 복수의 올림픽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아 다섯 명을 제치고 골까지 넣는 등 매경기 활약을 펼쳤다. 당시 올림픽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허정무 감독의 눈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는 올림픽대표팀에 연습생으로 발탁돼 '아시아 축구의 별'이 된 박지성의 성공 일화이기도 하다.

박지성은 주로 측면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변신한다. A대표 시절 '박지성 시프트'로 불렸다. 측면에선 돌파와 크로스 뿐만 아니라 골문으로 파고들어 골까지 노리는 윙 포워드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중앙으로 자기를 옮기면 공수의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까지 가미된다. 공수 조율 능력은 일본 J-리그에서 발전시켰다. 2000년 6월 일본 J-리그 교토상가에 입단한 박지성은 이듬해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면서 다른 J-리그팀으로의 이적을 결심했다. 그러나 김희태 감독은 교토상가에 남기를 권유했다. 많은 경기에 뛰어야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결국 잔류를 택한 박지성은 2001년 40경기를 소화했다. 그러면서 신체적 조건과 함께 경기 흐름을 읽는 눈과 패스의 속도가 몰라보게 향상됐다. 이때부터 박지성은 본격적으로 '멀티 플레이어'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세운 거스 히딩크 전 감독에게 발탁된 이유도 여기있었다.

'고진감래' 끝에 일군 박지성의 '멀티 플레이' 능력은 21일(이하 한국시각) 빛을 발했다. 무대는 챔피언십(2부 리그) 소속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칼링컵 3라운드(3대0 승)였다. 이날 박지성은 시즌 두번째 선발 출전했다. 그의 자리는 중앙 미드필더였다. 측면이 주 포지션이지만, 중앙으로 자리를 이동해 공수의 중심축이 됐다. 박지성은 득점에 욕심내지 않았다. 볼이 가는 곳을 찾아다니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맨유 중원의 이음새 역할을 했다. 2개의 도움으로 정점을 찍었다. 전반 15분 마이클 오언의 선제 결승골과 2-0으로 앞선 전반 추가시간 라이언 긱스의 쐐기골을 도왔다.

두 가지 의미를 지닌 활약이다. 부진을 털어냈다. 지난 15일 벤피카(포르투갈)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원정 1차전(1대1 무)에서의 무기력한 모습을 말끔히 씻어냈다. 무엇보다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자질을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에게 충분히 어필하면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박지성은 시즌 초반 정규리그에서 영, 나니, 발렌시아와의 주전 경쟁에서 다소 밀린 모습이다. 그러나 안데르손, 플레처 등 중원 자원이 부상을 당할 경우 언제든지 중앙 미드필더로 투입이 가능하는 것을 보여줬다. 그동안 영국 언론들이 극찬했던 '센트럴 팍'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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