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원하늘숲길트레킹

스포츠조선

FC서울 사령탑 최용수의 사부곡 그리고 감독의 삶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1-09-14 13:31


◇사우디아라비아 알 이티하드와의 8강 1차전을 앞둔 최용수 FC서울 감독대행이 13일 공식기자회견 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제다(사우디아라비아)=사진공동취재단

1994년 4월 6일,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날이다.

프로에 첫 발을 내디딘 그는 고공행진을 했다. 출격 3경기째인 4월 2일 전북 버팔로전에서 데뷔골을 터트린 데 이어 5일 유공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터트렸다. 연이은 골 소식에 언론은 대형 스트라이커의 탄생을 알렸다.

그 날 비보가 날아들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도 안 아픈 손가락이 없으나 삼형제 중 힘든 운동을 하는 둘째 아들을 유난히 아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과일가게를 하며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다. 부정은 특별했다. 초중고 시절 아들이 경기를 앞두면 늘 장남과 막내 몰래 고기를 사줬다. 연세대 재학시절 부산으로 전지훈련을 갈 때면 늘 수십통의 수박을 선수단에 안겼다.

한식날이었다. 전날 아들의 골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아버지였다. 선영의 벌초를 떠난 것이 최후였다. 마지막 잔목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전기 톱날이 허벅지를 스쳤다. 과다출혈로 숨을 거뒀다.

전화로 소식을 들은 그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살면서 단 한번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바로 그때였다." 장례기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의아해 했다. "가장 아꼈던 자식인데…"라며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버지를 묻은 후 무덤 앞에선 자신의 모습을 보자 비로소 악몽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17년이 흘렀다. 축구 선수로 성공했다. 아버지와 이별한 후 그 해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2000년 팀을 K-리그 우승으로 이끈 후에는 최고의 자리인 MVP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역사도 함께했다. 2001년 일본에 진출, J-리그에서도 족적을 남겼다.

2011년 4월 26일, 또 다른 운명이 시작됐다. 2006년 친정팀에 복귀해 은퇴한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5년간의 코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황보관 전 감독이 물러난 자리를 채웠다. 40세에 K-리그 최고명문 구단 FC서울의 선장이 됐다. 대행 꼬리표를 달았지만 최용수 감독시대가 열렸다.

추석이 갓 지났다. 차례도 지내고, 성묘도 가야하지만 올해 명절은 '열사의 땅'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맞았다. 중동의 명문클럽 알 이티하드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을 위한 원정길이다.


감독에 오른 지 140여일이 지났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연착륙에 성공했다. 초보 감독의 성적표는 합격점이다. 정규리그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FA컵, 컵대회에서 24경기를 치러 15승4무5패의 성적을 거뒀다. 9일 대구 암초를 만나 깨졌지만 올시즌 K-리그 최다연승인 7연승도 기록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인색하다. 100점 만점에 49점이라고 했다. F학점이다. "도전을 두려워한 적이 없다. 남들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라고 하는데 난 성공을 통해 더 큰 성공을 바란다는게 철칙이었다. 하지만 대구전을 통해 또 다시 배웠다. 7연승을 하다보니 나부터 느슨해져 있었다. 지도자는 매사 냉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가 몰고온 변화의 바람은 컸다. '형님+칭찬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요리했다. 세리머니는 빼놓을 수 없는 백미다. 테크니컬 에어리어(경기 중에 감독이 팀을 지휘하는 벤치 앞 지역)를 벗어나 펄쩍펄쩍 뛰고, 슬라이딩하는 그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색다른 희열을 선물했다. "도저히 감정 자제가 안 된다"며 순진하게 미소짓는 모습은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았다.

"경험도 부족하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여곡절의 연속이다. 잘 나가다가도 두드려 맞지만 그게 지도자가 느낄 수 있는 묘한 재미인 것 같다. 이긴 후의 쾌감은 잠시 늘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난 승부를 좋아한다. 당연히 지는 걸 싫어한다. 승부가 힘이 되고, 마약이더라."

서울은 올시즌 목표로 K-리그 2연패와 아시아 정상을 내걸었다. 꿈은 살아있다.

최 감독의 사부곡은 시공을 초월한다. 이국에서도 아버지가 늘 곁을 지킨단다. "항상 생각이 난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아버지의 존재는 점점 커져만 간다. 감독은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하지만 하늘에 있는 아버지가 큰 힘이 된다."
제다(사우디아라비아)=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