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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26)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입단이 초읽기다. 박주영은 27일(한국시각) 프랑스리그 릴과 최종 이적 계약서에 사인하기 직전 영국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릴과의 최종 계약서 사인식에 나타나지 않고 아스널로 급히 이동한 박주영의 깜짝 행보는 국내 뿐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까지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에서는 대부분 언론과 일부팬, 그리고 당사자인 릴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도덕적으로 신의를 저버린 행동이라는 것이다. 반면 영국 팬들은 박주영의 경기력에 주목하며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
박주영의 아스널 이적 시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일부 국내팬들은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 향후 한국 유망주들의 프랑스 이적에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단적으로 말해 박주영의 행동은 잘못되지 않았다.
박주영과 릴은 공식 문서에 사인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유럽축구의 이적 협상은 에이전트끼리 구두적인 합의를 한 뒤 선수와 구단이 이에 동의하고, 이어 양측이 출전수당과 옵션 등 세부 협상을 매듭짓고, 메디컬 체크를 받게 된다. 이후 최종 계약서에 사인한다.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이적 계약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 구두 합의는 깨지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메디컬 체크의 경우 1,2차로 나뉘는 것이 보통인데 박주영은 이 마저도 완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초 릴 구단에서 주장한 "예고없이 계약 사인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도 억측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주영은 릴 구단 담당자에게 아스널로 간다고 통보했다.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고 느낀 릴의 부풀려진 반응이다.
물론 릴 입장에선 다소 황당할 수도 있다. 이적 시장 마감을 코 앞에 두고 새로운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 어려움이 생겼지만 어찌보면 릴이 이를 자처했다고도 볼 수 있다. 릴은 두달 전부터 박주영을 영입에 대상에 놓고 고민했다. 밀고 당기는 협상 속에 박주영이 원하는 연봉(200만 유로·약 31억원)을 지속적으로 깎으려 노력했고, AS모나코에도 이적료를 한 푼이라도 더 적게 주기 위해 수차례 협상 포기를 선언한 뒤 다시 협상 테이블로 찾아오는 노련한 움직임을 보였다. 철저히 상업적인 행보였다. 릴 구단이 최종 계약에 사인하기전 마음을 바꾼 박주영을 두고 "도의를 저버린 행위"라고 말하는 것은 축구에서든, 다른 계약에서든 적절치 않은 주장이다.
AS모나코도 박주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입장은 아니다. AS모나코는 선수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물론 모나코가 박주영의 미래를 생각할 의무도 없지만) 어떻게든 이적료만 많이 챙기기 위해 노력했다. 박주영이 싫어한 스타드 렌으로의 이적을 종용했고, 나중에는 박주영을 불러 "이적료가 깎이기만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말라. 최악의 경우 2부리그에 잔류시킬 수도 있다"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박주영 역시 불법은 아니지만 속은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오퍼가 온 곳은 평생의 꿈인 프리미어리그, 그것도 명문팀 아스널이었다. 또 명장 아르센 벵거 감독이 직접 박주영에게 전화를 걸어 영입의사를 던진 터였다.
이적하는 선수가 감독의 의향을 미리 알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특급스타가 아닌 다음에야 이적한 뒤에 사령탑의 의도를 어렴풋이 가늠하는 정도다. 감독은 선수 기용의 전권을 쥐고 있는 인물이다. 충분한 출전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이적하는 것은 엄청난 매력이다.
역대로 이적에 기본합의를 한 뒤 최종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마음을 바꾼 경우는 허다하다. 정보다는 계약에 기초해 움직이는 유럽에서는 훨씬 더 많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