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용수 쇼'는 축구보다 더 화끈하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1-08-14 15:57


◇최용수 감독이 슬라이딩을 한 후 몰리나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제공=FC서울

대형 스크린의 시계는 후반 45분에서 멈췄다. 0-0, 파죽의 4연승을 달린 FC서울의 상승세가 홈에서 꺾이는 듯 했다.

남은 시간은 인저리타임 3분. 후반 47분 전남이 코너킥을 얻었다. 그라운드에는 적막이 흘렀다. 정해성 전남 감독이 승부수를 던졌다. 전남은 90분 내내 9~10명이 수비에 포진하며 서울의 공세를 봉쇄했다. 마지막 세트피스에서 공격 가담 숫자를 늘렸다. 센터서클 부근에는 서울 1명, 전남 2명 뿐이었다.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서울 수문장 김용대가 볼을 낚아챘다. 경기 종료를 20여초 앞두고다. 김용대가 손으로 던진 볼은 고명진의 발에 걸렸다. 지체없이 최태욱에게 연결됐다. 폭풍질주가 시작됐다. 공격과 수비 숫자가 3명씩 같았다. 30여m를 드리블한 후 데얀에게 땅볼 크로스를 연결했다. 데얀이 슈팅을 위해 볼을 정지한 순간, 몰리나가 순식간에 나타나 가로챘다. 곧바로 왼발 슈팅으로 연결했다. 골망이 출렁였다. 대형 폭죽이 터졌다. 시간은 정확하게 후반 4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농구로 따지면 일종의 '버저비터 골'이었다.

상식을 또 깼다. 축구보다 더 화끈한 '최용수쇼'가 시작됐다. 몰리나가 왼쪽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려 가는 순간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최용수 서울 감독대행도 출발했다. 테크니컬 에어리어(경기 중에 감독이 팀을 지휘하는 벤치 앞 지역)를 벗어났다. 몰리나가 왼쪽 코너 플래그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인물이 최 감독이었다. 전광석화였다. 20여m를 달린 후 당당하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한데 착지점을 잘못 잡았다. 양복 바지에 뒤엉켜 어정쩡항 자세로 기어서 도달했다. 몰리나의 부축을 받은 후에야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부둥켜 안았다. 뒤이어 도착한 선수들도 몰리나와 최 감독을 층층으로 포갰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아르마니 양복 바지가 찢어졌다. 무릎도 까졌다. 흰색 와이셔츠는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중요치 않았다. 주심은 테크니컬 에어리어를 벗어난 최 감독에게 주의를 줬다. 관중들은 최 감독의 세리머니에 방방 뛰며 기뻐했다. 종료 휘슬이 울렸고, 그는 두 팔을 다시 번쩍 들어올렸다.

일찍이 이런 감독은 없었다. 한국 축구의 벤치 문화는 보수적이다. 최 감독이 틀을 깼다. 슬라이딩은 처음이지만, 4월 대행 꼬리표를 달고 몇 차례 '이색 세리머니'를 펼쳤다. '난동' 수준이다. 날이 갈수록 더 과감해지고 있다. 다소 엉뚱하게 비쳐질 수 있다. 아랑곳하지 않는다. 소탈한 맛이 흠뻑 묻어난다. 팬들이 최 감독의 세리머니를 먼저 기다릴 정도다.

14일 최 감독은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종료 직전까지 깝깝하더라. 비긴 줄 알았다. 그 순간 골이 터지자 도저히 감정 자제가 안 되더라. 난 왜 이런지 모르겠다. 너무 젊은가 보다." 목소리가 떨렸다. 영광의 상처도 곳곳에 있다. 그는 "잔디에 물기가 있는 줄 알고 조금 앞에서 슬라이딩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무릎이 쓸렸다. 다 까져 약을 발랐다. 빨간약 있지 않느냐"며 "양복 10벌이 찢어져도 좋다. 이기면 된다"고 말한 후 통쾌하게 웃었다.

서울은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21라운드에서 종료 직전 터진 몰리나의 골을 앞세워 전남을 1대0으로 꺾고 5연승을 달렸다. 4위에서 3위로 또 한 계단 뛰어올랐다. 디펜딩챔피언은 승점 36점(10승6무5패)을 기록했다. 2위 포항(승점 40·11승7무3패), 1위 전북(승점 44·13승5무3패)과의 선두권 싸움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