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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스크린의 시계는 후반 45분에서 멈췄다. 0-0, 파죽의 4연승을 달린 FC서울의 상승세가 홈에서 꺾이는 듯 했다.
남은 시간은 인저리타임 3분. 후반 47분 전남이 코너킥을 얻었다. 그라운드에는 적막이 흘렀다. 정해성 전남 감독이 승부수를 던졌다. 전남은 90분 내내 9~10명이 수비에 포진하며 서울의 공세를 봉쇄했다. 마지막 세트피스에서 공격 가담 숫자를 늘렸다. 센터서클 부근에는 서울 1명, 전남 2명 뿐이었다.
상식을 또 깼다. 축구보다 더 화끈한 '최용수쇼'가 시작됐다. 몰리나가 왼쪽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려 가는 순간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최용수 서울 감독대행도 출발했다. 테크니컬 에어리어(경기 중에 감독이 팀을 지휘하는 벤치 앞 지역)를 벗어났다. 몰리나가 왼쪽 코너 플래그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인물이 최 감독이었다. 전광석화였다. 20여m를 달린 후 당당하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했다. 한데 착지점을 잘못 잡았다. 양복 바지에 뒤엉켜 어정쩡항 자세로 기어서 도달했다. 몰리나의 부축을 받은 후에야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부둥켜 안았다. 뒤이어 도착한 선수들도 몰리나와 최 감독을 층층으로 포갰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아르마니 양복 바지가 찢어졌다. 무릎도 까졌다. 흰색 와이셔츠는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중요치 않았다. 주심은 테크니컬 에어리어를 벗어난 최 감독에게 주의를 줬다. 관중들은 최 감독의 세리머니에 방방 뛰며 기뻐했다. 종료 휘슬이 울렸고, 그는 두 팔을 다시 번쩍 들어올렸다.
일찍이 이런 감독은 없었다. 한국 축구의 벤치 문화는 보수적이다. 최 감독이 틀을 깼다. 슬라이딩은 처음이지만, 4월 대행 꼬리표를 달고 몇 차례 '이색 세리머니'를 펼쳤다. '난동' 수준이다. 날이 갈수록 더 과감해지고 있다. 다소 엉뚱하게 비쳐질 수 있다. 아랑곳하지 않는다. 소탈한 맛이 흠뻑 묻어난다. 팬들이 최 감독의 세리머니를 먼저 기다릴 정도다.
14일 최 감독은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종료 직전까지 깝깝하더라. 비긴 줄 알았다. 그 순간 골이 터지자 도저히 감정 자제가 안 되더라. 난 왜 이런지 모르겠다. 너무 젊은가 보다." 목소리가 떨렸다. 영광의 상처도 곳곳에 있다. 그는 "잔디에 물기가 있는 줄 알고 조금 앞에서 슬라이딩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무릎이 쓸렸다. 다 까져 약을 발랐다. 빨간약 있지 않느냐"며 "양복 10벌이 찢어져도 좋다. 이기면 된다"고 말한 후 통쾌하게 웃었다.
서울은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21라운드에서 종료 직전 터진 몰리나의 골을 앞세워 전남을 1대0으로 꺾고 5연승을 달렸다. 4위에서 3위로 또 한 계단 뛰어올랐다. 디펜딩챔피언은 승점 36점(10승6무5패)을 기록했다. 2위 포항(승점 40·11승7무3패), 1위 전북(승점 44·13승5무3패)과의 선두권 싸움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