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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도 꼭 축구해야 하나, K-리그 안전 불감증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1-08-08 13:21


◇제9호 태풍 '무이파'가 광양을 강타했지만 7일 전남-인천전은 벌어졌다. 논바닥 축구를 펼치는 양팀 선수들.

악천후 속에 축구하는 것을 마치 훈장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웬만한 비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우중 경기는 축구만의 색다른 매력이다. 그러나 폭우와 태풍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올시즌 기록적인 호우에도 K-리그 경기가 기상 때문에 연기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7일 전남 광양전용구장에서 벌어진 2011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라운드 전남-인천전(0대0 무)이 클라이맥스였다. 기상청의 태풍예보를 비웃 듯 경기를 강행했다.

제9호 태풍 '무이파(MUIFA)'가 이날 낮부터 한반도 서남부 지역을 강타했다. 광주지방기상청은 오후 2시를 기해 광양에 태풍경보를 발효했다. 먼저 태풍의 직격탄을 맞은 제주도는 천연기념물 제161호인 수령 600년 된 팽나무가 밑동부터 부러졌다. 돌덩어리가 날아다닐 정도로 강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피해가 속출했다.

승부조작 등으로 최대위기를 맞은 K-리그, 안타깝지만 또 다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후 7시 태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이날 오후 광양시는 마이크 차량을 동원, 시내를 순회하며 "태풍 무이파의 피해가 우려되니 외출을 삼가고 라디오와 TV 방송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안내방송을 했다.

선수를 떠나 관중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선 한파로 관중석에 얼음만 얼어도 불상사를 우려, 경기를 연기한다. 이날 경기장에는 태풍을 뚫고 1368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사고없이 끝난 것이 다행이다. 경기는 가관이었다. 폭우로 그라운드는 논바닥이었다. 강풍에 볼은 춤을 췄다. 바람의 저항으로 정상적인 골킥이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개그 축구'였다.

악천후에 대한 규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프로축구연맹의 '경기, 심판규정 경기장 12조'에는 '악천후로 인하여 경기 개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경기감독관은 경기 개최 3시간 전까지 중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돼 있다. 28조는 '경기 전 또는 경기 도중 중대한 불상사 등으로 경기를 계속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하였을 경우, 주심은 경기감독관에게 경기 중지를 요청하며, 경기감독관은 동요청에 의거하여 경기중지가 불가피하다고 인정될 경우, 경기 중지를 결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홈과 원정팀의 입김도 크게 작용한다. 최종 결정권자는 감독관이지만 경기를 펼칠 주체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관행이다.

현장에서는 빡빡한 경기 일정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변명에 불과하다. 주중 경기가 없는 경우 하루 뒤 경기를 진행할 수 있다. 이번 주에도 주중 경기는 없다. 차후로 연기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전남과 인천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출전팀이 아니다. FA컵에서도 탈락했다. 리그컵은 이미 막을 내렸다.


원정 비용과 훈련장 사용 등을 문제삼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얘기는 다르다. 제주를 제외한 지방 원정 비용은 1000만원 안쪽이다. 1000만원도 KTX를 이용했을 경우다. KTX 비용이 300~400만원 정도 소요된다. 1박을 더 하더라도 비용은 크게 늘지 않는다. 운동장 사용의 경우 프로축구연맹이 교통정리를 할 수도 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프로의 힘은 관중에서 나온다. 관중없는 경기는 무의미하다. 태풍이나 집중 호우시 관중들은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다.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경기 연기를 귀찮게 생각하는 풍토는 개선돼야 한다. 안전과 경기의 질을 생각하는 운영의 묘가 절실하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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