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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②]터닝포인트는 있었다-한국축구에 시스템은 있는가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7-02 05:00


2018 러시아 월드컵, 목표를 향해 달려온 한국축구 4년의 여정이 끝났다. 목표였던 16강 달성은 실패했다.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 세계 최강 독일을 상대로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우리에게 월드컵은 기대와 우려, 환호와 실망의 교차로였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새로운 4년을 향한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됐다. 단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더 이상 '투혼'만으로는 월드컵을 즐길 수 없다. 세계에 맞설 '실력'이 필요하다.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한국축구의 색깔을 회복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스템 구축을 위해 변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모든 걸 바꿔야 한다. 혁명적 변화, 진정한 의미의 혁신만이 답이다. 케케 묵은 관습, 조직, 방법, 사고 방식 등을 전부 갈아 엎어야 한다.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길 잃은 한국축구에 스포츠조선이 시리즈를 통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다.
2018 러시아월드컵 한국과 스웨덴의 조별 예선 첫 경기가 18일 오후(한국시각)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0-1로 패한 선수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니즈니노브고로드(러시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6.18/
② '한국축구'의 정체성 찾기, 시스템 구축이 먼저다.



터닝포인트는 있었다.

2017년 4월이었다. 슈틸리케호는 카타르전에서 완패했다. 최종예선에서 최악의 부진을 보이며 러시아행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갓틸리케'로 불리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수틀리케'가 됐다. 여론도 최악이었다. 기술위원회는 슈틸리케 감독의 거취를 두고 장고를 거듭했지만, 최종 선택은 재신임이었다. "최근의 성적만을 가지고 평가해서는 곤란하다"는 이유에서 였다. 플랜B가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지극히 무사안일한 결정이었다. 당면 과제는 월드컵 진출이었지만, 본선에서의 모습도 고려됐어야 했다. 슈틸리케의 축구로는 세계 무대에서 전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여러차례 확인된 후였다. 축구협회가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정몽규 체제 후 대한축구협회는 여러 메이저대회마다 실기를 반복했다. 도덕적 문제를 차치하고, 적어도 경기력 측면에서는 조중연 회장 시절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실제 성적도 그랬다.


슈틸리케 감독 경질 타이밍을 놓친 한국은 그만큼 월드컵 준비가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후임자는 신태용 감독이었다. 뒤늦게 소방수로 나선 신 감독에게 주어진 시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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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것이 바로 시간이다. 1년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한 팀에 색깔을 만드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여기에 신 감독은 그야말로 벼랑 끝이었던 최종예선 두 경기를 치러야 했다. 사실상 비상 체제로 운영돼야 했다. 색깔 보다는 결과를 쫓아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본선행에 성공했지만 그 내용을 두고, 신태용호는 한동안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다. 히딩크 논란까지 겹치며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쳤다.

지난 1편에서도 언급했지만, A대표팀은 그 나라 축구의 상징이자 얼굴이다. 해당 국적을 가진 이들 중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팀이자, 그 나라 축구의 현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유소년부터 연령별, 프로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 그 나라 축구 시스템이 완성한 최고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누가, 언제 지휘봉을 잡더라도 일정한 색깔로, 일정한 수준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 대표팀이다. 즉, 사람이 아닌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 시스템 완성의 책임이 바로 해당 국가 축구협회에 있다.

다시 일본을 예로 들어보자. 일본은 월드컵 개막 2개월을 앞두고 3년간 팀을 이끌었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을 전격 경질했다. 철저한 계획에 따라 준비하는 일본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할릴호지치 감독의 경질 이유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일본식 축구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였다. 그 변화는 단 2개월이면 충분했다. '아저씨 재팬'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올드보이들을 다시 대표팀에 합류시켰고, 일본은 다시 아기자기한 축구를 펼쳤다. 폴란드전 볼 돌리기라는 옥에 티는 있지만, 어쨌든 일본은 16강에 올랐다.


시스템의 힘이었다. 일본은 유소년부터 연령별 팀, 그리고 프로에 이르기 까지 기술과 패스를 중심으로 한 축구라는 한가지 색깔로 운영되고 있다. 4년 전 브라질 대회에서 처참한 성적을 거둔 일본은 할릴호지치 감독을 통해 보다 빠른 축구를 더하려 했지만,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평가전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과거로 회귀하기로 했다. 원래 했던 축구로 돌아갔다. 수년간 같은 스타일로 볼을 찬 선수들에게, 그렇게 지도한 스태프들에게 시간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스템이란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는가. 집행부가 바뀌면, 감독이 바뀌면 모든 것이 리셋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지만, 이 전에 있던 술이 어떤 맛이었는지 알고 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무려 9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다. 세계에서 단 6개국 밖에 없는 영예다. 하지만 무려 36년간 월드컵 무대를 누비며, 세계인들에게 한국 축구가 과연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우리 스스로도 한국축구가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한다. 유소년부터 프로까지, 축구계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시스템이 중요하다. 이번 월드컵 준비 기간 내내 제기된 각종 비판도 역시 시스템 부재에서 출발한다. 벌써 10번이나 월드컵에 나갔다.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한 거창한 100년 대계, 아니 10년 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제 적어도 4년간 월드컵을 준비하는 노하우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4년 전 홍명보호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했다.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는 모습은 마치 처녀출전국 같았다. 지난 브라질 대회 이후 월드컵 준비 백서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다. 훈련 스케줄은 즉흥적이었고, 다른 나라에 다 있는 멘탈 코치도 없었다. 선수 선발부터 평가전, 그리고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까지 모두 감독에게만 맡겼다. 아쉽게도 신 감독은 이런 월드컵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시스템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 무엇이 한국축구이고, 여기서 찾은 답을 풀뿌리 유소년부터 성인 무대까지 어떻게 공유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 과정이 총론이라면,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은 더 디테일해야 한다. 언제 누가 맡아도 월드컵을 치를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시스템 구축 과정에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한 인적쇄신도 필요하다. 고강도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칼자루를 쥔 정 회장의 리더십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세계무대에 한국축구 영향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외치에 전념하며 한발 물러서는 용단도 필요하다. 2022년 월드컵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해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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