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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루 만에 이렇게 바뀔 줄 몰랐어요."
힘든 시간이었다. "내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를 하셔서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상을 보니까 받아들이는 팬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오로지 만회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할 수 있는데 운동 뿐이더라. 운동에만 미쳐 살았다."
버티고 또 버텼다. 할 수 있는 건 준비 뿐이었다. 김영권에게 어렵사리 기회가 주어졌다. 그때까지도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죽을 각오"로 나선 그는 기어이 자신을 향한 세상의 시선을 바꿨다. 스웨덴전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으로 팬들에 깊은 인상을 남긴 김영권은 독일전에서 결승골까지 폭발시켰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김영권은 이제 '갓영권'으로 통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공항 반응을 보고 놀랐을수도 있겠다.
상상도 못했다. 마지막 독일전을 이긴 후 기사를 보는데 조금은 우호적이더라. 그래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환대해주셨다. 얼떨떨 하더라. 집에 왔더니 아내가 수고했다고 안아주더라.
그때 시련과 고통이 있었기에 열심히 할 수 있게된 계기가 됐다. 그런 의도로 한게 아니었는데, 내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를 하셔서 억울하기도 했다. 그 후 영상을 봤다. 받아들이는 팬들 입장에서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으셨겠구나 싶었다. 아내도 본심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잘 헤처나가라고, 깊이 생각말고 운동에만 신경쓰라고 조언해줬다. 잘못한 부분 인정하고, 다시 만회하려고 했다. 운동장 안에서 실력으로 만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수렁에 빠지는 모습이었다.
대표팀도 못 들어가게 되면서 경기력도 안 나왔다, 오로지 나의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1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하는 상황이었고, 스스로도 완벽하게 준비가 안됐다. 그런 부분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하지만 걱정은 됐다. 개인적으로 월드컵을 못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점점 대표팀과 멀어지면서 월드컵이라는 무대를 내려놓게 됐다. 그런 찰나에 감독님이 믿음을 주셨고 최종 명단까지 들어갔다. 물론 준비는 계속했지만, 솔직히 마음적으로는 내려놨었다.
-어떻게 극복했나.
내가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이래 부상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대표팀에서 빠진 것이 동아시안컵이었다. 그 때 (오히려) 꽉 막혀있던 부분이 뚫린 것 같았다. 그 다음부터 정신을 차렸다. 대표팀에서 했던 경기를 다시 봤다. 확실히 좋았을 때와 비교해보니 확 떨어져 있더라. 오로지 내가 경기를 뛰는거니까 내 잘못이라 생각하고, 팀에서 경기력을 올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중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건 운동 밖에 없으니 축구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하자고 다짐했다. 운동에 미쳐 있었다. 남들 보다 한발이라도 더 뛰려고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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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기사가 나오고, 팬들 사이에 여러 말이 나온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준비를 해야했다. 우리는 스웨덴전에 초점을 맞췄다. 좋은 말보다 안좋은 말이 더 많았지만, 생각은 하더라도 연연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까지 쳐지면 안되니까 최대한 웃으면서, 좋게 생각하면서 하자고 했다. 센터백 중에는 내가 유일하게 월드컵을 경험한 만큼 조언 아닌 조언도 많이 해줬다.
-갑작스런 체력훈련, 트릭 발언 등 준비 과정에서도 말이 많았는데.
선수들과 감독님 사이에 믿음이 없으면 안되니까 다른 부분은 신경쓰지 말자고 했다. 감독님만의 생각도 있고, 그 생각을 믿지 않으면 믿음이 깨지니까 감독님의 의견을 믿었다.
-올인했던 스웨덴전 결과가 좋지 않았다.
스웨덴을 분석한 결과, 패턴이 같았다. 상대는 헤딩이 강했고, 세컨드 볼을 잡아서 마무리하는 형태였다. 우리가 세컨드 볼을 따내기 위해 수비에서 숫적 우위를 주자는 의도였다. 직전에 한 세네갈전에서도 어느 정도 잘 이루어졌다. 스웨덴전에서도 예상보다 경기력이 좋지는 않았지만, 수비 의도는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필드골은 내주지 않았으니까. 경기 후에도 지금 당장 16강을 생각하지 말고 남은 한경기, 한경기 집중하자고 했다.
-스웨덴전은 졌지만, 김영권에 대한 반응은 이 한경기로 달라졌다.
얼떨떨했다. 한번에 바뀔수도 있구나 싶었다. 스웨덴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욕을 먹고 있었다. 나는 죽기살기로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잘 됐다. 그 경기 후에 자신감도 생기고 응원하는 분도 생겨서 잘 할 수 있었다.
-동병상련의 장현수를 보면서 안타까움이 더 컸을 것 같다.
멕시코전에서 페널티킥을 내주고 현수가 굉장히 실망을 하더라. 경기에 집중하라고 했다. 계속 미스를 했지만 잘 버텨줬다. 사실 현수가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현수만의 실수는 아니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더 도와줬다면 안나올 수 있는 장면도 많았다. 나도 현수만큼 욕을 많이 먹었다. 중요한건 본인이다. 옆에서 말을 해준들 본인이 증명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현수가 잘해줬다.
-멕시코에도 졌다. 사실상 탈락이라는 포기하는 반응 속에 독일을 만났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질 거라고, 당연히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바꿔줄 수 있는 사람은 우리 뿐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더 집중했다. 더 강하게 나가자고 했다.
-생갭다 플레이가 좋았다.
사실 경기 전 분석을 하는데 독일 같지가 않더라. 물론 '이길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해볼만 하겠다'라고는 생각했다. 실제로 전반전이 끝나고 '해볼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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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을 넣었는데 오프사이드라고 하더라. 세리머니를 한참 하고 있는데 아쉬웠다. 키스한 팔에 와이프 이름과 아이 이름, 그리고 프랑스어로 '항상 가슴속에 지니고 있겠다'는 말을 새겼다. 그때는 정신이 없었다. 헌데 이상하게 '골이 맞는데'라는 확신은 있었다. VAR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때도 골이라고 확신했다. 판독 시간 내내 속으로 '제발'이라고 기도했다. 골이라고 확정되는 순간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16강에 못 올라갔다는 사실을 늦게 알았다던데.
경기 끝나고 알았다, 2대0이라서 우리가 올라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더 기뻐했다. 끝나고도 몰랐다. 팬들한테 인사하려고 돌 때 그때서야 알았다. 진짜 힘든 경기를 이겼는데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독일을 이긴 것도 기쁘지만, 16강에 오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스웨덴전에 대한 아쉬움이 크더라.
-4년 전 월드컵과 비교하면 어떤가.
4년 전보다는 경기력이나, 선수들이 생각하는 부분이 더 좋아졌다. 4년 전 경험했던 선수들이 그때 아픔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
-4년 뒤에도 월드컵에 도전하고 싶나. 이렇게 힘든 곳인데도.
다음 월드컵도 도전하고 싶다. 월드컵이라는 무대는 어떤 경기도 따라갈 수 없다. 직접 뛰는 선수는 더더욱 이를 느낄 것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도전하겠다.
-유럽 진출설도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도전해보고 싶다. 유럽에서 뛴다는 것 자체가 영광적인 자리다. 수비수로 유럽에서 플레이를 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어린 선수들의 꿈도 될 수 있다. 기회가 되면 도전하고 싶다.
-김영권에게 러시아월드컵이란.
'제2의 축구인생'의 시작. 1막은 반반이었던 것 같다, 좋기도, 나쁘기도 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더 발전하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2막은 개인적으로나, 밖에서나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기대에 부응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있다. 그 기대에 따라가도록 노력하겠다. 욕 안먹고 지금처럼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