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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경신중학교의 오른쪽 풀백 이 용(28·울산)은 유독 키가 작았다. 몸집도 왜소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관심을 가진 한 명의 지도자가 있었다. 노수진 전 영등포공고 감독이었다. "(이) 용이가 경신중 3학년 때 뛰는 경기를 보러갔다. 키가 작더라. 또래보다 15~20㎝는 작은 것 같았다. 당시 성장도 덜 됐더라." 노 전 감독의 첫 인상은 그랬다. 그러나 노 감독은 점점 이 용에게 빠져들었다. 그는 "머리로 공을 차더라. 자신의 신체적 단점을 커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며 "워낙 발 기술도 좋고 스피드가 있었다. 신장이 좋아지고, 몸도 굵어지면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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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용은 마치 스펀지와 같았다. 노 전 감독이 주문하는 것을 곧바로 빨아들여 그라운드에서 표출해냈다. '될 성 부른 떡잎'은 달랐다. 노 전 감독은 "용이는 1학년 때 주전으로 뛰지 못했다. 2학년 말이나 3학년 때 뛰어도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아껴뒀다"고 말했다. 또 "당시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상대 선수보다 미리 위치 선정을 하라는 것이었다. 남다른 축구센스를 갖춰 잘 받아들이더라. 부족한 것을 잘 극복하더라"고 했다. 특히 노 전 감독이 추구하는 패스축구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노 전 감독은 "내 스타일은 패스축구다. 당시 영등포공고가 스코어는 졌어도 축구는 재미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용이도 훈련부터 경기까지 그런 상황이 나오니깐 재미있어 하더라"고 말했다. 노 전 감독의 기억 속에 이 용은 축구만 잘하는 제자가 아니었다. 인성도 잘 갖춰진 선수였다. 노 전 감독은 "나는 인성을 많이 따졌다. 운동선수 이전에 인간이 돼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축구선수들 중 사생활과 인간성이 좋지 않아 구설수에 오르내린 선수들이 많지 않느냐. 그런 면에서 용이는 어른 눈에 '싸가지 있는' 선수였다.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였다"고 했다.
노 전 감독은 '애제자'를 끝까지 아꼈다. 이 용에게 고등학교 졸업 후 1년 유급을 권했다. 스카우트 제의가 없어 대학 진학이 어려웠던 진실은 숨겼다. 다행히 중앙대 진학이 결정돼 노 전 감독은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이후 노 전 감독이 '애제자'를 만난 것은 1년 뒤였다. 제주도 전지훈련 기간 중앙대 경기를 관전하던 중 엄청난 스피드를 뽐내는 선수가 눈에 띄었다. 노 전 감독은 신체조건이 달라진 이 용을 몰라봤다. 그러자 조정호 중앙대 감독이 "저 아이가 노 감독의 제자 이 용이다"고 알려줬다. 이 용이 갖춘 잠재력이 대학 때부터 폭발했던 것이다. 노 전 감독은 "용이는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그 때도 좋은 선수였는데 그 잠재력이 지금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늦은 발견이었다. 이 용은 프로 4년차였던 지난해 7월 24일 중국과의 동아시안컵 때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노 전 감독은 "내가 볼 때는 참 좋은 선수인데 용이가 왜 대표팀에 발탁이 안될까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동아시안컵에서 뽑혔을 때 '진작에 뽑혔어야 했는데 약간 늦지 않았나'라는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제자는 단숨에 홍명보호의 핵심 수비 자원으로 떠올랐다. 이제 결전만 남겨두고 있다. 스승의 바람은 한 가지였다. "볼을 영리하게 차서 부상이 없긴 하지만 절대 부상을 하면 안된다. 경험이 많지 않은 것이 흠이나 지금까지 해왔던 것 이상으로 자신의 플레이를 했으면 좋겠다."
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