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서해의 남쪽 끝, 보배섬 진도 ② 진정한 예향

기사입력 2025-03-13 08:08

세방낙조 [사진/백승렬 기자]
운림산방 전경 [사진/백승렬 기자]
소치가 노년에 그린 '바위와 모란' [사진/백승렬 기자]
눈 내린 쌍계사 [사진/백승렬 기자]
진도읍내에 있는 소전미술관 [사진/백승렬 기자]
남도잡가 공연 모습 [사진/백승렬 기자]
진도 무형문화유산전시관에는 진도다시래기 공연 모습을 인형으로 재현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사진/백승렬 기자]
진도아리랑마을 [사진/백승렬 기자]
진도개테마파크에서 사육하는 진돗개 [사진/백승렬 기자]
진도의 전통주 홍주 [사진/백승렬 기자]
썰물 때는 솔비치 진도의 공원에서 소삼도까지 물길이 열려 걸어갈 수 있다. [사진/백승렬 기자]
세방낙조 [사진/백승렬 기자]
'민속문화 예술특구' 지정…생활 속에 배어있는 문화예술

(진도=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진도는 남도소리의 본향이자 시(時)·서(書)·화(畵)·창(唱)을 다 갖춘 우리나라 민속문화예술의 보고(寶庫)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3종(강강술래, 진도아리랑, 진도소포걸군농악)의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군 단위로는 가장 많은 10개의 미술관이 있고, 150여명의 국선 특선 작가를 배출했다. 진도씻김굿, 진도다시래기, 진도만가, 남도잡가 등 10개가 넘는 무형문화재에 74건의 문화재가 있다.

정부는 2013년 진도를 '민속문화 예술특구'로 지정했다. 가히 한국의 문화 수도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진도를 진정한 예향으로 칭할 수 있는 건 무엇보다 진도인들의 생활 속에 문화예술이 배어있다는 점이다.

진도에 가면 밭 가는 아낙네나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부탁해도 한두 마디 창(唱)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농담도 있다. '광주에는 집집마다 서화 한 폭 정도는 걸려 있고, 목포에 가면 방마다 걸려 있고, 진도에는 화장실에도 걸려 있다'

◇ 남종화의 품격, 운림산방

진도 문화 기행의 으뜸이자 출발점은 운림산방이다. 조선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1808∼1893)이 서울에서 낙향해 말년을 보낸 화실이면서 그의 직계 5대의 화맥이 200년간 이어지는 전 세계에 둘도 없는 대화맥의 산실이다.

거창한 소개를 듣는 것보다 직접 가보면 느낄 수 있다. 진도에서 가장 높은 첨찰산(485m) 아래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운림산방, 그 풍치와 운치가 어떻게 거장의 품격이 됐는지를.

소치는 해남 대흥사에 있던 초의선사 밑에서 그림을 배웠고 30대에 초의를 통해 추사 김정희 문하에 입문해 서화 공부를 했는데, 시(詩)·서(書)·화(畵)에 모두 능해 '소치삼절'(小痴三絶)이라 불렸다.

추사는 중국의 거장 대치(大痴) 황공망과 비교해 소치라는 아호를 지어주고 "압록강 동쪽에는 소치를 따를 만한 사람이 없다"고 칭찬했다.

하얀 눈을 덮어쓴 운림산방, 그곳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배롱나무를 보니 바로 옆 소치 작품들을 전시한 '소치1관'에서 본 '바위와 모란'(怪石牧丹圖)의 시구가 떠오른다.

달의 정령과 눈의 넋이 뿌리에 들어있다가

봄이 오자 향기로운 꽃이 하룻밤 새 피었네

봄과 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소치2관에 들어가니 소치의 후손인 2대 미산 허형, 3대 남농 허건, 임인 허림, 4대 임전 허문, 5대 허진, 허은, 허청규, 허재, 허준 등 소치 일가 직계 작가들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

200년 세월의 풍파가 양천 허씨의 화맥에 어떤 영향을 줬을지 헤아려봄도 좋을 듯하다.

첨찰산 자락, 운림산방 옆에는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쌍계사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절 양편에 계곡이 흘러 쌍계사라 이름했다는 이 절은 대웅전 앞에 핀 동백이 절경이었다. 한겨울 붉은 꽃을 토해낸 동백, 그 꽃잎 위로 소복이 쌓인 하얀 눈이 마냥 신기했다.

소치라면 이 꽃을 어떻게 그렸을까. 물도 되고, 안개도 되고, 눈도 되는 여백으로 남종화의 철학과 멋을 담아내지 않았을까.

진도의 예술혼은 어디에서 온 걸까. 의견이 분분하지만 두 가지만 추려보자.

우선 풍족한 물산이다. 진도에서는 예로부터 쌀농사가 잘됐다. 요즘도 1년 쌀농사를 지으면 2만8천명의 인구가 10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문화예술을 찾게 된다.

장재호 해설사는 "모내기한 뒤 백일이면 수확을 하고 먹거리가 풍족한 상황에서 진도 남자들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원격지인 만큼 중요한 유배지였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귀양을 간 약 700명 중 54명이 진도로 보내졌다.

풍광이 유려한 진도에서 귀양 온 이들은 시와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리며 소일했다.

선조와 숙종 때 영의정이었던 노수신과 김수항, 양명학자인 이광사 등 걸출한 학자들이 진도에 문화예술의 씨를 뿌렸다. 진도에서 서화의 거장들이 대거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 운수 좋은 날, 명창을 만나다

추사 김정희 이래 최고의 서예가라는 칭송을 받는 소전 손재형 선생의 작품이 전시된 소전미술관은 진도읍내에 있다.

'소전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완성한 서화들을 미술관에서 감상했다면 미술관 밖에선 벽파진에서 본 '이충무공 전첩비'를 떠올려야 한다.

피섬 앞 언덕 위 명량대첩을 기념한 전첩비는 비문을 시인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손재형이 썼다.

미술관을 나와 사진 자료를 찾기 위해 진도 무형문화재전수관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은인들을 만났다. 진도문화도시센터의 허건 센터장과 박종필 사무국장이다.

자신을 '서울촌놈'이라고 소개한 허 센터장은 본인과 이름이 같은 남농 허건이 생각나 문득 운림산방에 와본 뒤 그만 진도의 예술혼에 푹 빠져 결국 진도문화도시센터장까지 맡게 된 '진도 마니아'다.

허 센터장은 선뜻 진도 최고의 명창 조오환 선생의 공연 주선을 약속했다. 겨울엔 상설 공연이 없지만, 진도를 알리는 일에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 11시. 진도읍 해창민속전수관에서는 진도 조도닻배노래 예능보유자이자 진도민속문화예술단장인 조오환 명창과 강강술래 이수자인 고미경 선생을 비롯해 6∼7명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냈다.

조 명창은 걸쭉한 전라도 억양으로 공연 내용을 소개했고 50∼60대 여성 3명이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숟가락으로 바가지를 두드리며 남도잡가를 불러 젖히기 시작했다.

"가다가 못 가면 쉬어나 가세∼덩기 둥덩에 덩∼"

이어 조 명창이 재미있고 신명 나는 '엿타령'을 한판 벌이니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그 유명한 씻김굿 가운데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길을 닦아 준다는 '길닦음'과 나도 모르게 손으로 무릎을 치게 되는 진도북놀이까지 30여분에 걸친 공연이 끝났다.

명창의 공연은 마음을 움직였다. 진도의 소리이자 우리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진도의 서화를 양반들이 발전시켰다면, 진도의 음악은 민초들이 만들어온 것이다.

진도다시래기는 진도의 상가에서 출상 전날 밤에 상주와 그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와 춤, 재담을 섞은 가무극적 연희다.

다시래기에서는 사당과 거사가 나와 성적인 농담을 주고받고 가무를 즐기다가 아이를 낳는 장면을 연출한다.

초상집에서 성적 농담과 출산이라니 언뜻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엄숙한 조선의 유교문화 이전에 장례를 축제처럼 지내는 고려시대 이전의 관습이 보전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런 문화는 왜 유독 진도에서 지금껏 뚜렷하게 이어져 왔을까.

삼별초 항쟁에서 시작해 오래도록 격동의 세월을 겪은 진도인들에게 익숙해진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절망이 아니라 또 다른 희망의 징표여야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진도의 그 어떤 타령도 '흥'과 '한'의 합일처럼 느껴진다.

◇ 진돗개와 홍주, 그리고 낙조

진도아리랑이 우리나라 3대 아리랑(정선·밀양·진도) 중 하나라는데, 아리랑마을을 빠뜨리면 안 되겠지라고만 생각하고 갔는데, 표지판에서 길을 들어서는 순간 뒤로는 여귀산(457m)이, 앞으로는 다도해의 장관이 내려다보이는 장쾌한 풍광이 펼쳐졌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국립 남도국악원과 아리랑 체험관이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진돗개테마파크도 좋은 선택이다.

한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으로 따르는 충성심, 먼 길을 떠나도 되돌아오는 귀소본능, 영리함과 민첩성으로 사냥하는 수렵본능으로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진돗개는 진도의 많은 자랑거리 중 빠질 수 없는 한 가지다.

이곳에 가면 훈련받지 않고 사육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진돗개를 볼 수 있다.

진도를 흔히 '삼보삼락(三寶三樂)의 섬'이라고 하는데, 진돗개는 구기자, 돌미역과 함께 삼보에 속한다. 3가지 즐거움(삼락)은 소리, 서화, 홍주다.

진도 홍주는 순곡주에 지초 뿌리는 넣어 만든 전통주로, 애주가들에게는 그 붉은색이 더없이 신비롭게 느껴지는 술이다.

체험장을 방문해도 좋고, 돌아갈 때 작은 병 하나 정도 사서 가는 것도 기념이 될 수 있겠다.

진도에는 '뽕할머니 전설'이라는 게 있다. 꽤 긴 이야기인데 골자만 추리면,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떼의 습격을 피해 마을을 떠나 바로 앞섬인 모도로 건너가다가 배에 자리가 부족해 나이 많은 뽕할머니만 남겨놓고 피난을 갔는데, 헤어진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는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듣고 용왕이 바다에 길을 냈다는 이야기다.

이 전설의 장소가 바로 진도 '신비의 바닷길'이다. 매년 음력 2∼3월 보름쯤이면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 사이 약 2.8㎞의 바다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바다 밑이 40여m 폭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 바닷길은 1975년 주한프랑스대사 피에르 랑디가 관광 왔다가 목격하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신비의 바닷길에 왔다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쏠비치 진도 앞 공원도 가보길 권한다.

전망대에서 남쪽 바다 풍광이 근사한데 바로 앞 소삼도, 중삼도, 대삼도가 겹쳐 보이고, 소삼도는 물이 빠지면 건너가 산책할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잿빛 하늘에 눈보라가 몰아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른 속살을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일기가 이틀째 계속됐다.

멋진 낙조를 보는 건 난망이었다. 진도 문화탐방을 마친 늦은 오후 하늘은 더욱 어두웠다.

그래도 붉은 하늘을 보고 싶었다. 세방낙조까지 차로 1시간 가까운 거리를 '혹시나'하고 달려갔다.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는 말은 자주 쓰면 안 된다. 딱 이럴 때 의기양양하게 던져야 한다.

도착해서 얼마 안 돼 순식간에 구름이 옅어지더니 거짓말처럼 서쪽 하늘이 붉어졌다. 그 옛날 진도의 애주가가 세방낙조를 보고 홍주를 만들지 않았을까. 어느덧 해는 아득히 외로운 섬과 서녘 바다 사이로 사라졌다.

information

▲ 진도에서는 한겨울(1∼2월)을 제외하면 연중 다양한 민속공연을 볼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진도군 향토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진도토요민속여행' 공연이 대표적이다.

국립남도국악원에서는 7월부터 12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토요상설 '국악이 좋다' 공연이 진행된다.

매년 10월 중에는 다양한 국악 공연이 펼쳐지는 '보배섬문화예술제'가 열린다.

이밖에 진도다시래기보존회 등 민간단체들이 벌이는 공연도 수시로 열린다.

▲ 진도의 민속문화를 직접 경험해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의신면에 있는 운림예술촌에서는 한옥공간에서 서화, 진도북놀이, 솟대만들기 등을 체험하고 핸드드립 커피내리기, 드립백커피 선물만들기 등의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faith@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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