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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찾은 청동 장식기와 8점…"원위치는 경복궁 흥례문"

기사입력 2024-11-18 09:51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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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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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동그라미로 표시된 부분은 장식기와인 토수가 설치돼 있는 모습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붉은색 동그라미 안이 장식기와인 토수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제73회 동악미술사학회 정기 학술대회에서 전효수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사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청동 토수에 대한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2024.11.18 yes@yna.co.kr
2022년 청주박물관 전시서 실물 첫 공개…"중요하고 특별한 건물 장식용"

"1910년대 일제가 허문 뒤 조선총독부서 보관한 듯"…향후 연구 활용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해 온 청동 장식기와 일부가 원래는 경복궁 흥례문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00여 년 전 일제가 경복궁 곳곳을 허물었던 당시 흔적으로서 주목된다.

18일 학계에 따르면 전효수 국립청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지난 16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제73회 동악미술사학회 정기 학술대회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전 연구사가 주목한 유물은 청동으로 제작한 토수(吐首) 8점이다.

토수는 전통 건물의 추녀 끝에 끼우는 장식기와로, 목재가 비바람으로 부식되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했다. 용이나 뱀, 물고기 등 물과 관련한 동물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토수는 평균 길이 57.5㎝, 높이 40㎝, 무게 47.7㎏으로 큰 편이다.

이들 유물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에서 보관해오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국립박물관으로 넘어온 것으로 여겨지며, 2022년 국립청주박물관 전시에서 처음 실물이 공개됐다.

당시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복궁의 주요 건물에 달린 토수와 형태적으로 유사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전 연구사는 약 2년간 자료를 조사하며 연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 연구사는 청동 토수 8점의 재질, 형태 등을 검토해 "과거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건물을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경복궁 흥례문의 장식기와가 유력하다"고 결론 내렸다.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法宮)으로 여긴 경복궁은 고종(재위 1863∼1907) 대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중건했는데 현재 사정전, 근정전 등 주요 건물에는 청동 토수가 남아 있다.

전 연구사는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남긴 기록인 '영건일기'(營建日記) 내용을 토대로 당시 청동 토수가 사용된 건물과 이들의 연혁, 유리건판 사진 등을 비교 분석했다.

그는 "중건 이후 격변을 겪은 경복궁 건물 가운데 청동 토수와 연관성이 있는 후보는 교태전, 강녕전, 흥례문, 광화문, 수정전 등 5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물관의 청동 토수 8점은 1층 건물 2채 혹은 2층 건물 1채 분량"이며 "화재로 인한 흔적이나 낙하(떨어짐)로 인한 흔적은 관찰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1917년 창덕궁에 큰불이 났을 때 건물을 복원하기 위해 옮긴 교태전과 강녕전,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문루가 소실된 광화문 등에 있었을 가능성이 작다는 해석이다.

전 연구사는 흥례문과 관련해선 "1915년 경복궁에서 개최한 조선물산공진회 대회장을 건립하기 위해 훼철(毁撤·헐어서 치워 버림)되는 과정에서 청동 토수가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1914년 7월 조선총독부 관보와 언론 기사를 보면 당시 조선총독부는 흥례문 권역과 동궁 권역 건물을 '갑'·'을'·'병'·'정' 4개 그룹으로 나눠 경매에 부쳤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입찰 고시에 따르면 흥례문의 경우 '초석과 축방석 이외의 석재와 장식기와 제외'라는 부분이 있다. 분리된 장식기와는 조선총독부로 입수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전 연구사는 "경복궁 영건일기, 유리 건판, 일제강점기 자료 등을 교차 검증한 결과, 박물관에 있는 청동 토수의 원래 위치는 1914년 훼철된 흥례문이 유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동 토수가 남아있거나 과거 있었다고 추정되는 경복궁 내 주요 건물에 대해서는 "경복궁 중건 시 왕실과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에 청동 토수로 특별하게 장식했다고 해석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청동 토수는 오랜 노력 끝에 원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약 13년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부터 인수한 미등록 자료 15만점을 포함한 다양한 자료를 정리했다. 그 결과 총 250만7천76점의 유물을 새롭게 확인해 등록·관리 중이다.

전 연구사는 "청동 토수와 관련한 구체적인 정보는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유물로 취급하지 않고 참고 자료 수준으로 관리되다가 인수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 결과가 향후 경복궁 복원·정비 과정에서 검토될지 주목된다.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은 1990년 시작한 경복궁 복원 사업에 따라 총예산 233억원을 들여 흥례문과 유화문 행각, 기별청, 영제교 등을 복원해 2001년부터 공개하고 있다.

yes@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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