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구교환, 더 높이 날 배우"…허준호, 9년 공백기 매운 美친존재감(청룡영화상)

제42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허준호. 정재근 기자 [e-mail]/2021.12.6/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다시 연기하게 될 줄 몰랐던 긴 공백기. 돌아오길 잘 했죠."

허준호(57), 돌아오길 참 잘했다.

제42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은 그 어느 때 보다 치열했다. 구교환('모가디슈'), 이광수('싱크홀'), 이성민('기적'), 진선규('승리호') 등 하나 같이 영화 속에서 주연 만큼이나 빛나는 존재감을 보여준 배우들이 후보에 올랐고 심사위원들 역시 "어느 한 명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후보들"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나 치열한 후보들을 제치고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은 배우는 '모가디슈'의 허준호다. 1995년 제16회 시상식에서 '테러리스트'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이후 무려 26년만에 들어올린 청룡 트로피다.

'모가디슈'에서 소말리아 북한 대사 림용수를 연기한 허준호는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관록이 깃든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심사위원들은 원로 대배우인 허준호의 부친 허장강을 언급하며 "허준호가 마침내 아버지이자 선배 배우인 고(故) 허장강의 연기를 뛰어넘는 수준의 경지에 올랐다"는 극찬까지 내놨다.

영화 '모가디슈' 스틸

청룡 수상 이후 차기작 촬영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허준호를 스포츠조선이 다시 만났다. 허준호는 감격스러운 수상과 심사위원의 극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나에게 이런 상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걱정을 한다. 어제도 걱정했고 오늘도 늘 걱정을 하며 연기를 한다. 그런 내게 '잘 하고 있다'는 응원을 해준 느낌이다. 감사한 마음이 배가 되고 책임감이 더 강해졌다"라며 쑥쓰러운듯 입을 열었다.

허준호는 26년만의 개인 연기상 수상보다 '모가디슈'의 작품상과 류승완 감독의 감독상 수상이 더 기뻤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내가 출연했던 영화 중에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 없었다"는 그는 "작품상을 받았을 때의 축제 같은 느낌을 나도 느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모가디슈'라는 작품으로 느끼게 됐다. 내 필모그래피에 '모가디슈'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뿌듯하고 기쁘다. 어디서든 '나 모가디슈 한 배우야!'라고 자랑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모가디슈'가 작품상으로 발표될 때는 다른 배우들에게는 미안할 정도로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시상식이 끝나고도 '모가디슈' 팀 전부 축제분위기였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따로 뒷풀이는 못했지만, 시상식 끝나고 매니저들도 없이 류승완 감독님, 제작사 강혜정 대표, 참석한 배우 네 명이서 수다 조금 떨다가 헤어졌다"며 웃었다.

제42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허준호. 정재근 기자 [e-mail]/2021.12.6/

'모가디슈'는 허준호에게 처음부터 특별한 작품이었다. 류승완 감독을 처음 만나 영화의 콘셉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허준호의 마음을 빼았아 간 작품이었다. 허준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모가디슈'를 처음 만났던 순간과 촬영, 그리고 개봉까지의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류승완 감독이 내게 제안을 했을 때는 '탈출영화'라고 설명해줬다. 소말리아 내전에 대해서는 나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대사관 사람들의 이렇게 탈출하려고 애를 썼다는 이야기는 영화의 제안을 받고 처음 알게 됐다. 류 감독에게 영화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을 듣는데 신뢰가 확 가더라. 더군다나 남북한을 오가는 이야기에서 내가 북한대사 역할을 맡는다고 하더라. 굉장히 큰 역할 아닌가.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류 감독에게 바로 하겠다고 했다. 출연을 하기로 하고 나중에 대본을 받아봤는데, 역시나 기대했던 것 만큼 대본이 잘 빠졌더라.

'모가디슈'는 촬영도 특별했다. 대체로 모든 촬영장에서 촬영 2~3주쯤 되면 스태프들 배우들이든 크고 작은 사고가 난다. 그런데 '모가디슈'는 힘든 해외 촬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사고가 하나도 없었다. 배우든 스태프들 단 한사람도 겉돌거나 도태되는느낌도 들지 않았다. 늘 뭉치는 분위기였다. 사실 현장에서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내가 연기 공백기를 갖지 않았나. 공백기를 갖고 현장에 돌아와보니 모든 현장에서든 한 두 분을 제외하고는 항상 내가 큰 형이 돼 있더라. 내가 어렸을 때 현장을 생각해보면 현장에서 가장 큰 형들이 소리를 치거나 화를 내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안좋아졌다. 그런 분위기를 잘 아니까 지금 나는 현장에서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한다."

제42회 청룡영화상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허준호가 동료 배우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여의도=정재근 기자 [e-mail]/2021.11.26/

제4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26일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허준호가 소감을 전하고 있다. 여의도=송정헌 기자 [e-mail]/2021.11.26/

'모가디슈' 제작진과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아낌 없이 드러낸 허준호. 특히함께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구교환에 대한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구교환 배우와 나 둘 다 후보에 올랐다는 게 정말 기분이 좋았다"는 그는 "다른 배우들 보다도 우리 작품에 배우들이 한 명이라도 후보에 많이 오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물론 아주 조금은 내가 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없진 안?지만, 사실 '모가디슈'의 그 어떤 배우가 상을 받는다고 해도 진심으로 기뻤을 거다"고 힘줘 말했다. "주연상에도 우리 '모가디슈'의 두 배우나 후보에 올라서 정말 기뻤다. 교환이는 이제 정말 제대로 시작한 느낌이고 지금 너무 잘되고 있지 않나. 인기도 정말 많고. 내 주변 사람들도 정말 교환이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교환이에게는 나보다 앞으로 더 좋은 기회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교환이는 앞으로 더 잘 되고 더 높게 날 배우다. 그렇기에 지금 쏟아지는 인기와 관심이 너무 흔들리지 않고 더 잘 성장해서 더 좋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부터 '모가디슈'까지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어젖힌 허준호는 긴 공백기가 있었던 만큼이나 지금의 연기 활동과 청룡 트로피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허준호는 2007년 드라마 '로비스트' 이후 2016년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로 복귀하기 까지 무려 9년이라는 긴 연기 공백기를 가진 바 있다.

제42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26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허준호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여의도=박재만 기자 [e-mail]/2021.11.26/

"사실 공백기 동안은 연기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배우로 돌아올 생각도 없었다. 내가 기독교 신자라 공백기 동안은 성경 공부나 선교 활동에 집중했다. 그때는 내가 다시 배우일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을 하지 못했고, 간혹 몇 작품이 들어오긴 했는데, 늘 내가 하던 뻔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굳이 내가 연기자로 복귀를 해야할까 싶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2016년에 '뷰티풀 마인드'라는 드라마 제안이 들어왔는데, 내가 젊은 시절에도 한 번도 연기해본 적 없는 의사 역할이었다. 드라마 장르도 내가 해보진 않았던 작품이었다. 내가 해본 적 없는 장르와 역할을 내게 제안해주신 모완일 감독님께 제안했고, 그 작품을 통해서 연기에 복귀하게 됐다.

지금은 이렇게 의미있는 상도 받고 다행히 잘 되고 있으니 잘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일단은 감사하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나는 앞으로 내가 어떤 어떤 일을 해야지라는 식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뭔가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도 됐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허준호는 앞으로도 긴 공백기를 잊게 할 성실한 태도와 진심어린 연기로 관객을 만나겠다는 약속의 말을 전했다. "작품을 들어오고 날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나라는 배우에 대한 반응이 있다는 이야기이니까 나에게는 그저 감사한 마음 뿐이다. 욕심내지 않고 나에게 온 늘 감사하며 연기해 나가겠다."

이승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