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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그야말로 일당백, 전천후 활약이다. 단역부터, 조연, 그리고 영화 전체를 진두지휘하는 주연까지 손에 쥐어지는 족족 막힘없이 소화하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연기 장인' '국민 배우' '믿보배'. 수식어만 수만 가지. 배우 라미란(46)이 장르며 장르가 곧 라미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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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그놈' '걸캅스' '정직한 후보'까지 탄탄한 연기력과 친근한 매력, 차진 코미디를 펼친 라미란은 충무로 최고의 '코미디 장인'으로 등극, 3연속 흥행을 이끌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무엇보다 '정직한 후보'에서 라미란은 대한민국 넘버 원 거짓말쟁이에서 한순간에 팩트만 말하는 진실의 주둥이를 갖게 된 국회의원 주상숙을 완벽히 소화, 하드캐리한 라미란 표 코믹 연기로 영화의 처음부터 끝을 완벽하게 이끌었다. 라미란의 라미란에 의한 라미란을 위한 정통 코미디로 코로나19 직격타를 맞은 극장가를 조금이나마 웃게 만들었던 것. 그동안 코미디 영화를 소외해왔던 한국 영화계도 대체 불가한 라미란의 피, 땀, 눈물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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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이후 가장 먼저 라미란을 찾아온 사람은 절친 김숙이었다. 앞서 김숙은 지난해 열린 KBS '연예대상'에서 생애 첫 대상을 수상해 라미란과 기쁨을 함께 나눴는데 이번엔 라미란의 여우주연상 수상을 기념해 만사를 제치고 가장 먼저 친구를 찾아와 화제를 모았다.
라미란은 "인천에서 청룡영화상을 끝낸 직후 김대상(김숙)에게 연락이 왔다. 인천으로 바로 온다고 하더라. 많이 당황했다. 인천까지 멀기도 했고 와도 시상식으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라 한사코 말렸다. 사실 숙이가 KBS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해 대상을 받고도 곁에 아무도 축하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더라. 대상 수상 후 복도에 아무도 없이 혼자 있었다고 하더라. 그 기억 때문인지 나도 외로울까 봐 찾아온다고 했던 것 같다. 난 괜찮다고 사양했는데 이미 출발했다고 하길래 부랴부랴 서울 모처로 오라고 했다. 집에 와서 여우주연상 이벤트도 해주고 그 과정을 찍어서 SNS에도 올려줬다. 어떻게 또 때가 맞아 SNS도 청룡영화상 개최 전 SNS를 시작했다. 마치 수상을 예견한 듯 SNS를 개설한 것 같다"고 특유의 재치를 보였다.
그는 "SNS를 통해 진짜 많은 팬의 축하를 받았다. 사실 나는 회의적인 사람이다. 늘 의심하는 편이고 거리를 두고 벽을 두려는 습성이 있다. 상대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내가 혹시 실수해서 상대가 상처를 받을까 봐 조심하게 된다. 상대에게 민폐가 될 바에 내가 피하자는 식인데 이런 차가운 내게 많은 분이 찾아와주시고 축하해주셔서 너무 놀라고 고마웠다. 이게 진짜 무슨 복인지 모르겠다"고 거듭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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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수상을 발표하기 전 후보 5명이 화면에 5분할로 보여주지 않나? 그때도 나 혼자만 신났더라. 시상식이 끝난 뒤에 내가 한 수상 소감 영상을 다시 봤는데 정말 나는 너무 아무 생각 없이 간 것 같더라. 그도 그럴 것이 함께 오른 후보들 전부 누가 봐도 탐낼 만한 배우들 아닌가? 누가 받아도 이견 없는 느낌의 후보들이었다. 나는 누가 받아도 박수 치고 축하하러 가야지 싶었는데 갑자기 시상자가 '정직한 후보'를 외쳐서 멍해졌다. 무대까지 올라가는데 눈물이 흘러서 난감했다. 안 울려고 내 이마를 손으로 세 번 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곱씹었다.
무엇보다 라미란은 "상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상을 받으면 정말 좀 부끄러워진다. 다시 받으러 오겠다고 말은 했지만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 늘 마음속으로는 '그만 주셔도 됩니다' '한 시절 충분히 해 먹었습니다'며 일부러 스스로 누르려고 노력한다. 물론 상을 받으면 기분은 좋다. 다만 상에 의미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한다. 오히려 주변 후배들이 내가 받은 상에서 의미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언니가 받은 상을 보면서 위로가 됐다' '나도 희망을 가져보려고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요즘엔 후배 동생들로부터 '선구자 라미란'이라는 세뇌를 당하고 있다. 그래서 또 상을 받으러 가야 할 것 같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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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를 통해 크게 바뀐다는 생각은 없다. 개인적인 부담과 무게감은 상당히 느껴진다. 그게 힘들기도 하다. 대신 함께 하는 동료들과 앞으로 함께할 분들 또 이 장르를 이어갈 분들이 조금이나마 힘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히 내 역할을 한 것 같다. 지금 '배꼽 도둑'에 대한 강박도 조금 생긴 것 같다. 누군가의 입에 이런 비주류 장르가 언급만 된다고 해도 그게 어딘가. 나는 늘 다음 작품이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음 작품으로도 또 상 받으러 오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은 내게 이래도 되나 싶은 상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빅이슈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혹시 모르니까 준비하고 있어' '이제 너의 것이 될 것이니'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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