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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김수현기자] 임미숙 김학래 부부가 솔직한 부부의 이야기로 그간의 루머를 해명하고 아픈 과거를 회상했다.
강호동은 "어릴 때 우리 마음 속에 예능부 장관급이시다"라고 말했다. 임미숙은 "제가 많이 늙었다. 의사의 도움을 전혀 안받은 얼굴이다. 눈물샘이 깊어서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임미숙은 "내 남편이라고 하면 최양락과 이봉원을 떠올리는데, 김학래 씨가 올거다. 언제 올지는 모르겠다. 준비하는데 한참 걸린다. 그냥 우리끼리만 얘기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유행어 메이커이기도 한 임미숙은 갑자기 브라운관을 떠난 이유에 대해 "제가 90년 5월 30일에 결혼을 했다. 김학래 씨가 저를 정말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사랑받으려고 결혼을 했는데 집에를 잘 안들어왔다. 2박 3일을 안오는 거다. 지나치게 나를 혼자 두니까 어느 순간 가슴이 뛰고 불안해졌다. 일주일 만에 10kg가 빠졌다"라고 털어놓았다.
임미숙은 "그 당시에는 공황장애라는 말도 잘 없었다. 그렇게 10년을 남편에게도 말을 못했다. 그때만 해도 '알뜰 살림 장만 퀴즈' 프로그램을 6~7년을 했는데 말하지 않았다. 90년대 초 제주도로 촬영을 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서서 왔다. 너무 불안했다. 화장실 앞에서 심호흡을 하면서 견뎠다"라며 아픈 과거를 회상했대.
이어 "김학래 씨는 자기와 상관없다고 해도 결혼 전에는 공황 장애가 없었다. 조금은 남편의 책임이 있을 것 같다"라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그는 "어느날 지인이 라디오를 들으래서 봤더니 의사가 내 증상을 '공황장애'라고 하더라. 병명을 들으니 안도감이 좀 있었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최란 씨가 '아내 얼굴 좀 봐봐. 아프니까 병원 좀 가봐'라고 했다더라. 그래서 김학래 씨가 저를 챙겼다. 그때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임미숙은 "나 같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더라.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비 이모 역시 "우리 신영이도 공황 장애가 3년을 활동을 안했다. 공황 장애는 어떻게 보면 나에 대한 선물이다. 나에 대한 생각을 더 깊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 임미숙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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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래는 "나를 안주로 여러가지 얘기를 하면서 속이 채워진다. 뭔 얘기 했는지는 모르지만 뭐 그런 거 아니냐. 내가 뭐 여자랑 바람을 폈다거나 하는거?"라며 앞에 이야기 한 내용을 추측했다. 임미숙은 "본인이 이렇게 얘기를 한다. 이 인간아 바람 피웠어?"라며 장난으로 김학래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김학래는 "또 다른 얘기로는 친구들이랑 도박한 얘기?"라고 말해 임미숙을 분노하게 했다. 김학래는 강호동과 개그 티키타카 실패하자 "내가 나이를 먹으니까 자꾸 개그 타이밍을 놓친다"며 "그런데 이렇게 하고 집에 가면 임미숙 씨에게 엄청 혼난다"고 말했다.
'만나게 된 계기'에 대해 임미숙은 "제가 KBS 개그맨 2기로 입사했는데 김학래 씨는 이미 스타였다. 선배와 후배가 짝을 지어 연습하는 거였다. 그때 김학래 씨는 이경애씨 담당, 저는 최양락 씨가 제 멘토였다. 그런데 김학래 씨가 저한테만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지금은 그런 제도가 없다
80년대 방송사마다 소속감이 남달랐다고, 임미숙은 "방송사별로 시청률과 유행어 경쟁이 정말 심했다"라고 말했다. 김학래는 그때 당시 유행어를 선보이며 "그때는 코미니 프로그램 시청률이 50%에 육박했다. 코너를 바꾸면 광고가 들어올 정도였다. 우리끼리는 '코미디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른다"며 그때 당시 인기를 증언했다.
임미숙은 '푼수 날라리아 왕비' 당시 인기에 "군인들이 저를 좋아했다. 편지를 정말 많이 받았다. 각종 언론사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학래도 "하늘을 치솟았었다"며 공감했다.
제가 "대학원 다녀오고 군대 다녀오니 선배들이 '임미숙이 제일 예쁘더라. 좀 가까운데서 찾아봐' 하더라. 그래서 보니까 예뻤다. 그래서 작업을 걸기 시작한 거다"라며 "내가 '나한테 시집 안 올래?' 했더니 거절을 안하고 '나 데리고 가면 내가 몸이 약해서 고생해'라고 애매하게 답하더라. 또 '신앙이 있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하더라. 그래서 바로 대형 성경책을 사와서 '앞으로 베드로라 불러라' 했다"고 말했다.
김학래는 "어느날 보니까 '이만한 사람은 없다' 생각이 들었다"고 했지만 임미숙은 "어디 갔다오면 속옷 선물을 주는데 기쁘지가 않은 거다. 저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김학래는 "그러다 1년 정도 됐을 때 이별을 통보하더라. 억장이 무너지는 거다. 임미숙이 아른아른 거려서 밤에 잠도 안왔다. 새벽 5시에 교화를 가니까 문이 닫혀 있었다. 밤을 지새우면서 임미숙에게 편지를 보냈다"며 "이경애 씨가 우리 사랑의 오작교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김학래는 "그때 당시에 선배들이 전부 임미숙 씨를 좋아?다. 이상운, 이봉원 씨도 좋아했다. 심지어는 그때 당시 슈퍼스타였던 심형래 선배도 좋아했다"라며 "그런데 그런게 있다. 모두가 좋아하는 여자와 만나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뿌듯해했다. 임미숙은 "여기는 학력이 좋지 않냐. 그 당시에 석사는 잘 없었다"라고 농담했다.
임미숙은 "김학래 씨가 선교단에 들어오고 사이판 행사를 갔는데 국빈 대접을 받았다. 강당 매트리스에서 자야 했던 상황인데 '돌아버리겠네'하고 화를 내더라. 그런 과격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돌아섰다. '오빠 죄송한데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라며 "그랬더니 '그럼 진작 말을 하지 돈을 그렇게 많이 썼는데' 하더라"라고 말해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김학래는 "아니 연애를 할 때 무조건 동료들과 함께 데이트를 했다. 그러다보니 회식을 제가 항상 쐈다. 매일 매일이 회식인 거다"라고 해명했지만 모두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김학래는 "제가 임미숙 씨에게 잘 보이려 했던 건 사실이다. 결혼 해야 할 사람인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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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이후에 대해 임미숙은 "그 다음부터 러브레터 세례가 시작됐다. 그러다 하루 편지를 못받으면 괜히 서운해졌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하도 안됐으니까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기도를 해보러 갔더니 와있더라"라고 말했다. 김학래는 "하늘의 계시다"라고 말했지만 임미숙은 "이경애가 얘기해 준거다"라고 반박했다.
남창희가 당시 러브레터를 공개했다. '주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까? 달콤한 키스 한 번을 하고 싶어 몇날 몇일을 참고 기다리려다 겨우 용기를 내서 한 번 하는 바보스러운. 사랑하는 사람을 알기 전에 많은 여인을 만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내숭을 떨었습니다. 미숙이 건강하게 해주세요'하는 절절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임미숙은 "결혼 전에 키스 4번 정도 하고 결혼했다. 저를 너무 안만져서 서운할 정도였다"라고 말했고, 김학래는 "저는 결혼할 사람이니까 아끼려고 그런 거다"라고 말했다. 임미숙은 "지금도 아끼지마! 지금도 좀 만져줘"라고 버럭해 웃음을 자아냈다.
임미숙은 "그런데 마음이 열리자마자 기사가 터진 거다. 그때는 연애 기사가 나면 결혼을 해야하는 때였다"라고 결혼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 했다.
임미숙은 "전에 데이트 할 때 '메기 매운탕'을 좋아한다길래 자주 갔는데 결혼하자마자 안 먹는 거다. 물어보니까 '비린내가 나서 못 먹는다'라고 외치더라"라고 폭로했다. 김학래는 "제가 사실 좀 예민해서 민물 고기를 못 먹는다"고 고백했고, 임미숙은 "어쩐지 수제비 사리를 해서 수제비만 먹더라"라고 덧붙였다.
임미숙은 "제가 이 비린내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게 있다. 음식을 가리는 게 왜 그러나 싶었는데, 이 사람이 어릴 때 가난했다. 붕어를 고아서 어머니한테 먹여 드리고 문제는 설거지였다. 비린내가 너무 싫었어서 지금까지 민물 고기를 안 먹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아들을 낳고 엄마가 가물치를 끓여주셨는데 이 사람이 3일을 안들어왔다"고 말해 모두를 폭소하게 했다.
김학래의 끈질긴 구애로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은 도박과 바람으로 가정 파탄 위기에 휩싸였다는 이야기가 항상 따라붙었다. 임미숙은 "어디가서 웃기려고 하면 과장된 부분이 생긴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포커 게임을 한 건 팩트다"라고 말했다. 김학래는 "원래는 포커를 하나도 몰랐는데 후배한테 배우다보니 이게 재미있더라. 열흘 동안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걸로 속을 많이 썩였다. 임미숙은 "'거기 있는 사람들 다 죽여버릴 거야'라고 했더니 이제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는 거다. 누가 자꾸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느날 '나훈아 선배 매니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얼마 뒤에 또 그러더라. 한 사람을 세 번 죽인 적도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임미숙은 "저는 결혼은 인생의 다다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김학래는 "저는 '열심히 일했으면 취미 하나쯤 있어도 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다들 가족의 의미를 알게 되는데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라고 후회했다.
부부 사이이면서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임미숙과 김형래는 SBS에서 방송됐던 '알뜰 살림 장만 퀴즈'에서 호흡을 맞췄다. 임미숙은 "대기실에서 만나면 내가 잔소리를 할 까봐 방송 직전에 오더라. 한 대 따귀를 갈겨주고 싶은 거다. 부부 싸움을 하고 3~4일 뒤에 방송국에서 보는데 제 얼굴을 안 보고 들어간다"고 서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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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숙은 "이제는 내가 각서를 쓰게 생겼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라 말했고, 김학래는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실검에 계속 우리 이름이 뜨더라. 악플이 장난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김학래는 "기댈 데가 어디에 있냐. 부부밖에 없다. 과거의 일들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내가 실수하지 않았으면 임미숙 씨가 가슴 아프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임미숙 씨가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임미숙은 "기다려준 게 아니라 공황장애 이겨내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재치있게 말을 받았다.
사업으로도 돈을 엄청 날렸던 김학래는 "라이브 카페를 했을 당시에 손님에게 '또 오셨어요!'라는 말을 못하게 했다. 불륜들이 많이 오기 때문에"라고 찐개그맨 입담을 자랑했다. 김학래는 "(사업으로) 수십억을 날렸다. 한 달에 은행 이지만 수천만 원이었다. 그 당시에 금액이 그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임미숙은 "IMF 여파도 있었다. 급한 돈은 지인에게 빌렸어야 했는데 보증을 서줘서 빚이 60억이 됐다. 그래서 라이브 카페를 접고 강동구에 중식당을 개업했다. 추가로 빚을 내서 1층 상가를 구입했다. 상가 구입 비용이 20억이었고, 인테리어 비용에 4억이 들었다. 김학래 씨는 인테리어에 신경 써야 한다는 주의인데 지금 19년이 됐는데 그 인테리어 그대로 쓰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학래와 임미숙은 결국 중식당으로 사업을 성공했다. 중국음식을 냉동음식으로 만들어서 크게 히트했다. 김학래는 "100억 매출을 이뤄냈다. 순수익은 많이 남지 않더라도 빌딩 높이만큼 팔아야 100억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임미숙은 "어느날 빚이 갚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빚을 다 청산했다"고 뿌듯해했다. 김학래는 "약 80억 원 정도 되는 돈을 갚았다. 소소하게 다 하면 100억 정도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임미숙은 "저는 결혼이 환상이고 행복인 줄 알았는데 살아보니 결혼은 '사랑의 수고'다"라고 명언을 날렸다.
그때 남창희는 임미숙을 위한 김학래의 영상 편지를 공개했다. 임미숙은 김학래의 뺨에 뽀뽀를 하며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다"라며 행복해했다.
임미숙은 "제가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아닌데 아들이 제 버킷리스트 중에 '트로트 앨범 내기'가 있어서, 노래를 작곡해왔더라"라고 말했다. 임미숙은 그의 신곡 '팍팍줘요'를 열창하며 남다른 노래 실력을 뽐냈다.
shy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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