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e스포츠, '뉴 노멀' 시대의 전형 보여주다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20-05-04 08:04


'e스포츠, 뉴 노멀의 전형 제시하다'

코로나19는 많은 이들의 현재를 바꿨고, 미래의 일상마저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일상)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국내는 코로나19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글로벌 팬데믹이 여전한 가운데 셧다운이나 생활방역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좀처럼 예측하기 힘들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한 '언택트(untact·비대면) 생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온라인화가 더욱 가속화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인 셈이다.

올스톱된 전세계 스포츠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비대면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e스포츠가 역설적이게도 이번 위기에 더욱 각광받게 된 것은 분명하다. 더불어 다른 스포츠가 팬 서비스를 위해 e스포츠 요소를 적극 차용한 것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스포츠의 전반적인 구도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지난달 25일 LoL파크에서 '2020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스프링 시즌 결승전이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젠지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T1 선수들이 텅빈 객석 대신 온라인으로 경기를 지켜본 팬들을 위해 카메라를 향해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위기를 기회로

e스포츠 업계에도 코로나19는 분명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큰 위기였다. e스포츠가 가상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연결해 경기를 펼치는 것이지만, 디바이스와 네트워크에서 가장 앞섰던 한국을 중심으로 20년 넘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이미 여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오프라인 경기장에 선수와 팬들이 한데 모이는 것이 일상이 됐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프로농구나 배구처럼 당분간 무관중 경기도 진행했지만, 아무래도 실내공간에서 선수와 관계자, 미디어가 한데 모여야 했기에 방역과 각종 예방조치를 한다고 해도 감염의 위험성은 상존한 상황이었다. 농구나 배구, 핸드볼 등의 종목이 결국 시즌을 중도에 종료할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e스포츠는 이 지점에서 확실한 차별성이 발휘됐다. 비록 경기장에 모이지 않지만, 각자의 숙소 연습실에 마련된 PC를 활용해 온라인 대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늘 상대팀 혹은 선수와 연습을 이렇게 하기에 어색한 것은 없었다. 물론 훈련과 실전은 완전 다른 얘기다. 정식 경기에선 안정적인 운영과 함께 스포츠의 핵심인 공정성이 담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12개 지역에서 열리고 있던 '리그 오브 레전드' 스프링 시즌, 전세계 20개 도시를 돌며 경기를 펼치는 '오버워치 리그', 4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국제대회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지역별 대회가 열리고 있던 '배틀그라운드' 등 모든 종목이 당연히 영향권에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리그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지난 25일 T1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는 2~3월 무관중으로 경기장인 LoL파크에서 스프링 시즌 1라운드를 마친 후, 20일 가까운 준비 기간을 거쳐 이후 끝까지 온라인으로 시즌을 치러냈다. T1과 젠지의 결승전만 무관중으로 경기장에서 열렸을 뿐이다. 물론 경기 후 인터뷰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를 위해 라이엇게임즈는 팀별 연습실의 PC와 네트워크 환경을 점검하고, 일부 팀에는 PC까지 대여를 했다. 또 숙소에 심판을 파견하고, 경기 중 선수 음성채팅을 모두 확인해 공정성을 확보했다. 만약 시스템이 다운되거나 선수가 경기 중 튕겨나갈 것을 대비, 지난 2017년부터 게임을 일정 시간 과거로 돌려 경기를 속개할 수 있는 '크로노브레이크' 기능을 활용했는데 이번에 실제로 활용하며 큰 도움이 됐다. 별다른 문제 없이 시즌을 끝까지 치르며, 다른 스포츠와 확연한 대비점을 보였다. 다른 지역 혹은 나라에서 열린 '리그 오브 레전드' 대회도 비슷한 방식으로 무리없이 스프링 시즌을 마쳤다. 다만 당초 5월에서 7월로 한번 연기했던 국제대회 MSI는 오프라인 경기인데다, 지역별 네트워크 환경의 차이점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전환하지 않고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오버워치 리그'는 전세계 연고 도시에 마련된 경기장을 돌며 치르는 특성상 시작부터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미국에선 무관중으로 치렀지만, 중국 3개 도시와 서울 경기가 모두 취소되면서 리그 파행을 겪어야 했다. 결국 모든 경기를 온라인으로 돌렸다. 대신 이번 달에는 아시아와 북미 2개 지역으로 팀을 나눠 토너먼트를 열며 오프라인 대회만큼의 긴장감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배틀그라운드' 역시 4월 국제대회를 취소하는 대신 권역별 온라인 대회인 '펍지 콘티넨털 시리즈'(PCS)를 도입, 이번달부터 8월까지 순차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정의철(맨 앞)을 비롯한 엑스타레이싱팀 드라이버들이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심레이싱' 경주를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슈퍼레이스
e스포츠를 활용하자

국내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드디어 이번주 개막하지만, 여타 다른 나라의 스포츠 일정이 모두 연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외에서 스포츠 게임으로 온라인 대회가 열리고 있다. 물론 정식 e스포츠 종목과는 달리 대부분 팬 서비스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이를 통해 아날로그와 디지털 스포츠가 접목하는 절호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디지털 스포츠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기에 여전히 시기상조라 생각하는 전통 스포츠 선수들이나 관계자 및 팬들에겐 e스포츠를 다시 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넥슨은 'FIFA 온라인 4'를 활용해 K리그 11개팀과 지난달 'K리그 랜선 토너먼트 TKL컵' 대회를 개최했다. K리그 선수들이 직접 참가, 자신이 소속한 팀의 선수를 활용해 토너먼트와 결승전을 치르며 팬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줬다. 2개월 넘게 개막이 늦춰지고 있는 자동차 레이싱 대회인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도 지난달 25~26일 실제 드라이버들이 참가한 가운데 온라인상에서 시뮬레이션 레이싱 게임 '아세토 코르사'를 활용해 가상 레이싱 대결을 펼쳤다. 드라이버들이 온라인에서 화상과 음성 채팅을 통해 대화를 이어가며 나름의 치열한 레이싱을 펼쳤고, 팬들도 온라인 방송을 통해 이를 지켜보고 채팅을 나누며 아쉬움을 달래는 이색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개막을 장담하기 힘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현역 선수들이 'MLB더쇼'라는 야구게임을 통해 온라인으로 대결을 펼치고 있는데, 이를 ESPN 등 방송사들이 직접 중계를 하며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ESPN의 경우 이미 다양한 e스포츠 종목을 중계하고 있기에 특별히 거부감은 없는 상황이다.

이밖에 시즌이 중단된 전기차 레이스 포뮬러 E도 오프라인 경주 대신 e스포츠 대회를 9주간 열고 있다. 각 팀의 드라이버들의 레이스와 게이머 및 인플루언서들이 참가하는 레이스를 별도로 치르며, 우승한 게이머에겐 실제 대회가 열리는 주말에 서킷에서 랩타임을 잴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한다. 이에 대해 DS테치타팀의 안토니오 펠릭스 다 코스타는 "모터스포츠는 현실 세계와 게임 세계 모두에서 적용 가능한 기술을 가진 몇 안 되는 스포츠 중 하나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환경에 적응하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로울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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