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권력자들의 이면을 리얼하고 짜임새 높은 스토리로 구성, 역대 청불 영화 최고 흥행 신기록을 세운 '내부자들'(15)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우민호 감독과 '택시운전사'(17, 장훈 감독) '변호인'(13, 양우석 감독) '괴물'(06, 봉준호 감독) 등 소시민적인 페이소스를 통해 매 작품 1000만 관객을 사로잡은 충무로 최고의 '믿보배(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마약왕'. 한 인물의 일대기를 통해 1970년대 경제 급성장기의 풍경과 아이러니, 시대와 권력을 직조한 2018년 마지막 문제작으로 떠오르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송강호는 '마약왕'을 통해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강렬하고 파격적인 인물에 도전, 또 한 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해 화제를 모았다. 1970년대라는 찬란한 암흑기 그 자체를 형상화한 송강호는 송강호이기에 가능한 캐릭터이자, 송강호이기에 더욱 놀라운 유일무이한 캐릭터 이두삼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특히 영화의 후반 클라이맥스로 치닫으며 몰아치는 송강호의 연기는 좌중을 압도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송강호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 '장르가 곧 송강호'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마약왕'이 탄생했다.
|
마약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마약왕'에 대해 송강호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됐던, 사회 악을 다룬 소재를 대중 문화로 소통하려고 하니 그만큼 벅차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마약이라는 소재는 일종의 액션, 폭력을 뛰어 넘는 강렬한 소재이지 않나. 우리나라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런 지점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었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또 이두삼이라는 인물은 가공된 인물이긴 하지만 배경은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호기심도 강하게 생기고 도전적인 마음도 들어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며 "마약을 소재로 한 작품인데, 이 지점은 영화의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재가 마약을 다뤘지만 한 인물의 집착과 파멸이라는 인생의 굴곡을 다룬 작품인 것 같다. 단지 그 소재가 마약 세계라는 것일뿐 마약 세계를 해부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그 세계를 소재로 채용하긴 했지만 결국엔 이두삼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인간의 끝없는 욕망, 부러진 집착을 통해 파멸해가는 인간을 보여준 작품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송강호는 마약에 파멸되는 연기를 펼치는데 어려움이 컸다.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은 이런 소재가 흔하다. 한국영화에서는 이렇게 전면적으로 마약을 다룬 작품이 드물다. 그런 지점이 어렵기도 했다. 물론 자료도 있었지만 활자화된 자료라 연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체화시키는데 힘들었고 그런 부분에서 딜레마가 있었다. 미국드라마에서 흔하게 나오는 소재이긴 하지만 미드에 접근을 하다보면 창의력 같은 부분이 갇힐 것 같았다. '마약왕이라는 소재에 집중하고 다른 촤별화된 부분을 해내자'라기 보다는 이두삼이라는 인물에 집중을 하려고 했다. 그렇게 연기하면 생명력있는 작품이 될 것 같았다. 실제로 그 시대에 일어났던 사건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보니 거짓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는 지점에서 힘을 얻었다."
송강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들은 참 외로운 존재라는걸 또 한 번 느꼈다. 우민호 감독도 어떻게 연기해달라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본인이 마약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카메라가 돌아갈 때 정말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한 배우로서 욕심내는 집착에 대해 "뻔한 대답일 수 있는데, 좋은 작품에 대한 집착이 있다. 끊임없이 정말 갈구하고 있다. 뻔하지만 이게 사실이다. 원하는 작품, 원하는 사람들과의 작업이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나를 기다려준 것도 아니다. 조율을 할 수 없는 직업인데 그래서 그런 지점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
이어 "'택시운전사' 이후 '마약왕'을 선택했는데 일부러 변화된 캐릭터를 노린 것은 아니다. 소시민에서 정반대의 모습을 선택하고 계획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이라는 작품을 너무 좋아했다. 간결하면서도 파워넘치는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마약왕'은 이런 우민호 감독의 신작이었고 한 번 쯤 호흡을 맞추고 싶었을 찰나 때마침 작업하게 된 경우다. 함께 호흡을 맞춰보니 나와 성격적으로 너무 잘맞다. 다혈적이지만 뒤끝없는 그런 시원 시원한, 호탕한 면모가 맞아 즐겁게 일했다"며 "'마약왕'의 이두삼은 어렵고 힘든 캐릭터였지만 곧바로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 촬영에 돌입해 이두삼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기생충'에서 다시 흐물흐물한 소신민으로 돌아온다"고 웃었다.
흥행 부담에 대해선 "배우가 흥행에 집착하면서 작품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어떤 배우가 안 그러겠느냐만 내 작품이 이왕이면 흥행이 잘돼 관객과 소통하길 바라지 않나. 나도 집착보다는 이 작품에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가 흥행을 점칠 수도 없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요즘에는 현장에 나가면 내가 제일 선배다. 나보다 연배가 있는 감독과 스태프가 아주 간혹 있고 대부분 현장에서 나이로 1순위, 혹은 2순위 정도 된다. 그만큼 책임감이 커지고 그걸 계기로 각성하려고 한다. 흥행은 아마 그 지점에서 바람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
|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