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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윤선 기자] '궁민남편' 안정환과 권오중, 차인표가 자신의 추억이 담긴 소울 푸드를 공개했다.
이후 안정환은 소울 푸드인 순대를 먹기 위해 순대촌을 찾았다. 그는 "예전에 할머니들이 순대를 팔고 계셨는데 그 앞을 지나가면 순대 꽁다리를 주셨다. 그걸 얻어 먹으려고 맨날 그 길을 다녔다. 내가 맨날 똑같은 운동복 입고 꾀죄죄하게 하고 다니니깐 아는 거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단둘이 어렵게 살았던 때를 떠올리던 안정환은 "'난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라고 생각하면서 이 동네에서 많이 울었다. 배고플 때가 제일 절망적이었다"며 "그런데 오히려 그런게 날 자극 시켜서 똑바로 살아야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또 자신을 끔찍하게 아끼던 할머니를 떠올리기도 했다. 안정환은 "내가 대학교 다닐 때까지 할머니랑 옥탑방에서 둘이 살았다. 할머니는 축구를 반대했다. 뛰면 배고프니깐. 합숙비도 냈어야 했는데 만약에 후원이 없었다면 난 못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운동하면서 제일 고마운 사람으로 가족을 꼽으며 "아내에게 제일 고맙다. 쫓아다니기 쉽지 않은데 고생 많이 했다"며 애틋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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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권오중은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버지가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어머니랑 자주 싸우고 하다 보니 점점 삼 형제가 아버지를 안 좋아하게 됐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사이가 안 좋았다"며 "4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실 때도 삼 형제가 아무도 울지 않았다. 임종 순간에도 눈물이 안 날 정도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애틋함 같은 게 없었다"고 털어놨다.
권오중은 "우리 할아버지가 아버지 어릴 때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고 시간이 지나니까 우리 아버지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사랑 주는 법을 몰랐다는 생각이 든다. 말년에 혼자 술을 계속 드셨는데 그것도 외로우셨겠구나 싶었다. 암 선고받고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지금 같았으면 아버지와 소주 한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있다. 되게 외로운 분이었는데 이해를 못 했다"고 말했다.
권오중은 아버지와 추억이 담긴 연탄불고기를 먹으며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치매 증상도 약간 있었다. 어머니가 외출하면서 아버지 밥 챙겨드리라고 해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께 처음으로 밥을 떠서 먹여드렸는데 아버지가 '고맙다. 막내가 최고다'라고 하셨다. 그거 드신 후 쓰러지고 병원에 가서 돌아가셨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에 김용만은 "내 아들이 준 식사를 마지막으로 행복하게 가셨다고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또 권오중은 돌아가신 후 가장 후회되는 점에 대해 묻자 "돌아가시고 입관할 때 가족들 마지막 인사 순간 때도 말을 잘 안 했다. '아버지 좋은 데 가세요'라고만 했다"며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이어 "그럴 때만큼은 좋은 말 많이 하지 않냐. '사랑합니다'라든가 그런 말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어떻게 보면 마지막 기회였을 텐데"라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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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미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이태원에서 대신 미국 분위기(?)를 낸 차인표는 손수 앞치마와 장갑까지 준비, 그 시절을 떠올리며 샌드위치를 정성껏 만들었다. 차인표의 샌드위치를 맛본 멤버들은 "미국 냄새가 확 난다"며 손맛을 인정했다.
안정환은 "편의점에서만 4년 아르바이트한 거냐"고 물었고, 차인표는 "처음에는 아예 말이 필요 없는 일을 했다"고 답했다. 그는 "가자마자 화장실 페인트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다음 조금 말 알아들을 때는 식당 그릇 치우는 일을 했다. 이후 3학년 정도 됐을 때 영어 꽤 할 때쯤 돼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용만은 "집안 좋은 거로 알고 있는데 아르바이트를 생갭다 많이 했다"며 궁금해했다. 이에 차인표는 "대학교 1학년부터 집안에서 10원 한 푼 안 받았다. 그땐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까 그때 경험들이 나한테는 정말 돈 주고 살 수 없을 만큼 인생의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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