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준화 기자] '우리 한 때 자석 같았다는 건, 한 쪽만 등을 돌리면 멀어진다는 거 였네.'('연애소설')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는 첫 소절에 무릎을 탁 치고 방심하는 순간, 밀려오는 멜로디에 심장을 때려 맞는다. 타블로의 독백이 끝나고 시작되는 감성적인 멜로디, 여기에 쓸쓸한 아이유의 보컬이 얹어지는데 까지 딱 10초다. 듣는 이를 단숨에 집중시킨 뒤 공감을 사는 이야기로 매료시키는 방식이다. 살기 어려운 각박한 세상, 그 안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갈 길이 멀고 비가 올 것 같은데 빈차가 없다'('빈차')고 표현하는 메타포도 에픽하이의 특기 중 하나다.
음악에 문학을 담는 작업, 혹은 문학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작업일 수도 있겠다. 독자와 청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그 순간을 감성으로 채워나가는데, 이를 통해 느끼는 감정을 극대화 시킨다. 때로는 창의적이고 유머러스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가사들도 발군이다. 이야기와 잘 어울릴 만한 적절한 화자(피처링 가수)를 캐스팅해 완성도를 높이고 풍성함을 더하는 작업도 특징적인 부분 중 하나고.
그들의 사상이 고스란히 앨범에 담긴다는 것은 또 다른 흥미로운 포인트를 제공한다. 화자가 분명하기에 이야기가 관통하는 분위기와 감성은 비교적 일정한 편이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화자의 시선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태도가 변화하고 있음을 느껴볼 수 있어 쏠쏠하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도 이들의 음악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비교적 한결 같다, 이 같은 '고집'은 '싫증'을 야기할 수 있다는 단점도 동반하는데, 에픽하이는 이를 돌파하는 방법으로 '피처링'이라는 영리한 방법을 사용한다. 마치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를 제대로 소화해줄 배우를 찾는 '캐스팅'과도 같은 방식으로.
뻔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매력적인 주인공이 연기한다면 또 다른 맛을 내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에픽하이는 그간 쟁쟁한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작품에 욕심을 부려왔는데, 이에 일각에서는 '피처링 빨'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콜라보레이션이 유행하하고 상업화되기 훨씬 전인 14년 전부터 이 같은 협업을 해왔다는 사실은 비판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유용한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차트 순위로 '성공'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지표라고 해도 에픽하이의 새 앨범은 성공적이다. 28일 오전 7시 기준 에픽하이의 9집 앨범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타이틀곡 '연애소설'은 음원 사이트 멜론을 비롯해 올레뮤직, 엠넷닷컴, 몽키3, 지니, 벅스뮤직, 소리바다 등 7개 음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또 다른 타이틀곡 '빈차'과 수록곡 '난 사람이 제일 무서워', '노땡큐', 'HERE COME THE REGRETS', '상실의 순기능', 'BLEED', 'TAPE 2002年 7月 28日', '어른 즈음에', '개화(開花)', '문배동 단골집'도 순위권 내에서 사랑받고 있다.
이들이 세상에 작품을 내놓는 횟수가 잦지는 않다. 이번 앨범이 완성되는데도 약 3년의 시간이 걸렸다. 단편선 같은 11곡을 빼곡 하게 담았고, 대중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중. 워낙 심혈을 기울이고, 고민해 창작물을 만드는데, 이 같은 정성은 꾸준히 인정 받아왔고, 그렇게 '에픽하이'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유일무이라는 평이다. 음악을 문학으로, 문학을 음악으로 담아내는 힙합 그룹. 에픽하이 말고 또 있을까.
joonam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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