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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잘 되는 드라마는 소위 말하는 '밀당'에 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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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은 전격 '고구마 드라마'로 악명을 떨친다. 박정우(지성)가 반격의 기회를 잡을 때마다 거대한 부와 권력을 앞세운 차민호(엄기준)의 악행이 숨쉴 구멍을 막아버린다. 차민호는 수하들까지도 자유자재로 교도소를 드나들며 증거를 조작하고 살인행각까지 벌이는데 박정우는 번번히 발목을 잡혀 주저앉는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16회 동안이나 거듭돼 왔다는 것. 이에 애초 예정됐던 성규(김민석)의 죽음 또한 2회 연장으로 늘어진 극을 채우기 위한 방편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피고인'의 마력은 멀고 먼 사이다 결말을 위해 참고 인내하게 만든다는 것. 드라마가 2회 연장된 탓에 모두가 기다려 온 복수의 순간은 늦춰졌지만, 그동안 박정우의 고군분투에 가슴 깊이 공감했던 시청자들은 끝까지 그의 반격을 응원하며 기다리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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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게시판에도, 네티즌 댓글 반응도 온통 답답하다는 의견 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피고인'은 고구마의 늪이 깊어질수록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다. 14.5%(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시청률로 스타트를 끊은 이 작품은 7회부터 20% 고지를 돌파, 매회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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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은 고구마와 사이다가 아주 절묘하게 배합된 드라마다. 박현도 회장(박영규)과 그 수하들의 계략에 김성룡(남궁민)과 경리부 식구들은 번번히 위기에 처하지만, 그 위기도 잠시. 김성룡의 번뜩이는 지략에 힘입어 전세를 역전시킨다. 매회 가진 자들의 횡포에 고통받는 약자들의 이야기가 시청자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지만, 곧 김성룡과 경리부 식구들이 대리 복수에 나서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처럼 '김과장'은 하나의 사건이 대부분 1회, 길면 2회 안에 종결되는 빠른 템포를 유지하며 고구마와 사이다를 번갈아 선사한다. 답답한 사회 현실이 그려지더라도 조금만 기다리면 김성룡의 능글맞은 반격을 볼 수 있으니 기쁨은 배가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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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은 200억 원대 대작 SBS '사임당, 빛의 일기'와의 경쟁 속에서도 순식간에 선두를 탈환하며 수목극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최근 시청자들은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의 드라마보다는 한껏 웃으며 답답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가벼운 분위기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김과장'은 이러한 소비자 욕구를 아주 정확하게 관통, 빠른 템포 안에 많은 이야기를 경쾌한 톤으로 담아내며 몰입도를 높였다. 그 안에서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 메시지를 버무려 공감대를 형성하는데에도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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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쎈여자 도봉순'은 고구마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작품은 크게 세 가지 구성을 띈다. 모계 영향으로 선천적 괴력을 타고난 도봉순(박보영)의 활약과 성장기를 조명하는 히어로물, 도봉순을 중심으로 한 안민혁(박형식)과 인국두(지수)의 4차원적 삼각관계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물, 도봉순에게 조여오는 악의 무리를 비추는 미스터리물이 그것이다.
짧은 호흡 안에서 이렇게 상이한 장르 세 가지를 버무리다 보니 '힘쎈여자 도봉순'은 이야기를 질질 끌 시간이 없다. 도봉순과 안민혁, 인국두가 만나고 호감을 갖게되는 모습부터 백탁파와의 갈등까지를 빠른 속도로 훑어나간다. 덕분에 시청자는 지루할 틈이 없다. 삼각관계에 집중하다보면 도봉순이 괴력 액션으로 악당들을 제압하고, 그 카타르시스에 젖어들다 보면 백탁파가 긴장의 끈을 조이는 식이다.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물은 주인공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오해로 반목했다 화해하는 과정이 늘어지며 집중력을 잃게 되는데 '힘쏀여자 도봉순'은 그 외에도 볼거리가 풍성하니 그런 걱정을 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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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민PD는 "박보영의 디테일, 박형식의 자신감, 지수의 귀여움 덕분에 우리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나 싶다"고, 박보영은 "앞으로도 이제까지 펼쳐놓은 이야기를 잘 마무리할 계획이다. 우리 드라마는 볼 것이 많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silk78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