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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희준, 선악을 넘나드는 카멜레온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6-01-22 10:25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드라마에선 계속 착한 사람만 연기하는데, 영화에선 악역이 많아요. 대체 이유가 뭘까요? 이렇게나 착하게 생긴 얼굴인데 말이죠." 배우 이희준이 한껏 무게 잡은 얼굴로 능청스럽게 농담을 던진다. 진지한 표정에 낚여 고개를 끄덕이다, 3초쯤 지나서야 웃음이 터진다. "저 진짜 착해요. 생긴 것만큼 착해요." 결국엔 이희준도 참지 못하고 '푸핫' 웃어버리고 만다. 사람 좋은 웃음이다.

이희준의 얼굴은 선하다. 반면에 악하기도 하다. 캐릭터에 따라 선과 악을 오가며 변화무쌍하다. 때때로 관객을 '심쿵'하게 만드는 로맨틱함도 곁들인다. 그리고 그 모든 얼굴엔 '일상성'이 배어 있다. '유나의 거리'의 착한 청년 창만도, '해무'의 마초 같은 뱃사나이 창욱도,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다. 캐릭터를 현실에 발 붙이게 만드는 힘. 이희준의 연기가 지닌 최고의 미덕이다.

영화 '로봇, 소리'에서 이희준의 역할은 굳이 나누자면 악역에 가깝다. 도·감청 인공위성 로봇을 추적하는 국정원 요원 신진호. 로봇과 함께 딸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 해관(이성민)의 반대편에서 갈등 요소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그가 별로 적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이희준이 신진호를 전형적인 정보요원이 아닌 조금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평범한 인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신진호는 그냥 직장인이에요. 자신의 성과를 상사에게 인정받길 바라는 보통의 공명심을 가진 인물이죠.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그렇지 않나요? 매 시퀀스마다 엄마와 통화하거나 문자를 보내는 장면도 있었어요.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봤죠. 하지만 러닝타임 문제로 그 장면들이 많이 편집됐어요. 크게 아쉽지는 않아요. 제가 감독이었어도 그런 선택을 했을 거예요."

이희준은 기능적인 임무에 머물 수밖에 없는 악역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캐릭터가 아닌 작품 자체의 재미와 의미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캐릭터의 '선악'보다는 공감이 가는 작품을 우선으로 선택해 왔어요. 공교롭게 악역이 많았을 뿐이죠. 착한 역할이어도 영화의 주제와 소재에 흥미를 못 느껴 고사한 작품도 많아요."

이 영화의 원톱 주연인 이성민 역할이 탐나지 않냐고 짓궂게 물으니 "제 얼굴이 20대잖아요. 조금 더 나이 들면 해볼게요"라며 껄껄 웃는다. 사실 최근 제안 받은 영화 중엔 아빠 역할도 있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다른 배우보다 더 설득력 있게 표현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로봇, 소리'에 일주일 앞서 개봉한 '오빠생각'의 갈고리 역할도 "한국전쟁 당시의 빈민촌 사진에서 느낀 것만큼 연기에 리얼리티를 담아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처음엔 거절했었다고 한다.

이희준은 현재 위치와 상황에서 가장 잘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는? "기자요! 요즘 인터뷰 많이 하고 있잖아요. 경험이 쌓였어요.(웃음)"

실제로 이희준은 작품에 임할 때마다 간접경험을 위해 '취재'를 다닌다. '해무' 때는 30대 초반 선원을 만났고, '직장의 신' 때는 식품회사에서 일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로봇, 소리'를 위해 국정원 직원도 만났다. '오빠생각' 때는 지인의 할아버지가 상이용사여서 그 사례를 참고했다. "취재를 통해 누군가의 인생 얘기를 듣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해요. 그러면서 제 삶을 반추해 보기도 하죠. 취재든 연기든, 모든 건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이희준은 "배우로 살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연기란 가슴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우를 하지 않았으면 평생 몰랐을 인간다움에 대해 깨닫고 있다"고 말한다. "제가 60~70대까지 계속 연기할 수 있다면, 제 필모그래피를 통해 이희준이란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이 드러났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고 깊어졌으면 해요. 앞으로도 진심을 다해 연기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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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봇, 소리' 스틸.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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