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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관찰력을 동원해보자. 지하철을 타보면 한사코 노약자석 주위로 가지 않는 어르신이 있다. 심지어 젊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좌석 앞에도 잘 안선다. 그저 출입문 쪽 외진 곳을 선호한다. 주위 누군가가 자칫 "앉으세요"라고 할까봐서다. '배려' 받기 보다는 여전히 '배려'할 나이라고 굳게 믿는 분들. 이분들 대체로 건강하다. 믿음만큼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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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을 조금 낮춰보면 '꽃중년' 전성시대의 색깔은 더욱 분명해진다. 남자 배우들의 존재감이 큰 한국 영화계는 그야말로 40~50대의 독무대다.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 김윤석 이정재 장동건 이병헌 류승룡 등 스크린을 주름잡고 있는 배우들이 속한 연령대. 어느덧 40대 배우에 접어든 이정재는 "남자 배우는 40대에 가장 많은 역할이 들어오는 만큼 기대가 크다. 이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오히려 반가움을 표시한다. 차승원 유해진 송일국 등 40대 배우들은 TV로까지 영역을 넓혀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아예 연령대를 더 높여 '노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도 늘고 있다. 4월개봉을 확정한 강제규 감독의 신작 '장수상회'의 주인공은 박근형과 윤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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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구성비와 소비 구조상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플랫폼의 다양화로 TV 시청층에서 중·노년 시청층 의존도는 점차 커지고 있다. 다양해진 시청 패턴에 맞춰 측정 기준에 변화가 시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방송 수익의 절대 기준은 시청률이기 때문이다. 본방 사수 시청 연령이 높아지면서 그들에게 친숙한 배우들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돈 내고 봐야하는 영화 역시 마찬가지. 최근 상업 영화 제작자의 화두는 최대한 넓은 연령대를 소화하기다. 특히 중·장년 층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에 '대박' 여부가 달라진다. 한동안 시대극이 유행한 이유다. 젊은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들은 타깃 관객 이상의 파급효과를 내지 못하는 등 한계를 보이고 있다.
대중문화계의 러브스토리의 쇠락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소. 언젠가부터 방송과 영화계에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났다. 미니시리즈는 장르물이 부쩍 늘었고, 영화계에서도 "멜로 영화가 장사가 잘 안된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젊은 남녀 배우들이 중심이 되는 러브스토리의 시들한 인기. 상대적으로 중견배우들을 더욱 바쁘게 하고 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익숙한 얼굴의 중견배우들의 약진.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살짝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대중문화계에 젊은 피의 수혈이 줄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이든, 어떤 분야든 새 얼굴의 유입 없이 지속적 발전을 기대하긴 어려울 터. 취업시장과 왠지 닮은꼴 현상. 이 시점에서 '삼포세대',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에 대한 안쓰러움과 씁쓸함이 연상되는 건 부질 없는 비약일까.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