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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중 최초의 1000만 관객 돌파. '겨울왕국'이 기적을 이뤘다. 개봉 46일 만이다. '겨울왕국' 홍보사 호호호비치는 2일 '오늘(3/2) 오전 11시20분 천만돌파!'라는 소식을 전했다. 외화로서는 '아바타'(최종 1362만명)에 이어 두번째 1000만 돌파다. '겨울왕국' 1000만 돌파의 세가지 의미를 살펴보자.
평일 오전 서울 시내 한 극장. '겨울왕국' 첫회 상영이 끝났다. 너댓명의 50대 여성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옹기종기 이야기 꽃을 피운다. "난 처음 미키마우스가 나올 때 이게 뭔가 했지 뭐야. 잘못 온게 아닌가 해 엄청 놀랐다니까. 호호호~" 만족스러웠다는 이야기. 영화를 화제로 수다와 웃음꽃이 이어진다. 꿈에서 깨어난 듯 발그라니 상기된 표정도 읽힌다. 무심코 뒷주머니에 넣었다 세탁돼 뻣뻣해진 종이 쪼가리처럼 잠깐이라 믿었던 보류가 영원으로 봉인된 중년 여성의 로망. 현실 복귀에 앞서 잠시나마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쫓겨온 엘사가 좌절 대신 감추고 살았던 자신의 능력을 '렛잇고'의 노래와 함께 풀어내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나 홀로 살겠다"고 외치며 자신만의 성을 쌓아가는 장면은 미세먼지 속에 뿌옇게 변한 하늘처럼 조금 답답했던 마음에 대리만족을 던진 산소같은 '메시지'였다.
학교에서도 '겨울왕국'은 단연 화제였다. "'겨울왕국' 몇번 봤다"가 자랑 아닌 자랑이 됐다. 엄마와 아이를 한 공간에 모으고 두 세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순간, 흥행의 꽃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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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들어진 '청각적 환상'. 아름다운 영상미를 통해 '시각적 환상'과 만났다. 눈은 대부분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요소. 동심을 자극하는 눈이란 소재가 디즈니 기술력을 통해 설렐만큼 아름다운 영상미로 재 탄생했다. 눈 결정 모양으로 만들어진 샹들리에 등 장식품은 시각적 환상과 즐거움을 극대화해준 감각적 표현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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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의 메가히트.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희망을 던짐과 동시에 꼭 한번 생각해 봐야할 화두를 던진 사건이다. 애니메이션의 히트는 결과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영화 시장의 시각을 단숨에 바꿔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애니는 더 이상 '애들만의 장르'가 아니다.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전 세대를 한꺼번에 모을 수 있는 잠재력이 큰 창조적 컨텐츠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졌다. 특히 요즘처럼 적은 수의 아이들과 틈 나는대로 문화적 교감을 원하는 부모들에게 문화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보다 더 분명해졌다.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다. 손재주 좋기로 유명한 한국인들의 위대한 유산이 섬세한 터치 속에 잘 드러나있다. 단, 문제는 열악한 시장 환경이다. 빼어난 재능을 발휘할 무대가 여전히 빈약하다. 활성화되지 않은 장르. 시장에는 자본 유입이 턱 없이 부족하다. 하고 싶은 일을 쫓다보면 밥 굶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전업과 유출이 심각하다. 당장 '겨울왕국'에는 김상진, 케빈 리, 유재현, 변동주, 최영재, 이현민, 장 리 등 최고의 한국인 아티스트 7명이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해외에서의 활약. 처음도 아니다. '라푼젤', '주먹왕 랄프'에서도 손발을 맞췄다.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씁쓸한 현실이기도 하다. 제조업을 뛰어넘는 문화 산업 경제의 무한 성장 잠재력. 국내 애니메이션에 정책적 지원과 관심이 절실할 때다.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거둘 수 있다. '창조경제'를 화두로 내건 박근혜 정부로서도 다시 한번 새겨봐야 할 '겨울왕국 1000만 돌파'의 세번째 의미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