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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들이 심상치 않다. "악역 보는 재미로 드라마를 본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단순 무식 악당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까지 안방극장이 최근 '악역'의 매력까지 치밀하게 그리면서 보는 재미를 늘리고 있다.
동시간대 경쟁하고 있는 성동일도 탐욕이 만만치 않다. 성동일이 맡은 장현은 장옥정의 당숙으로, 뼛속까지 자신만 생각하는 조관웅과는 조금 성격을 달리한다. 우선 어린 시절 민유중(이효정)으로 인해 딸을 잃고 그에게 복수를 꿈꾸는 인물이다. 그 복수를 자신의 재력과 장옥정을 통해 이루려는 캐릭터로 한편으로는 뿌리깊은 원한에 장옥정을 알아보는 눈까지, 시대를 잘못 타고난 능력자에 연민이 느껴지는 인물이기도 하다.
주간 시청률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MBC 주말극 '백년의 유산'에도 눈에 띄는 악역이 출연한다. 박원숙이 연기하는 방영자가 바로 그 인물. 방영자는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밑도 끝도 없는 막무가내형 악역의 전형이다. 민채원(유진)의 시어머니였을 때는 마음에 안든다며 정신병원에 가둬버리기까지 할 정도로 자주 제 성격을 이기지 못해 포악을 떤다. 특히 민채원과 이세윤(이정진)을 불륜으로 몰아갈 때는 '앞뒤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대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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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악역이 눈길을 끄는 이유로는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가 첫 손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주 방송에서 최강치가 조관웅을 속인 것에 시청자들이 통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조관웅이 최강치가 범접하기 힘든 악역의 '포스'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성재의 목소리와 표정 행동으로 나오는 조관웅은 표독스럽고 악독하다. 앞으로 최강치가 윤서화와 구월령(최진혁)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순간 어떻게 변할지도 관전포인트다.
장현을 살리는 것이 성동일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첫회부터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성동일은 냉혹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장현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다. 방영자라는 인물은 꽤 설득력이 떨어지는 캐릭터라 박원숙의 연기력이 아니었으면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평이 많다. 이창훈의 구용갑도 한태상(송승헌) 앞에서와 백성주 앞에서의 모습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도록 연기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연기를 살려주는 것은 역시 디테일한 캐릭터에 있다. 시청자를 매혹하는 이들의 사연이 악행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 특히 '장옥정'의 장현은 민유정에게 딸이 처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늘 만나기만 하면 굴욕을 당한다. 이런 설정들이 장현이 민유정에게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이유를 만들어주고 있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구용갑 역시 첫회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백성주가 끝까지 한태상만을 바라보며 자신에게는 눈길도 주지않자 더 한태상에게 악랄하게 변하는 중이다. 이런 설정들이 악역이면서도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사는 포인트다.
한 방송 관계자는 "요즘 드라마들은 악역이 살아야 드라마가 산다. 악역이 시시하면 내용 자체가 재미없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작가들도 주인공 못지 않게 악역의 디테일을 살리려는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다"며 "또 악역은 더 깊은 내면 연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연기가 되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려고 고심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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