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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하이컷]'로코 보스' 연재vs은설, 그녀들의 향기

권영한 기자

기사입력 2011-09-03 10:43


라이벌 매치

<여인의 향기> 김선아 VS <보스를 지켜라> 최강희

'로코계'의 양대 보스, 그녀들의 감미로운 향기


왼쪽은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최강희). 오른쪽은 <여인의 향기>의 이연재(김선아).


차기 '로코(로맨틱 코미디)' 대통령은 누구일까.

공효진이 '공블리(공효진과 러블리의 합성어)'의 칭호를 받은 게 불과 세 달여 전. 그 사이 많은 여배우들이 '공블리'의 자리를 넘봤다. <동안미녀>(KBS2)의 장나라, <내게 거짓말을 해봐>(SBS)의 윤은혜, <로맨스 타운>의 성유리, <넌 내게 반했어>의 박신혜 등이 그 도전자들. 결과는 석패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명불허전, 두 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인의 향기> 김선아와 <보스를 지켜라>(이상 SBS) 최강희다. 김선아는 <여인인 향기>에서 불치병에 걸린 여주인공 이연재 역을, 최강희는 <보스를 지켜라>에서 좌충우돌 여비서 노은설 역을 맡아 사랑스러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이제 '로코계'의 정권 교체는 시간문제. 이연재와 노은설, 두 유력 후보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했다. 기자 권영한


현란한 발차기 기술을 뽐내고 있는 <보스를 지켜라>의 최강희
88만원 세대의 평강 공주 VS 불치병에 걸린 콩쥐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은 취직 시험에 수십번 낙방한 소위 '지잡대(지방대를 폄하하는 인터넷 용어)' 출신. 그녀의 이력서는 '스펙'의 광활한 불모지, 자기소개서는 회사에 대한 충성을 약속하는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이런 그녀가 기막힌 우연의 연속 속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비서실에 취직하는 행운을 맞지만 그것도 잠시. 지성과 미모와 S라인을 겸비한 비서실 선배들은 '급'이 다른 그녀를 '왕따'시킨다. 노은설은 장정 10여명을 때려눕힌 완력으로 선배들을 제압하고, 곧이어 자신의 직속상관인 차지헌(지성)을 휘어잡는데. 그룹 후계자인 차지헌은 로열패밀리 중에서도 왕위 계승 서열 1위지만, 대인 관계와 경영 능력에 있어선 바보에 가깝다. 잠재력은 언젠가 폭발할 테지만, 초등학생 수준의 사회화가 진행된 이 덜 떨어진 21세기형 바보 온달의 기폭 장치가 되는 게 바로 '21세기형 평강공주' 노은설의 역할. 대기업 정규직 사원증의 소중함 앞에선 벌벌 떨면서도 차별과 부당 앞에선 당당히 입 바른 소리를 하는 이중적 그녀. 노은설 속엔 88만원 세대의 이루기 힘든 '신데렐라 판타지'가 담겨 있다.

<여인의 향기>의 이연재는 노은설과는 성격상 대척점에 있는 직장인. 10년 넘게 여행사 직원으로 일한 그녀의 연봉은 2000만원 턱걸이 수준. 부장은 연중무휴의 성희롱과 인신모독으로 그녀의 자존심을 자근자근 짓밟았다. 고졸 계약직으로 입사해 서른넷이 되도록 시집 못간 그녀를 무시하는 건 상사만이 아니다. 나이 어린 후배 여사원들마저 팥쥐가 콩쥐 대하듯 이연재를 하대하고 멸시하며 조롱한다. 10년 동안 이 모든 수모를 다 참아 온 그녀에게 돌아온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도둑 누명과 서진그룹 막내딸 임세경(서효림)의 야멸찬 '뺨세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담낭암 6개월 시한부 판정까지 떨어진다.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입고 싶은 것 안 입고 철딱서니 없는 홀어머니 모시고 악착같이 살아온 데 대한 보상이라니. 모든 걸 참은 결과는 모든 걸 잃는 것. 이연재가 겪는 이 억울함은 현대 사회 소시민이 겪는 일상의 '종합 비극 세트' 같다.


<여인의 향기>에서 절절한 로맨스를 펼치고 있는 김선아와 이동욱.
두 여자의 어장관리법과 낚시 그물에 걸린 본부장님들

노은설과 이연재는 공히 피라미드 기업 구조의 밑바닥에 위치한 천한 몸종들. 재벌 3세 본부장의 환심을 사는 건 그녀들의 공통 과제다. 오직 시청자만 허락할 이 저주 받은 로맨스의 비결은 무엇일까. 노은설의 매력은 신분 계급에 연연하지 않는 당돌함과 천부적 사육사의 자질. 그룹 전체에서 차지헌 본부장에게 주눅 들지 않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유일한 부하 직원이 노은설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심 많은 누나의 가슴에 포옥 안기고 싶은 요즘 남자들의 어리광 심보를 다독이고 타이르며 본부장을 길들인다. 예쁜 척 내숭떠는 족속과는 백만 광년 떨어진 노은설은 이제껏 차지헌이 만나 본 적 없는 외계 생명체. 차지헌은 그런 노은설을 "우주 돌멩이가 날아와 대뇌변연계에 확 박혀버렸다"고 표현하며 사랑에 중독됐음을 자백한다.

이연재에겐 낭떠러지에 몰린 약자의 오기가 있다. 암전문의 채은석(엄기준)에게 사실상의 사형선고를 받은 순간, 이연재는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고민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연재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을 모은 것). 그중에서도 이연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리스트에 적은 모든 항목을 사랑하는 사람(강지욱 본부장·이동욱)과 함께 하는 것. 강지욱은 회사 경영, 세상사, 연애 따위에 관심 없는 냉소주의자. 그런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돈도, 명예도, 미모도 아닌 '미지에의 호기심'이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한 여행은 연재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한 일탈의 시작. 한국에서 가장 비싼 여자 임세경과의 정략결혼으로 심란한 본부장에게 이연재의 진심과 순정은 '불순물 제로'의 희귀 원석이다. 뒤이은 이연재의 필살기는 고난도 '밀당(밀고 당기기)'. 토요일엔 "우리 연애할래요?"라며 유혹하고 다음 날은 "만나기 싫어졌다"며 밀어내니 시청자도 멀미가 날 지경이다.


<보스를 지켜라>의 노은설과 차무헌 본부장.
'로코' 여주인공의 이미지가 식상하다고?

재벌가 남자와 불우한 가정환경의 여주인공은 어제도 만났고 오늘도 만나고 내일도 계속 만날 예정이다. 뻔한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는 건 뻔하지 않은 배우의 힘. 그녀들이 아니었으면 이걸 누가 했을까 싶을 정도로 캐릭터와 배우의 동조율 100%.

최강희는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카메라 앞에 서 있기만 해도 '당돌한 4차원' 부문 여우주연상감. 반대로 김선아는 카메라 앞에서 아무리 발랄하게 '몸개그'를 하고 어수룩하게 웅얼거려도 그 속에서 연민과 애잔함이 묻어난다. 물론 그녀들에게 이번 선택은 안전하면서 동시에 위험하다. 최강희의 경우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과 <애자>, <쩨쩨한 로맨스> 등에서 보여준 기존 이미지가 노은설과 겹치는 면이 있다. 김선아 역시 2005년 출연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삼순이 캐릭터와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연기가 식상하다고 느끼는 시청자도 있을 수 있다. 개개인이 판단할 몫이다. 사실 배우가 작품을 위해 연기하는 거지, 변신을 위해 연기하는 건 아니다. 김선아는 한때 섹시함으로 어필하는 코미디 배우처럼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고, 최강희는 데뷔 초반 지적이면서도 말수 없이 생각 깊은 인물을 자주 연기했다. 핵심은 얼마나 변신했느냐가 아니라 배우의 진심이 잘 묻어났느냐에 있을 것이다.

객관적인 잣대를 하나 들이대자면, 두 드라마 모두 시청률 20% 안팎의 따끈한 호응을 얻고 있다. '공블리'와 독고진으로 큰 화제를 모은 <최고의 사랑> 평균 시청률이 16.0%(AGB닐슨미디어리서치)였던 걸 상기한다면 두 배우의 선택이 크게 나쁘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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