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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프로농구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플레이오프(PO) 2차전이 열린 13일 인천 도원체육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펼쳐지는 PO에서 이처럼 올스타전을 방불케 하는 플레이가 나온 것은 이날이 한채진(39)의 은퇴 경기였기 때문이다. 70대58로 우리은행의 승리가 이미 확정돼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지난 2003년 데뷔해 무려 20년간의 빛나는 청춘을 코트에 바쳤던 현역 최고령 선수이자 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한 후배들의 따뜻한 배려이기도 했다. 두 팀 선수들의 얼굴에서 기쁨과 아쉬움의 눈물이 교차했던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한채진의 생일이기도 했기에, 경기 후 홈팬들 앞에서 생일 축하를 받으며 현역을 마감하는 뜻깊은 장면도 나왔다.
이날 신한은행으로선 한채진의 퇴장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이정표와 같은 경기이기도 했다. 2010년대를 전후해 통합 6연패를 달리며 '레알 신한'을 구가했던 신한은행은 상당 기간 '베테랑 집합소'와 같은 팀 컬러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한채진의 은퇴로 팀의 주전 가운데 30대는 이경은(36)과 김소니아(30) 두 명밖에 없는 영건 팀이 됐다. 구나단 감독이 1982년생으로 여자농구 6개팀 사령탑 중 가장 젊은 것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신한은행은 올 시즌을 앞두고 하나원큐와 함께 '2약'으로 꼽혔다. 팀의 기둥이었던 김단비가 우리은행으로 FA 이적했고, 한창 팀의 주전으로 성장중인 한엄지마저 BNK로 역시 FA 이적하면서 김소니아와 김진영을 보상 선수로 받고, 구 슬을 새롭게 영입하는 등 무려 주전 3명을 타의에 의해서 바꾸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정식 감독 첫 시즌을 맡는 구 감독에겐 더할 나위 없는 시련이기도 했다. PO 2차전 이후 구 감독이 "이제서야 얘기지만, 너무 걱정이 돼서 잠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채진이 얘기만 하면 말이 잘 안 나온다"며 목이 잠시 잠기기도 했던 구 감독은 "너무 고마울 뿐이다.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제2의 인생에 큰 축하와 박수를 보낸다. 이제 채진이의 빈자리를 잘 채워나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별로 잃을 것이 없었기에, 더욱 무섭게 내달렸던 신한은행의 시즌은 이날 경기로 끝났지만 본의 아니게 팀을 옮기며 나름의 아픔을 겪었던 선수들은 원 팀의 일원이 되며 어느새 한 뼘 성장했다. 레알 신한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지만, 신한은행의 다음 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