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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한채진', 그녀와 함께 한 뼘 성장한 신한은행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23-03-14 11:22 | 최종수정 2023-03-14 11:23


'아듀~ 한채진', 그녀와 함께 한 뼘 성장한 신한은행
신한은행 선수들이 13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을 끝으로 은퇴하는 베테랑 한채진을 헹가래 치고 있다. 사진제공=WKBL

'아듀~ 한채진', 그녀와 함께 한 뼘 성장한 신한은행
신한은행 한채진이 13일 인천 도원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양 팀 선수들의 '배려'를 받아 선수 시절의 마지막 슛을 날리고 있다. 사진제공=WKBL



여자 프로농구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의 플레이오프(PO) 2차전이 열린 13일 인천 도원체육관.

경기 종료 10초쯤을 남기고 흥미로운 모습이 나왔다. 우리은행 김단비가 리바운드를 잡아서 신한은행 한채진에게 절묘한 패스를 연결한 것. 이를 받은 한채진은 생애 마지막 3점슛을 시도했지만, 아쉽게 림을 빗나갔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다.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펼쳐지는 PO에서 이처럼 올스타전을 방불케 하는 플레이가 나온 것은 이날이 한채진(39)의 은퇴 경기였기 때문이다. 70대58로 우리은행의 승리가 이미 확정돼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지난 2003년 데뷔해 무려 20년간의 빛나는 청춘을 코트에 바쳤던 현역 최고령 선수이자 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한 후배들의 따뜻한 배려이기도 했다. 두 팀 선수들의 얼굴에서 기쁨과 아쉬움의 눈물이 교차했던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한채진의 생일이기도 했기에, 경기 후 홈팬들 앞에서 생일 축하를 받으며 현역을 마감하는 뜻깊은 장면도 나왔다.

이날 신한은행으로선 한채진의 퇴장과 더불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이정표와 같은 경기이기도 했다. 2010년대를 전후해 통합 6연패를 달리며 '레알 신한'을 구가했던 신한은행은 상당 기간 '베테랑 집합소'와 같은 팀 컬러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한채진의 은퇴로 팀의 주전 가운데 30대는 이경은(36)과 김소니아(30) 두 명밖에 없는 영건 팀이 됐다. 구나단 감독이 1982년생으로 여자농구 6개팀 사령탑 중 가장 젊은 것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신한은행은 올 시즌을 앞두고 하나원큐와 함께 '2약'으로 꼽혔다. 팀의 기둥이었던 김단비가 우리은행으로 FA 이적했고, 한창 팀의 주전으로 성장중인 한엄지마저 BNK로 역시 FA 이적하면서 김소니아와 김진영을 보상 선수로 받고, 구 슬을 새롭게 영입하는 등 무려 주전 3명을 타의에 의해서 바꾸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정식 감독 첫 시즌을 맡는 구 감독에겐 더할 나위 없는 시련이기도 했다. PO 2차전 이후 구 감독이 "이제서야 얘기지만, 너무 걱정이 돼서 잠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채진과 이경은이란 베테랑을 구심점으로, '야생마'와 같은 김소니아 김진영을 팀워크에 잘 녹여내며 서서히 원 팀을 만드는 의미 있는 시즌이 됐다. 비록 디펜딩 챔피언 KB스타즈가 박지수의 공백으로 인해 부진을 거듭한 조금의 '행운'이 따르기도 했지만 4위권을 계속 유지하다가 시즌 막판 2위 싸움까지 뛰어드는 선전을 펼치기도 했다. 구 감독은 특히 한채진이 지난 시즌 평균 득점 절반에도 못 미치는 완연한 에이징 커브를 보였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뛰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그녀의 진정성을 후배들에게 이식시키기 위해 꾸준히 코트에 내보내기도 했다.

"채진이 얘기만 하면 말이 잘 안 나온다"며 목이 잠시 잠기기도 했던 구 감독은 "너무 고마울 뿐이다.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제2의 인생에 큰 축하와 박수를 보낸다. 이제 채진이의 빈자리를 잘 채워나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별로 잃을 것이 없었기에, 더욱 무섭게 내달렸던 신한은행의 시즌은 이날 경기로 끝났지만 본의 아니게 팀을 옮기며 나름의 아픔을 겪었던 선수들은 원 팀의 일원이 되며 어느새 한 뼘 성장했다. 레알 신한의 영광을 재현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은 사실이지만, 신한은행의 다음 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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