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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포커스]한국농구, 월드컵예선 2연승에도 웃을 수 없는 이유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8-09-18 07:40


연합뉴스

"우리는 바뀐 게 없죠. 오히려 더 퇴보했을 수도 있어요."

남자 농구대표팀의 '캡틴'인 박찬희(31·전자랜드)가 솔직하게 털어놓은 말이다. 지난 17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 2라운드 시리아전이 끝난 뒤였다. 코멘트만 따로 놓고 보면 마치 진팀의 주장이 하소연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이런 발언은 오히려 대승을 거둔 뒤에 나왔다. 이날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은 E조 최하위인 약체 시리아에 103대66으로 37점차의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지난 14일(한국시각) 요르단 원정경기에 이어 2라운드 2연승으로 기세를 높인 셈이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지휘봉을 잡아 팀을 연승으로 인도한 김상식 감독대행이나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이끈 박찬희는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도리어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가 바로 박찬희의 '작심 발언'에 담겨 있다. 이걸 단순히 '캡틴의 하소연'으로 보면 안된다. 한국 농구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선수들이 직접 체감하고 있는 문제점들은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과거에 비해 발전이 없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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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가 이처럼 솔직한 발언을 한 건 경기 후 기자회견 때였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멤버였던 박찬희에게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현 대표팀이 달라진 점과 올해 아시안게임 및 월드컵 예선을 치르며 느낀 점'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박찬희는 평소 생각해둔 바가 많은 듯 했다. 경쟁국가인 중국, 일본과 구체적인 사례를 놓고 비교하며 현 대표팀의 운영 시스템을 정면 비판했다. 한 마디로 '한국 농구는 퇴보하고 있다'는 요지다.

박찬희는 "최근에 중국이나 일본이 국제대회를 치르는 것을 보면 상비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회별로 분산시켜서 선수들이 나간다. 비중 있는 대회에는 1군이 나가고 그렇지 않은 대회에는 1.5군이나 2군이 운용되는 식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계속해서 박찬희는 "무엇보다 선수로서 가장 크게 체감하는 차이는 역시 스태프의 규모다. 숫자부터 차이가 난다. 그러다 보니 경기 전 훈련 때 중국이나 일본은 이미 NBA 식으로 각 포지션별로 나뉘어 몸을 풀고 훈련을 한다. 체계가 잘 잡혀 있다는 게 보인다. 선수 입장에서 환경 탓을 하면 안되지만 발전해나가는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면서 "그에 반해 우리는 옛날하고 똑같다. 바뀐 게 없다. 오히려 더 퇴보했을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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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생생한 경험에서 나온 매우 구체적인 평가다. 대표팀을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대한민국 농구협회가 뼈아프게 받아들여할 현실이기도 하다. 냉정히 말해 협회가 그간 한국 농구의 국제 경쟁력 강화와 실질적인 발전을 위해 해놓은 게 별로 없다.


기본적으로 중국이나 일본처럼 상비군 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표팀 구성과 운영에 대한 단기 및 장기 플랜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 농구협회의 행보를 보면 그런 계획에 대해서는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허 재 감독의 자진 사퇴로 생긴 사령탑 공백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허 감독이 사퇴한 뒤 급한 김에 김상식 코치에게 '감독 대행'직을 맡겨 시리아전까지 치르게 했다. 하지만 향후 그를 유임할 것인지 아니면 새 인물을 선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당장 2개월 뒤에 더 어려운 상대인 레바논을 상대로 또 예선라운드를 펼쳐야 하는데, 지휘 체계조차 명확하게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2연승을 만들어냈음에도 김상식 감독대행은 향후 월드컵 예선 전략과 대표팀의 보완점에 관한 질문에 "지금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아서 말을 할 수가 없다"며 얼굴을 굳혔다. 충분히 그럴 만 하다. 당장 자리를 내놓을 수도 있는 판에 전략적 구상이 무슨 소용일까. 이런 환경에서는 발전이나 진화는 나오기 어렵다.

약한 상대였다고는 해도 예선 2라운드에서 요르단-시리아를 상대로 2연승을 거둔 건 큰 의미가 있다. 아시안게임 이후 쏟아진 팬들의 비난, 허 감독 자진사퇴와 허 훈, 허 웅 등의 대표팀 탈락 등 여러 악재에도 선수들이 더욱 투지를 불태운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회가 명확한 플랜과 확고한 시스템을 갖고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2연승의 의미는 순식간에 퇴색될 수밖에 없다. 한국농구는 아직 웃을 때가 아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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