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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재 감독의 마지막 한마디 "우리 애들…"

김용 기자

기사입력 2015-02-10 09:54



어쩐지 이상한 하루였다. 전주 KCC 이지스 허 재 감독은 평소와 확실히 달랐다.

KCC는 8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경기에서 67대87로 완패했다. 5연패. 센터 하승진이 전 경기 부상으로 뛰지 못했고, 에이스 윌커슨마저 감기와 몸살 증세를 호소했다. 여기에 상대는 최근 무서운 기세를 보여주고 있던 LG였다.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 전 허 감독은 예상 외로 편안한 모습이었다. 경기 전 다른 경기장에서 열리던 원주 동부 프로미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를 휴대폰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돋보기 안경을 쓴 채 "이제는 이거 안쓰면 안보여. 오늘 취재진이 안올 줄 알고 휴대폰과 돋보기 안경을 다 준비했어"라며 사람좋은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동부가 높이가 좋아. 상대팀들이 앞으로도 많이 힘들거야"라며 자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보통, 주축 선수가 경기에 뛰지 못하면 감독이 시합 전 브리핑을 한다.하지만 허 감독은 윌커슨의 부재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허 감독은 윌커슨의 태도에 아침부터 매우 분노했다고 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아프다고 했으면 다른 전술이라도 준비했을텐데, 경기 전 오전 훈련장에 나와 조금 뛰더니 머리가 아파서 뛰지 못하겠다며 빠지고 말았다. 허탈해진 허 감독은 곧바로 윌커슨을 숙소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윌커슨은 단 1초도 뛰지 못했다. 이번 시즌 내내 기복 있는 플레이와 불성실한 태도로 허 감독의 애를 타게 했던 윌커슨이었다. 허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만나 "윌커슨이 아프대"라고 뒤늦게 말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제일 이상했던 부분은 경기 중 모습이었다.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거친 항의, 그리고 눈빛 레이저 발사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화도 내지 않고 조용히 서서 경기만 지켜보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번 시즌 중반이 넘어가며, 팀 성적이 점점 떨어지며 의욕에 넘치던 모습이 상대적으로 줄긴 했지만 이날 경기만큼은 아니었다. 울산 모비스 피버스 유재학 감독도 "그런 친구가 아닌데, 의욕이 없어보였다"라고 했을 정도. 경기 후 기자가 질문을 했다. "오늘 경기 유독 감독님 모습이 이상해보였습니다"라고 했다. 허 감독은 웃으며 "윌커슨이 빠져 높이로 상대가 안되니까. 그래도 우리 애들 참 열심히 뛰었어"라고 했다. 이게 허 감독이 이번 시즌 KCC 감독으로서 한 마지막 공식 코멘트였다. 평소 공개적인 칭찬에 인색했던 허 감독이 '우리 애들'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졸전 속에 대패를 했는데도 말이다.

돌이켜 보니 이번 시즌 공통된 허 감독의 모습이 있었다. 항상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인터뷰실을 빠져나가며 "참 힘드네"라는 말을 꺼냈다. 이겨도, 져도 똑같았다. 물론, 항상 웃음을 보이며 "힘들다"라고 하니 사람들이 허 감독의 마음 고생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매번 "졌는데 인터뷰 할 게 뭐 있어"라는 식의 농담을 곁들이니 그의 의중을 더욱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렇게 경기장을 떠난 허 감독은 글라스 잔에 소주를 따라 마셨다. 모든 게 꼬여버린 시즌이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김민구가 낙마했다. 야심차게 영입한 김태술은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팀에도 녹아들지 못했다. 하지만 감독은 어떤 안좋은 상황에도 핑계를 대지 못하는 자리다. 외롭고 고독한 감독으로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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