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패한 한국 여자농구, 세대교체 절실하다!

◇한국의 신정자가 3일 열린 제25회 FIBA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일본 센터 도카시키의 마크를 뚫고 슛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제공=WKBL

'중과부적'이었다. 3쿼터 5분여동안 일본을 무실점으로 묶고 연속 16득점을 올리며 10점차까지 따라갔지만 저항은 거기까지였다. 결국 22점차의 대패를 당했다.

한국 여자농구가 3일 끝난 제25회 FIBA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을 예선과 준결승전에서 연속으로 꺾고, 내년 터키 앙카라에서 열리는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따내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숙적 일본과의 경기에서 2번 연속 패했다. 예선에서는 다 잡은 경기임에도 막판에 동점을 허용, 연장전 끝에 71대78로 패한데 이어 결승전에선 시종일관 끌려다닌 끝에 43대65로 경기를 마쳤다. 22점차, 역대 일본전에서 2번째로 좋지 않은 결과였다. 한국은 지난 1970년 이후 무려 43년만에 아시아 정상에 오른 일본 여자농구의 부활을 부러운듯 바라봐야만 했다. 일본의 부상과 한국의 몰락, 결국 세대교체에서 갈렸다.

일본 여자농구는 아시아에서조차 한국과 중국에 뒤져 철저히 3인자에 불과했다.

일본은 지난 1970년 대만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이후 단 한번도 아시아 정상에 올라서지 못했다. 중국(중공)이 1976년 제6회 대회부터 참여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두 나라에 밀려 결승조차 제대로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1997년 제17회 대회부터 2004년 제20회 대회까지 4연속으로 결승에 올랐지만 한국과 중국의 벽에 막혀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일본은 지속적으로 세대교체를 단행했고, 이번 대회 들어서 비로소 그 결실을 일궈내기 시작했다. 일본 전력의 핵심은 1m92의 독보적인 신장으로 상대팀 골밑을 종횡무진 휘저으며 대회 MVP를 거머쥔 센터 도카시키 라무였다. 여기에 가드 요시다 아사미, 센터 마미야 유카, 슈팅가드 미야모토 미치코 등이 뒤를 받쳤다.

이 가운데 도카시키는 한국과의 결승전에서 20득점-1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한국이 잡은 총 19개의 리바운드를 혼자서 잡아낸 것이다. 도카시키는 일본 여자농구계가 수년전부터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는 선수다. 그동안 높이와 스피드에 비해 세기와 경험이 부족해 유망주에 불과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나날이 기량이 발전, 이젠 일본을 대표하는 센터로 성장했다. 게다가 도카시키는 1991년생으로 이제 만 22세에 불과,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카시키와 '트윈 타워'를 형성하며 19득점-9리바운드를 기록한 마미야도 23세이고, 일본을 대표하는 가드 오가 유코의 DNA를 물려받은 요시다는 1m65의 단신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피드와 빼어난 패스 감각으로 무려 6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하며 한국의 수비진을 교란시켰다. 요시다 역시 1987년생으로 26세에 불과하는 등 일본은 향후 10년간 대표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뤄냈다. 일본은 4000여개가 넘는 여고 농구부의 저변을 바탕으로 이미 주니어 경기에서 한국을 뛰어넘었다. 이런 기반 덕분에 앞으로도 뛰어난 선수가 계속 배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에선 그 양상이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미 여자 중고등부 대회의 경우 출전 선수 5명조차 채우지 못해 3~4명이 뛰는 경우도 허다할만큼 선수층이 빈약하다.

이번 대회에서 여전히 주전으로 뛰었던 이미선(34·삼성생명), 신정자(33) 강영숙(32·이상 KDB생명), 변연하(33·KB국민은행), 임영희(33·우리은행) 등은 모두 30대 중반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만 되면 이들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대표팀을 이끈 위성우 감독은 "이들이 은퇴하고 나면 큰 위기가 찾아올 것 같다"며 "하루빨리 젊은 선수들을 키워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선전에서 높이에서 뒤졌음에도 시종일관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그리고 마지막 남은 체력을 짜내 전면 강압수비로 몰아붙였던 결승전 3쿼터에서 일본이 제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등 한국 여자농구의 장점을 살린다면 일본이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 발목 부상으로 결승전에 못 나선 곽주영(신한은행)과 하은주(신한은행), 정선화(KB국민은행) 등 도카시키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센터진이 부상으로 대표팀 합류를 하지 못하며 정상 전력이 아니었음을 감안하면 크게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

여기에 박혜진 이승아(이상 우리은행) 등 대표팀에 처음으로 합류한 신예들이 과감한 플레이로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며 큰 가능성을 보인 점도 고무적인 일이다.

SBS ESPN 정인교 해설위원은 "일본은 수년전부터 미국 전지훈련까지 실시하는 등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과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라며 "세대교체를 위해서 학생 여자농구의 인프라 재구축이 절실하다. 지금부터라도 장기플랜을 세우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 선수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정석 기자 [e-mail]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25회 FIBA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 여자농구대표팀. 사진제공=WK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