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히딩크' 위성우 감독과 우리은행의 '촌스런 아이들'이 마침내 한국 여자프로농구를 평정했다.
이번 시즌이 개막하기 전 우리은행의 우승을 점친 전문가는 전무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심지어 우리은행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직행,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만신창이가 된 채로 챔피언결정전에 올라온 삼성생명과 맞붙게 됐을 때도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은행의 우세보다는 삼성생명의 3연승 또는 3승1패 우승을 점쳤다.
한편으로 보면 지난 4시즌 동안 리그 꼴찌에 머물던 팀이 아무런 선수보강 없이 코칭 스태프의 교체 만으로 곧바로 리그 통합우승을 이룬 것은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를 통틀어봐도 전무하다시피 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전문가들의 틀린 예상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어쨌든 우리은행은 이번 우승으로 올 겨울 프로스포츠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히트상품이 됐다.
그 중심에는 춘천 히딩크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 박성배 코치 등 우리은행의 코칭스태프들이 있다.
'한국 축구는 기술은 좋은데 체력이 약하다'고 했던 히딩크 감독이 강력한 파워 프로그램으로 세계 축구계에서 변방에 머물러 있던 한국 축구를 세계 4강에 올려놓았던 발상과 닮아있다.
농구가 체력 만으로 되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체력이 달리면 슛이 짧아지고 수비도 할 수 없다. 다른 팀의 쟁쟁한 국가대표급 선수들과의 매치업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팀 선수들보다 한 발 더 뛸 수 있는 체력과 그와 같은 체력적인 우위에서 오는 자신감이 필수라는 점을 위 감독은 꿰뚫고 있었다.
위 감독은 여기에다 신한은행의 '우승 DNA'를 우리은행 선수들에게 이식했다. 승리의 맛을 알아야 이기는 농구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고, 이기는 농구를 해야 우승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선수들의 몸에 체득시키는 데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했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매일 선수 이전에 인간으로서 한계에 도전해야 했던 선수들을 혹독하게 몰아세웠고 때로는 그와 같은 지도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적어도 올 시즌만큼은 위 감독의 리더십이 옳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전주원 코치는 이 같은 상황에서 선수들에게 '언니 리더십'을 발휘, 선수들의 피난처이자 카운셀러 역할을 하는 한편 위 감독이 심리적으로 고조됐을 때 이를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역할을 해냈다.
여기에다 여고 농구팀 지도자로서 경험이 풍부한 박성배 코치 역시 여자선수들의 심리상태나 습성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위 감독을 보좌하는 한편 경기중 벤치에서 분위기 메이커로서 선수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크나큰 기여를 해냈다.
이 같은 우리은행 코칭 스태프의 절묘한 조화가 몇 년째 원석에 머물러 있던 우리은행의 젊은 선수들을 명품 다이아몬드로 만들어냈다.
이들이 없었다면 박혜진, 이승아, 양지희, 배혜윤 등 우리은행의 젊은 유망주들은 '만년 유망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전주원 코치는 사석에서 우리은행 선수들을 '촌스럽다'고 했다. 선수들이 들었다면 서운해 할 만도 했을 법하지만 실제 훈련과정이나 숙소생활 과정에서 전 코치에게 들었을 법한 말이다.
한 편으로는 지도자가 한 번 지시하면 내려진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올곧음을 가졌음을 나타내주는 말이 '촌스럽다'는 표현으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우리은행의 가드 이승아는 삼성생명과의 챔피언결정 1차전서 단 20여분만을 뛰고 5반칙으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다. 경기 직후 위 감독은 이승아에게 반칙이 많이 나와도 좋으니 반칙을 두려워 말고 이미선을 꽁꽁 묶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래도 그렇지 팀의 주전 가드가 20분 만에 5반칙 퇴장이라니…어쨌든 이승아는 이미선을 고립시켰고, 지치게 만들었다. 위 감독의 지시사항을 100% 수행한 셈이다.
우리은행 선수들의 촌스러움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장면이다. 이승아가 좀 더 경험과 요령이 있었다면 최대한 경기를 오래 뛰면서 감독의 지시사항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겠지만 아직 그 단계까지 바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는 것이 위 감독의 생각이다. 이 부분은 전 코치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어쨌든 이와 같은 '촌스러움'은 오늘날 WKBL 통합우승을 이뤄낸 우리은행 선수들의 미덕이자 앞으로 우리은행의 왕좌 수성을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임재훈 객원기자, 스포토픽(http://www.sportopic.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