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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종서 기자] "내가 이야기할게."
한화 더그아웃에서 "사과해"라는 말이 나왔지만, 2만명 넘게 들어온 잠실구장에서 황영묵은 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 부상 위험이 있던 순간. 이병헌의 표정은 굳었다.
경기를 마친 뒤 양 팀 선수단이 팬들을 향해 도열한 상황. 류현진과 포수 이재원은 황영묵을 불러 두산 선수단에 사과를 시켰다. 이어 두산 포수 양의지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다시 한 번 전했고, 양의지는 이를 받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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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도 류현진이 먼저 나섰다. 미안하다는 뜻과 함께 직접 이야기하겠다는 제스처를 했다. 비록 경기 후 벤치클리어링까지는 피하지 못했지만, 류현진의 적극적인 대체로 경기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정면충돌을 비롯한 큰 갈등은 막게 됐다.
2012년까지 98승을 거둔 뒤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류현진은 올 시즌 다시 KBO리그로 돌아왔다.
12년의 세월은 많은 걸 달라지게 했다. 류현진은 2006년 신인 당시 18승을 거뒀던 '패기'보다는 '노련함'이 붙었다. 공의 위력은 당시보다 떨어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를 상쇄할 '관록'과 '경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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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류현진은 '괴물'의 모습을 되찾았다. 최근 5경기에서 29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0.93을 기록하며 같은 기간 선발투수 중 최고를 달렸다.
12년 전 에이스 본능을 깨운 가운데 당시보다 더욱 돋보였던 장면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선수단을 보호하고 이끌고, 예의를 가르치는 맏형으로서의 품격. KT전과 두산전 모두 자칫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던 순간이었다. 한화는 강제 리빌딩 과정을 거치면서 고참 선수들이 대거 은퇴하는 시기를 겪었다.
젊은 선수들의 기회를 받고 성장을 하기 시작했지만, 확실하게 잡아줄 수 있는 베테랑 선수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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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역시 그 역할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문동주 황준서 등 젊은 좌완 선수에게는 아낌없이 노하우를 전달하며 멘토 역할을 했다. 또한 자신의 경기에서 결승타를 친 야수에게는 고기를 사는 등 팀을 끈끈하게 만들었다. "결승타를 치면 사준다는 공약인가"라는 질문에 "먹고 싶으면 항상 이야기하면 된다"고 웃기도 했다.
단순히 다가가기만 한다고 좋은 고참이 될 수는 없다. '실력'이 반드시 따라줘야 후배들은 믿고 의지한다. 신인왕에 MVP를 동시에 받고, 메이저리그에서 평균자책점 1위를 거두는 등 남다른 커리어를 쌓은 류현진이었다. 그리고 최근 5경기 리그에서 가장 좋은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실력과 품격이 모두 빛나기 시작했다.
이종서 기자 bellsto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