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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국가대표 은퇴' 선언과 43세의 넬슨 크루즈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23-03-15 20:32 | 최종수정 2023-03-15 20:44


어수선한 '국가대표 은퇴' 선언과 43세의 넬슨 크루즈
김광현은 14일 귀국하자마자 SNS에 국가대표 은퇴 의사를 밝혔다. 도쿄=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도미니카공화국 넬슨 크루즈는 1980년 생으로 올해 만 43세다. 2005년 밀워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텍사스, 볼티모어, 시애틀, 미네소타, 탬파베이, 워싱턴을 거쳐 올해는 샌디에이고에서 뛴다. 지난 1월 1년 100만달러에 FA 계약을 맺고 김하성의 동료가 됐다.

메이저리그 경력만 18년이다. 2013년 금지약물 문제로 50경기 징계를 받기는 했어도 통산 459홈런을 때려 도미니카공화국에서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그는 대표팀 단장도 맡았다. 메이저리그에서 7팀을 뛰어 마당발인데다 성격까지 활달해 본인이 직접 대표팀을 지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단장인 자신을 대표팀 선수로 뽑았으니 성격을 알 만하다.

크루즈는 15일(한국시각) D조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이번 대회 첫 출전했다. 7-0으로 점수차가 크게 벌어진 7회초 후안 소토의 우익수 대수비로 들어간 뒤 7회말 타석에서 좌전안타를 때리고 후속 진 세구라의 끝내기 2루타 때 홈을 밟았다. 선수로도 존재감이 뚜렷한 날이었다.

크루즈가 자신을 대표팀에 뽑은 건 자신감에 기인한다. 소토, 매니 마차도, 제레미 페냐, 샌디 알칸타라 등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는 후배들에게도 폭넓은 신뢰를 받는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43세 선수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다는 건 한국 야구에서 상상하기 힘들다. 일단 실력이 뒷받침되기 어렵고, 그 나이에 아직도 대표팀 밥을 먹느냐는 비아냥도 들리기 때문이다.

3회 연속 WBC 1라운드에서 탈락한 한국 대표팀이 지난 14일 인천공항을 통해 조용히 귀국했다. 그런데 김광현이 자신의 SNS에 "지금까지 국가대표 김광현을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소위 국가대표 은퇴 선언이다. 그는 "이렇게 많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후배들에게 넘겨줘야 할 것 같다", "분통하다" 등의 표현을 썼다.

앞서 대표팀 주장 김현수는 13일 중국전을 마친 뒤 "저는 이제 끝났다. 코리아 유니폼 입는 건 마지막"이라고 밝혔다.

야구 선수가 국가대표 은퇴를 말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야구는 축구 만큼 국가대항전이 많지 않고 월드컵과 같은 절대 권위의 대회도 없어 국가대표 은퇴라는 표현은 생소하다.


국가대표는 하고 싶다고, 혹은 하기 싫다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말 그대로 가장 잘하는 선수가 국가를 대표해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것이다. 나이는 별 상관이 없고, 특히 국가대표로 몇 번 출전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격에 맞게 잘 하는 선수면 필요충분하다.

김광현과 김현수의 국가대표 은퇴 표명은 그런 본질적 측면에 비춰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애국심을 갖고 국가의 위상을 높여야 하는 책임감을 논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그 신성함과 고귀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함없는 게 국가대표다.

김광현과 김현수의 은퇴 선언은 "앞으로 날 뽑지 말라"는 뜻으로 들리는 것은 하필 WBC 탈락 직후 팬들의 비난이 쏟아지는 시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두 선수는 당장 프로 유니폼을 벗는 것도 아니다. 작년 4년 계약을 한 김광현은 2025년까지 뛴다. LG 트윈스와 최대 6년 계약을 한 김현수는 2027년까지 선수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둘은 계약기간 동안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음 WBC는 2026년 열린다. 2025년 김광현이 15승에 2점대 평균자책점, 김현수가 타율 3할에 100타점을 올린다면 KBO 기술위원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대표팀이 내키지 않으면, 적절한 시점에 KBO에 간곡하게 알리면 될 일이다. 김광현과 김현수의 참혹한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몇 년 뒤의 일에 대해 뭔가에 떠밀리듯 '선수'치는 건 예의가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 사이에는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광범위하고 두텁게 형성됐다. 14일 입국 때 이강철 감독이 언론 앞에 섰을 뿐 선수단은 조용히 공항을 빠져나갔다. 누가 그렇게 하자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온라인의 발달과 SNS의 보급 때문일 것이다. 욕 듣고 싶은 선수는 없다.

이번 참사는 한국 야구의 누적적이고 총체적인 부실함이 낳은 결과지 특정인, 특정 그룹의 책임이 아니다. 그래서 이 시점에 국가대표 은퇴 선언은 어색하다.

LA 다저스 1루수 프레디 프리먼은 미국 국적자인데 10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나라인 캐나다 대표로 2연속 WBC에 출전하고 있다. 한 번도 WBC 8강에 오른 적이 없는 캐나다는 이번에도 1라운드 통과가 쉽지 않다. 프리먼은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 캐나다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했다. 물론 실력이 된다면 나이는 상관없다.

도미니카공화국, 캐나다, 미국 등 다른 나라는 국가대표 인식이 우리와는 다르다. 그래도 2006년 WBC 출범 이후 그 어느 나라의 어떤 선수가 국가대표 은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우리는 누가 또 국가대표 은퇴를 말할 지 지켜볼 일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어수선한 '국가대표 은퇴' 선언과 43세의 넬슨 크루즈
김현수는 이번 WBC 주장을 맡았다. 도쿄=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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