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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본)=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이번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참가한 호주 대표팀 선수들은 대회에 앞서 일본에서 훈련을 했다.
당장 WBC 개막이 2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여유를 보여도 되나' 싶었다. 심지어 호주 대표팀은 후츄에서 치른 실업야구팀, 사회인야구팀과의 경기에서 대패를 하기도 했고, 미야자키에서 가진 공식 평가전 성적 역시 인상적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겨우내 ABL에서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실전 감각에 대한 걱정은 덜하다고 해도, 사실 뼛속까지 한국인인 입장에서 괜한 오지랖도 들었다.
호주 대표팀이 이런 저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 대표팀 한 관계자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했다. 한국 대표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모든 것이 비장해야 한다. 그게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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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비장함이 당신들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국제 대회를 진심으로 즐기는듯한 선수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즐기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하는듯 했다. 어떻게든 잘해야 한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제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끊임없이 스스로 주문을 외는 것 같았다. 심지어 평가전을 마치고도 경기력이 좋지 않자 선수들은 믹스트존을 굳은 얼굴로 빠져나가기 급급했다. 실제 대회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지나친 긴장은 경직을 불러왔고, 첫 시작을 삐끗하게 만든 직접적 원인이 됐다. 주장 김현수도 대회가 모두 끝난 후에 "긴장을 풀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려고 했는데, 나부터 그렇게하지 못했었다. 그게 너무 미안하고 아쉽다"고 후회했다.
대표팀 성적이 좋았다면 비장함으로 시작된 영웅이었겠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비장하기만 했던 죄인으로 귀국했다.
'도전자'의 입장으로 '강호' 한국을 꺾고 축제 분위기로 WBC 이변의 주인공이 된 호주 선수들과, '프로 투잡러'로 일본 내에서도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고 오타니 쇼헤이, 사사키 로키 같은 선수들에게 선물과 '리스펙'을 받는 에피소드로 진정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체코 선수들. 그리고 8강전을 앞두고 도쿄돔에 입성해 "라틴 사람들은 원래 음악을 사랑한다"며 훈련 시간에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쿠바 선수들까지 바라보며. 한국 야구 대표팀이 갖는 무게를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국가대표에게 갖는 기대가 있다. 경제가 어렵고 휘청일 때도 국가대표 스포츠 스타들을 보며 국민적 결의를 다졌던 기억 때문인지, 그 무게감은 선수에게도 팬들에게도 막중하고 엄숙하게 다가온다. 이번 WBC 대표팀의 결과는 아쉬웠고, 그 과정은 실망스러웠다. 경기력과 실력 차이 그리고 그들이 받고 있는 대우와 비교해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팬들도 받아들여야 한다. 대표팀도 내부에서부터 지나치게 굳는 분위기를 풀어야 한다. 프로 핵심 선수들을 중심으로 꾸릴 다음 대표팀을 본격적으로 조직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도쿄(일본)=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