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션 바꾸라" 압박받던 늦깎이 오지환, 4대 유격수 중 최후의 승리자 [광주포커스]

김영록 기자

기사입력 2022-06-09 07:09 | 최종수정 2022-06-09 07:13


LG 오지환.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광주=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데뷔 초엔 포지션을 바꾸라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류지현 LG 트윈스 감독의 회상이다.

KBO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과시하며 국가대표 유격수로 자리잡은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2009년 입단 직후 오지환은 3루수 혹은 외야수로의 전향 논의가 활발했다.

빠른 발에 강견, 강한 손목힘까지 좋은 툴을 지녔지만, 투박한 발놀림과 볼핸들링 등 유격수로서의 기본기 부족을 지적받았다.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과시하며 잘 따라가놓고 마지막에 공을 흘리는 모습이 잦았다.

특히 고교 시절 4대 유격수로 꼽혔던 허경민(두산 베어스) 김상수(삼성 라이온즈) 안치홍(KIA 타이거즈) 대비 이 같은 약점은 한층 도드라졌다. 경기고 시절 팀 사정상 유격수보다 투수로 뛰어야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

때문에 보다 타격에 집중할 수 있는 포지션에서 거포로의 성장 이야기가 나왔던 것. 류지현 감독은 2012년 수비코치 보직을 받으면서 오지환과의 사제관계를 형성한다. 8일 만난 류 감독은 "당시 오지환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캠프 때는 말도 못한다"고 회상했다.

리그 레전드 유격수 출신인 류지현 당시 수비코치에겐 도전이었다. 오지환은 LG로서도 숱한 '세금'을 내며 성장시킨 선수다. 하지만 그에겐 확신이 있었다.

"포지션 변경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봤다. 이미 프로에서 3년간 유격수 교육을 받았는데,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할 경우 성장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워낙 기본적인 잠재력이 뛰어난 선수였고, 좋은 유격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경기 종료 후 기쁨을 나누는 LG 류지현 감독과 오지환의 모습. 잠실=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2.05.15/

오히려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꿨을 경우 지금처럼 안정적인 성장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LG 외야는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이병규 박용택 이진영 이택근 이대형이 버티고 있었고, '작뱅' 이병규까지 있었다. 올시즌에도 홍창기 박해민 김현수로 외야가 꽉차 채은성을 1루로 옮기고, 이재원 문성주 등 유망주들도 있어 이형종 이천웅의 출전이 쉽지 않을 정도다.

반면 내야의 경우 유격수는 물론 2루와 3루 역시 확고하게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 오지환의 유격수 잔류는 옳은 선택이었다.

류 감독이 자신의 확신을 밀어붙인 결과 그 자신은 선수 뿐 아니라 코칭스태프로도 LG 원클럽맨으로 남아 지휘봉을 잡았고, 자신을 그토록 속썩이던 오지환은 어느덧 태극마크를 달 만큼 자타공인 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지닌 선수로 성장했다. 때문에 지난해 도쿄올림픽 대표팀에 뽑힌 오지환을 바라보는 류 감독의 속내는 남달랐다.


주장으로서 류지현 감독의 100승을 축하하는 오지환.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사령탑으로서도 '금강불괴'로 불릴 만큼 많은 수비이닝을 책임지고, 올해는 주장까지 맡은 오지환은 애틋한 존재다. 그는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게 사실이다. 동기들보다 프로에 적응하는 속도가 늦었다. 하지만 지금은 단연 톱유격수"라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4대 유격수 동기생들 중 지금까지 유격수로 뛰는 선수는 오지환 한 명 뿐이다. 허경민은 3루, 김상수와 안치홍은 2루로 자리를 옮겼다. 최후의 승리자인 셈이다.

다만 아직까지 골든글러브가 없는게 아쉽다. 오지환이 자신의 궤도에 올라선 2012년 이후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강정호 김재호 김선빈 김하성 김혜성이다. 류 감독은 "이제 골든글러브를 받을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나중에 네가 골든글러브 받으면 내가 꽃다발 들고 올라가겠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올해 골든글러브를 받게 되면, 감독으로서 내가 꽃다발을 전해주는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러면 '아 이제 누가 봐도 우리나라 최고의 유격수로 인정받는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다."


광주=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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